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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채우는 여행 in 라오스(28일 차)

왓 댓 카오, 기쁨과 슬픔 나누기

by 에리기 Jan 01. 2025

28일 차예요.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시간에 맞춰서 내려왔는데 테이블 한 상 가득하게 다채로운 구성의 조식을 받았어요. 루앙프라방에서 먹었던 것과는 비교가 안되네요. 루앙프라방 보다 1박에 5천 원 차이일 뿐인데도 샐러드, 과일, 빵, 에그프라이까지 정성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요.  모든 접시에 정성이 담겨 있더라고요.  바게트 빵에는 온기가 서려있어요. 무언가 힘든 여행 끝에 찾아온 이들에게 잘 왔다며 위로의 말을 건네는 느낌이에요.  그간 맛이 있다고 생각한 음식은 많았지만 정성이 느껴지고 감동을 받은 식은 아마 이곳이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마지막에  마시는 모닝 티와 빵까지도 말이지요. 먹다 보니 며칠 더 머무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먹는 행복이 주는 만족감이 이렇게 큰 것일 줄은 몰랐네요.

정성이 느껴진 조식 at house of jars hostel

지난밤 잠을 청하려는데 옆자리에 술에 취해 텐션이 높아진 한 녀석이 음악을 작게 틀어놓고 노래를 따라 부르더라고요. 그런 날이 있거든요. 기분이 너무 좋다 보니 노래를 흥얼거리는 그런 순간이요. 그 기분을 알기에 이해해주려고 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끝날 분위기가 아니더라고요. 하지만 전 자야 하니까요.  열이 오르니 목소리가 떨리는 거죠. 그러면서 제가 그랬어요. 누가 새벽에 음악을 틀고 노래를 부르냐고요. 그랬더니 이 녀석이 제 목소리의 떨림에서 화가 났다는 걸 인지했는지 바로 미안하다고 하고 다시 방이 조용해졌어요. 하지만 이미  잠이 어느 정도 달아난 상태여서 일까요. 쉽게 잠이 안 오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잠이 들 때까지 비엔티안에서 보지 않았던 곳들을 검색하다 보니  탓 루앙에 가서 유명한 왓 댓 카오를 보질 않았더라고요. 왓 댓 카오가 쉽게 말해 거대한 황금와불상인데 라오스에서 머물던 첫 주에 다녀온 탓 루앙은 날씨도 날씨이지만 시간에 쫓겼던 기억이 있어서 근처에 있음에도 몰랐거든요. 그래서 새롭게 왓 댓 카오를 보고 나서 탓 루앙을 졸업하자가 됐어요.  투어로 가는 여행은 한 번에 두루두루 빠짐없이 들여다보게 되지만 사실 시간이 좀 지나고 나면 크게 기억이 안 나더라고요. 하지만 혼자 가는 자유여행이어서 인 건지 탓 루앙은 결국 2번을 가게 됐지만 그래도 제 기준에선 오래도록 남을 것 같아요.  


숙소에서 메콩리버가 가깝기 때문에 첫 주에 머물렀던 호텔처럼 택시를 잡을 필요가 없어서 메콩리버로 가는 에 있는 슬로커피로 가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조금 쉬었다가 왓 댓 카오로  계획이에요. 3주 만에 와서일까요. 저는 익숙하면서 반가운 공간이 됐는데 3주 전에 웃고 인사하던 점원들이 저를 알아보질 못하네요. 뭐 어쩌겠어요. 다 제 마음 같을 순 없는 거죠. 아이스 카페라테(4.5만)를 한 잔 주문하고  더위를 식히면서 여유를 만끽하게요. 들고 온 배터리들의 충전을 완료하고 나서야 비로소  인드라이브로 왓 댓 카오를 잡아요. 가격이 4만 킵이네요. 정말이지 이때 느꼈던 것이지만 비엔티안은 무조건 인드라이브로 시내를 돌아다니는 게 최고인 것 같아요.  반면 루앙프라방은 편도 5만 킵짜리 미니밴을 타야 하지요. 하지만 루앙프라방은 나름의 툭툭이, 자전거 혹은 걷기라는 선택지가 있으니까요.  


4만 킵을 주고 왓 댓 카오로 인드라이브를 타고 가요. 가는 길에 빠뚜싸이도 보이고요. 비 오던 지난번 탓 루앙을 보러 갈 때와는 달리 오늘은 햇살이 한가득 비엔티안을 비추니 제 마음도 여유가 넘쳐흘러요.  첫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탓 루앙으로 가봐요. 하루 종일 사진을 담아야 하기에 구글맵 없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왓 댓 카오를 찾아보게요. 그러다가 탓 루앙 스투파(사리탑)라는 곳을 사진으로 담게 됐어요.

탓 루앙  스투파(사리탑)

아무리 휴대폰을 눕혀도 전체 사진이 화각 속에 잡히질 않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지나가길 한참을 기다리다가 사진으로 담아내고요. 주변의 탓 루앙도 이젠 멀리서 여유롭게 바라볼 수 있어요.

탓 루앙

그늘에서 쉬고 있는 라오스 경찰들에게 물어보니 왓 댓 카오는 탓 루앙으로 들어오는 공원 안에 있다고 하는데 일단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손짓으로 알려준 방향으로 가보게요. 입구를 향해 돌아다니다 보니 생각지도 못한 공간에 단체 관광객들이 모여있어요. 왠지 모르게 저기가 왓 댓 카오가 아닐까 싶네요.

왓 댓 카오 앞 단체 관광객들

이렇게 가까운 곳에 을 줄이야. 탓 루앙 등잔밑 어두운 곳에 있더라고요. 하하하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여유롭게 누워계신 부다상 때문일까요.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에요. 다 내려놓고 비우고 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 사진을 담기까지 시간이 꽤나 오래 걸렸어요. 경복궁에 가면 한복을 입은 관광객들을 종종 보곤 했는데 이곳 왓 댓 카오에도 라오스 소녀들이 전통의상을 입고 와서 사진촬영을 하는 걸 한동안 지켜봐야 했거든요.

왓 댓 카오(Wat That Khao)

계획한 곳을 다 둘러봤기에 비엔티안에 온 김에 첫 한 주간 머물렀던 호텔로 가서 한동안 친하게 지냈던 미스터 폰을 만나러 가자는 생각을 했어요.  간다는 말없이 친구를 만나러 간다는 생각에 너무 신이 났던 것 같아요.  서둘러 탓 루앙입구 앞 주차장에서 인드라이브를 잡았는데 사진을 보여줘도 기사가 국회의사당 근처로 오라고 하는데 정확히 어딘지 모르겠더라고요. 국회의사당이면 빠투싸이 편이라는 말인데 그렇다면 거리가 멀지는 않아도 걸어갈 거리는 아니거든요. 결국 전화를 하고 위치를 물어서 가니 탓 루앙 공원에 있어요. 중간에 포기하고 그냥 다른 콜을 잡을까도 싶었지만 기사가 의지의 라오스인이더라고요. 결국 10여분 정도 헤매다가 둘이 만났어요. 기다려준 인드라이브 기사의 인내심에 돈을 더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네요. 둘이 만나서 정말이지 서로 기뻐했다죠. 기사는 손님을 찾아서 손님은 기사를 만나게 돼서요. 하하하


즐거운 마음으로 4만 킵에 잡은 택시기사에게 5천 킵을 더 내어주고 정이 많이 들었던 라오스의 첫 숙소로 돌아왔어요. 고향에 다시 돌아온 기분이에요. 한동안 그리웠으니까요.

비엔티안 부티크 호텔

 3주간 보냈던 루앙프라방의 이야기를 꺼내려는데 프런트 매니저인 미스터 폰의 안색이 안 좋아요.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폰에게 여동생이 둘이 있는데 그중에 한 여동생이 친구의 바이크 뒤에 앉아 있다가   외국인 단체 관광객들을 피하다가 사고가 났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 관광객들이 도망을 가서 경찰이 찾고 있다 보니 병원비가 감당이 안된다고 요. 그런 상황에서  차로 두 시간 거리인 병원에 가서 날밤을 새고 다시 와서 근무를 하는 중이라고 하네요. 사진을 보여주는데 상태가 심각해요. 그 찰나에 예약한 손님들이 체크인을 하려고 하니 다시 웃는 모습으로 손님들을 응대하네요. 3주간 즐겁게 보냈던 이야기를 할 순간이 아니더라고요. 예약한 손님들을 방으로 안내하고 오니 폰이 그래요. 이렇게 마음이 슬플 땐 내색을 안 하려고 하는데도 웃으며 응대하는 직업이다 보니 쉽지가 않다고요. 그래서 그랬네요. 그건  누구나 다 마찬가지라고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고맙다고 말을 건네었어요. 가족사를 저에게 숨기지 않고 말해주는 거니까요. 그래서 흔히 하는 말 중에   슬픔을 나누면 그 슬픔이 반이 된다는 말이 있다고 전했네요.  하지만 말로써 위로를 하기엔 사고의 결과가 위중하다 보니까요.  병문안을 가면 좋겠지만 그럴 여건이 안되기에 여동생이 좋아하는 게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오렌지를 좋아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 말을 하면서 어두운 얼굴에 미소가 지어져요. 그만큼 아낀다는 말의 반증이겠지요.  그래서 안 그래도  아까 오전에 슬로 커피에 가기 전에 백만 킵  정도를 찾아놨거든요. 마지막날에 팍슨몰에 가서 선물을 사려고요. 그래서 폰에게 혹시 주변에 갈만한 큰 몰이 있냐고 하니  지라프슈퍼가 있다고 하네요. 그래서 그냥 밖으로 나왔어요. 말로써 위로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그래서 무작정 구글맵을 켜고 기린 슈퍼를 찾아갔어요.  들어가서 보니 1kg에 8만킵하는 오렌지가 있어서 번역기를 꺼내어 점원에게 좋은 걸 골라달라고 하고요.

병문안을 갈 건데 할만한 선물이 무엇이 있을까라고 하니 커다란 과일 바구니 안에 담겨있는 무언가를 가리켜요. 금액이 50만이어서 이건 오히려 부담일 거란 생각이 들어서 적당한 가격의 상품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16만 킵짜리 건강식품 한 상자와 오렌지 1kg을 샀네요. 폰이 퇴근하는 시간이 1시간이 채 안 남아서 빠르게 선택을 한 뒤에 루앙프라방에서 사고 싶었던 어포를 개당 18천 킵 정도로  10개 정도를 구입을 했어요. 도합 계산을 하고 보니 433천 킵 정도 나오네요. 숙소로 돌아가는 길인데 기분이 너무 좋더라고요. 제가 가진 얼마 안 되는 돈으로 누군가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는 점이 참 감사하단 생각이 들었거든요. 


마켙에서 사온 건강식품과 오렌지를 건네니 예상을 못했던 것인지 두 손 모아 저에게 연신 인사를 하며 감사를 표해요. 그러더니 사 온 선물을 들고 함께 사진을 담을래라고 묻길래 바로 그랬네요. 그러려고 선물을 산 게 아니라고요. 나에게 참 귀한 인연으로 만나게 된 너의 여동생이 진심으로 쾌차하길 바란다고 말을 전했어요. 그리고  퇴근시간까지 조용히 미스터 폰이 자신의 업무를 마무리하도록 기다렸네요. 제가 사준 선물을 가지고 바이크를 타고 곧장 두 시간을 달려서 병원으로 간다고 하길래 안전하게 조심히 가라고 말을 건네었어요.  동생이 나아지면 페이스북으로 알려달라고 그랬고요.  당연히 해야 할 폰의 업무였지만 루앙프라방으로 가는 비행기가 취소가 됐을 때 저에게 큰 도움을 준 게 폰이었거든요. 단순히 그런 이유여 서라기 보단 저도 여동생이 있는데 그 여동생이 아픈 상황이라고 생각해 보니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작별인사로 함께 사진을 담고요.

어디로 가냐고 하길래 현재 머무는 숙소를 알려줬더니 고마웠던 것인지 개인휴대폰으로 인드라이브 콜을 잡아주네요. 고맙다고 전하고요. 예약한 인드라이브 택시가 입구에 도착했다고 해서 나가니 차가 멀리 보이네요. 많이 있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었다는 사실에 뿌듯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동시에 기쁨을 나누면 배가된다는 말이 생각이 났어요. 그런데 정말 그렇더라고요. 기쁨을 나누니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나눔으로써 기쁨보다 더 큰 행복함을 느낀 건 아닌가 싶어요.

인드라이브 기사님이 20대쯤 돼 보이는 여기사님이에요. 제가 탔더니 바로 듣던 음악을 끄려고 하길래 듣다 보니 저스틴비버의 노래가 나오길래 나도 아는 노래이니 소리를 키워 달라고 했어요. 기뻐하더라고요. 언어는 다르지만 음악으로 하나가 됐으니까요. 호스텔로 가는 길이 전혀 지루하지가 않았던 것 같아요. 오히려 그 시간이 너무 짧게 느껴지더라고요. 얼른 들어가서 씻고 내일을 준비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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