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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J Mar 24. 2024

One for All, All for One

포트폴리오 투자

2011년 여름이었다. 공공기관 지침으로 실내 온도를 내릴 수 없었다. 더워진 낡은 사무실에 앉아 집중하려 애를 쓰다가 야근을 마치면, 가로수길 건너 2층 이자카야에서 시원한 맥주를 한잔 마시곤 했다. 돌아와 시차적응을 마칠 때 즈음 출장을 갔고, 출장에서 돌아오면 어김없이 야근이었다. 회식은 늘 새벽까지 이어졌다. 입사 후 6개월. 한 건의 프로젝트와 두 건의 펀드 출자를 마무리했다. 두 건, 아니 세 건의 프로젝트를 놓쳤다. 먹먹해진 마음으로 더워진 새벽바람을 맞으며 집으로 향하곤 했다.   


그즈음 포트폴리오 투자를 검토하고 있었다. 미국 내 16개 멀티패밀리(Multifamily, 임대용 아파트를 단독주택인 Single-Family와 비교해 이르는 표현) 부동산 자산으로 구성된 투자 건이었다. 영어로 된 자산 목록을 보고 그저 막막했다. 회의와 보고가 이어진 낮을 보내고, 밤이 되어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엑셀에 자산들을 하나하나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름, 준공연도, 사진, 도시, 유형, 세대수, 풀이나 피트니스 같은 공용시설, 임대료, 임대율, 담보대출... 포틀랜드에 위치한 자산이 있었는데, 그때는 포틀랜드가 어떤 도시인지 모른 채 "고학력자가 많고, 인텔과 나이키의 본사가 위치"라고 기술했던 기억이 난다.  


엑셀 표로 정리된 사항을 다시 워드파일로 옮기고 나니 자산별로 3~4 페이지 씩 50페이지가 넘었다. 여러 번 다시 읽어봤지만, 여전히 막막했다. 그저 단어와 숫자의 나열이었을 뿐이다. 생각의 방향을 바꾸기로 했다. 16개가 마치 하나의 자산인 것처럼. 전체 세대수와 임대율, 평균 임대료, 평균 연령을 보았다. 왜 이 섹터인지, 왜 이 지역인지, 그리고 왜 이 자산인지 점점 좁혀가며 분석을 진행해 보았다.


요즘은 업계에서 "멀티패밀리"라는 표현을 많이들 사용하지만, 2011년 처음 이 섹터를 접한 우리는 어떤 단어가 적절할 지 오랜 기간 고민했다. 섹터를 통칭하는 표현은 아파트먼트 Apartment였지만, 한국에서 아파트라는 표현이 가져올 수 있는 선입견이 우려되었다. 특히나 국내 시장에서 분양형 아파트인 콘도미니엄 Condominium과 대비되는 렌털 아파트먼트 Rental Apartment를 쓰는 것은 부정적인 선입견을 줄 위험이 있었다. 당시 강영구 팀장의 지휘 아래, 우리는 섹터 명칭을 "멀티패밀리"로 정하고 "아파트"의 ㅇ자도 꺼내지 않기로 했다.  


아직 금융위기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던 시절이다. 에코부머라 불리는 세대는, 미국에서는 이례적으로, 장성한 이후에도 부모들과 함께 살았다.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도시에서 밀려난 젊은 이들이 부모 곁으로 가 있던 시기였다. 하지만, 도시의 일자리는 늘어나고 있었고, 떠났던 이들은 하나씩 돌아오고 있었다. 집값의 20%만 있으면 최저금리로 주택담보대출이 가능한 미국에서, 아파트를 임차하는 이들은 언제든 새로운 도시로 옮겨 갈 준비가 되어있는 이들이다. 도시로의 이주뿐 아니라 도시 간의 이주가 빈번하게 일어나던 시기이기도 했다.


섹터의 매력을 확인한 후에는, 각 자산을 지도에 표시해 보았다. 동부와 서부, 그리고 중서부는 모두 미국이지만, 하나의 지역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산업의 구성도, 문화도, 삶의 양식들도 많이 다르다. 동부와 서부, 그리고 제조업이 중요한 중부로 각 자산을 묶어 각각의 지역에 대해 분석을 시도했다. 마지막으로, 다시 개별 자산으로 돌아왔다. 각각이 포트폴리오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 정도인지. 어떤 자산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주거용 부동산은 인테리어와 시설도 중요하다. CAPEX가 필요한 자산은 어떤 자산이며 얼마나 돈이 들어가는지. 의미가 없던 단어와 숫자의 나열이 다시 의미를 찾아가고 있었다.


포트폴리오는 어느 정도로 성과를 보이는지와 함께, 어느 정도로 잘 분산되어 있는 지를 통해 평가받는다. 포트폴리오 자산을 매입했다면, 이를 관리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각 자산들을 좋은 자산과 나쁜 자산으로 쪼개는 것이다. 좋은 자산은 다시 묶어 자본구조의 변경이나 회수에 집중하고, 나쁜 자산은 적극적인 운영과 개선에 집중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포트폴리오를 우량 자산과 비우량 자산의 두 가지로 구분해야 하는가? 아니면 지역별로 세 개의 포트폴리오 중 우량한 부분과 비우량한 부분을 나누어야 할까? 어떻게 나누어야 자산의 가치가 최대화, 최적화되는가? 그런 것들이 포트폴리오 매니저로서 내가 가진 궁금증이었다.


각 자산은 포트폴리오 내에서 어떤 역할과 비중을 가지는 지에 따라 평가가 되고, 포트폴리오는 자산을 분산하고 보완한다. 데이터 정리와 모델링은 포트폴리오 전체를 볼 때와 개별 자산을 볼 때 모두 중요하다. 잘 정리된 엑셀 파일이 없다면, 이러한 분석은 불가능하다. 지루하게 이어지는 데이터와 숫자의 나열은 결과적으로 마음을 뛰게 하는 분석 결과를 가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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