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저히 더는 버틸 수 없었다. 2011년 11월의 어느 날, 그 해 첫 휴가를 냈다. 그 해, 나의 마음은 또 한 번의 실패한 사랑과 함께 무너졌고, 나의 감정은 그 누구도 모른 채 새벽까지 야근이 이어졌다. 싸구려 호텔과 비행기에서 쪽잠을 자며 출장을 다녔다. 조금씩 무뎌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 분노는 그 안에 숨겨져 있었나보다. 거친 말투로 휴가를 요청했고, 그렇게 프라하행 비행기에 올랐다.
도착하고 나서야 프라하에 하나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생각보다 너무 추웠고, 생각보다 더 아름다워서 추운 날씨에도 호텔 방에 들어갈 생각을 못했다. 백년은 됨직한 야트막한 호텔에서, 아침마다 창문을 열고 카를교를 바라보았다. 걷고 또 걸었다. 낯선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혼자임을 즐겼다. 하지만, 밤에 그 유명한 체코 맥주를 마실 때는 절친인 재남이가 생각났다.
밤에는 호텔 옆 미술관에서 강가에 세워놓은 펭귄들이 빛을 발했다. 낮에도, 밤에도 걷고 또 걸었다. 사흘 쯤 지나 도시가 익숙해졌다. 카페에서는 서버에게 아는 척을 하게 되었고, 어색했던 트램도 생각 없이 탈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프라하에 정을 주고 사랑에 빠질 때쯤 서울에 돌아오는 비행기에 올랐다. 이제는 그 사랑도, 그 분노도 없다. 오늘 밤, 프라하의 맥주와 짭짤했던 감자가 많이도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