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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ngerine Nov 17. 2023

남편에게 엄마의 카톡이 왔다

나르시시스트 엄마의 이중성과 엄마의 진심  

남편에게 엄마가 카톡을 보내 왔다는 말을 듣고 나는 조금 멍해졌다.


나와 남편은 엄마가 나르시시스트라는 것을 알고 난 이후 내가 엄마 연락을 차단하면 엄마가 어떤 형태로든 나에게 연락을 취해 올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나의 나르 엄마는 아빠와 이혼 한 이후에도 아빠가 가지고 있던 아파트가 계속 아빠 명의로 되어 있는지 등기부 등본을 떼 보며 아빠의 재산 상태를 확인했다.


엄마는 아빠 명의의 집이 아빠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그 사람의 명의가 될 까봐 항상 걱정하며 스토커처럼 아빠 아파트와 아빠가 어떻게 사는지에 대해 궁금해했다.


내 엄마는 정말 이상한 사람이었다.


그런 엄마의 집착적인 모습을 알기 때문에, 그리고 아직도 혈연이라는 이유로 가족관계 증명서를 떼 보거나, 주민 등록을 떼어 보면 내가 어디에 살고 있던 엄마가 내 주소를 알 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엄마가 언젠가 내 집 앞에 찾아오지는 않을까 하고 걱정했었다.


나와 남편은 내가 절연한 엄마가 남편에게 연락을 해 오거나, 우리 집 앞에 엄마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면 그냥 무시하자고 자주 이야기를 했었다.



남편이 캡처한 엄마가 보낸 카톡은 사랑하는 내 사위야~ 사위라고 불러도 되지?라고 시작하는 애정이 넘치는 내용이었다.


엄마는 내 남편과 내가 잘 살고 있는 것을 카톡 프로필로 봤다고 말하며, 다른 장모들처럼 따듯한 밥을 내 남편에게 해주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본인이 최근에 고위 임원으로 승진했는데, 그 소식을 우리 부부에게 알려주고 싶어서 연락했다고 했다. 엄마는 자기 집에 우리가 놀러 오면 언제든지 반갑게 맞이해 줄 거고, 언제든지 연락을 하라고 하며 너무너무 사랑하고 잘 지내고 싶고 자신은 주고 싶은 게 많은 엄마 그리고 장모님이니 연락하고 지내자는 톡을 내 남편에게 보냈다.


엄마의 카톡을 읽자마자 나는 매우 불쾌해 졌다.

헛웃음이 나왔다.


결혼 전에는 막말과 악담을 하면서 내 남편을 무시하고, 내 결혼에 대해 반대 하는 말들과 악담을 하며 상견례 이후까지도 매일 같이 나를 괴롭혔으면서, 이제 와서 자신이 승진을 했으니 축하해 달라는 식으로 연락을 취해 온 것에 나는 불쾌함을 느꼈다.


맛있는 밥을 해주고 싶고, 주고 싶은 게 더 많은 엄마이니 언제든 연락을 하고 집으로 찾아오라고 남편에게 카톡을 보낸 엄마의 연락을 몇 번이고 읽은 후 나는 바보 같게도 정말 엄마가 나랑 잘 지내려고 연락을 했을 수 있다고 착각을 했다.


나는 남편에게 엄마에게 답장을 하지 말라고 했다. 나와의 관계도 아직 해결이 되지 않았으니, 내가 엄마와 먼저 연락을 해보겠다고 했다. 남편은 내 말에 동의했다.


나는 엄마에게 긴 카톡을 보냈다. 그동안 엄마를 결혼식에 부르지 않아서 나도 심적으로 너무 많이 힘들었고, 그동안은 엄마와 나의 관계가 어려웠으니 이제는 서로를 존중하고 상처주는 말을 하지 않고 서로 지낼 수 있다고 약속한다면 나도 엄마와 잘 지내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답장이 없는 엄마에게 나는 전화를 걸었다. 나는 엄마가 정말 나랑 앞으로 잘 지낼 생각이 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엄마에게 연락을 했다. 내 전화를 받은 엄마는 놀란 것 같았다.


내가 연락을 했다는 사실보다 엄마는 내 목소리가 밝은 것에 더 놀란 것 같았다.


"너 목소리가 생각보다 밝구나.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는 거니?"

엄마는 내 목소리가 밝다는 사실에 안도한 것 같은 목소리가 아니었다. 내가 밝은 목소리로 엄마의 안부를 물은 이후로 엄마의 목소리는 급격하게 가라앉았고, 이번 추석에는 어떻게 할 건지, 내가 지금 어떤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부터 물어봤다.


"너 아직도 그 회사에 다니니? 너 사는 동네는 어디니? 이번 추석 때는 어떻게 할 거니? 엄마한테 인사하러 올 생각이 있니?"


나는 지금 일은 프리랜서로 하고 있고, 추석에는 우리 부부끼리 알아서 보낼 거고, 엄마에게 인사하러 갈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보낸 톡을 읽었다면 답장을 달라고 했다. 엄마는 내 말을 듣고 실망하고 화난 말투로 답했다.

  

"전에 다니던 그 대기업에 다니고 있지 않다고...?" "추석 때 너희 부부끼리 알아서 보낼 거라고? 그걸 너희 시부모님이랑 아빠는 이해한다니?"

이제는 자신이 어디 가서 자랑할 만큼 좋은 대기업에 다니지도 않고, 추석에 자신에게 인사하러 올생각도 없으며, 생각보다 잘 지내는 것 같은 딸의 모습에 엄마는 많이 실망한 목소리 었다.


엄마의 대답과 말투를 통해 나는 눈치챌 수 있었다.  이 여자는 아직도 내가 자신에게 뭘 해줄 수 있는지랑 자기가 원하는 것만 우리 부부에게 요구하려고 내 남편에게 연락 한 거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내가 위와 같이 답하자마자, 아래와 같이 대답하며 급하게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


"아무튼 너 목소리가 밝아서 많이 놀랬다. 행복하게 지내고 있구나. 나중에 연락할게."


나는 엄마와 다시 연락을 한 이후로 엄마와 앞으로는 정말 잘 지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다. 엄마가 뭔가 정신을 차려서 이제는 나와 정말 건강한 엄마 딸 관계로 지낼 생각을 해서 내 남편에게 연락을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통화 이후 엄마가 나에게 한 답장을 통해 나는 엄마가 남편에게 연락을 한 이유와 엄마의 진심을 알 수 있었다.



아래는 엄마가 전화 통화 이후 나에게 보낸 긴 카톡의 요약 내용이다.



지난번에 목소리를 들으니 생각보다 너의 목소리가 밝아서 놀랐다.  행복하게 지내는 것 같구나.

난 너를 존중으로 키우지 않은 적이 없다.

출산의 힘든 고통도 너를 안은 순간 행복으로 바뀌었어.

어린 시절 너를 엄하게 키우려고 사랑의 매로 네가 어긋나려 할 때마다 훈육하긴 했지.

너가 너무 섬세한 아이인데, 내가 너랑 화법이 달라서 대화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던 거 같아.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나는 너를 내가 키운 것보다 더 잘 키울 자신이 없어. 네가 예민한 아이인데 내가 너의 마음을 잘 챙겨 줬어야 하는데 그때는 나도 너무 너랑 언니 키우느라 힘들고 괴로워서 어쩔 수 없었단다.

너는 아직까지도 상황과 맥락과 그때의 기분을 다 빼고 내가 말한 강한 단어 들만 기억하고 있느라 여태 너의 마음을 힘들게 하고 있었구나.

그래도 내가 어릴 때 자식을 버리고 도망간 엄마도 아니고, 네 결혼식에 까지 부르지 않을 정도로 못나고 너에게 버림받을 만큼 나쁜 엄마는 아니지 않니!?

날 결혼식에 부르지 않다니 너는 인간의 도리를 저버린 거야.

너는 내 딸이고 천륜으로 묶여있기 때문에 내가 너의 뿌리야. 너가 너의 뿌리를 부정하는 것 같아 내가 걱정이 된다.

내가 너가 버릴 만큼 나쁜 엄마도 아니고, 너도 연락도 안 하고 지낼 만큼 괘씸한 딸도 아니니 연락은 하고 지내자. 간간히 연락하며 생사 확인 정도 하면 좋을 것 같다. 행복해라~



저 톡을 보면 자식을 어릴 때 버리고 도망간 엄마 정도는 되어야 딸이 결혼식에 엄마를 부르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딸을 정말 사랑으로 키우려고 노력했지만 가끔 훈육도 필요했던 엄마의 양육 스토리처럼 들린다.


하지만 내가 며칠 동안 생각을 해보니, 나의 나르시시스트 엄마가 내가 손절하기 전까지 내게 입버릇 처럼 하던 말들을 조합해 보았을 때 위 카톡에 대해 다음과 같은 해석을 할 수 있었다.  



지난번에 밝은 너의 목소리를 들으니, 너가 행복하게 지내는 거 같아 기분이 잡쳤다.

나는 너를 존중으로 키운 적이 없다.

출산하는데 너무 고통스러운데 너는 이 고통을 모를 테니, 일단 출산의 고통이라고 적으면 너에게 동정심과 죄책감을 심어 줄 수 있으니 꼭 언급해야겠다.  

어린 시절 너한테 겁 주려고 그냥 너가 맘에 안 들거나 내가 너 때문에 기분이 별로일 때 개같이 너를 팼는데 이제는 뭐 시간이 지나서 증거도 없고 어쩔 수 없으니, 사랑의 매라고 말하고 훈육이라고 하면 세상 사람 누구나 납득할 테니 너도 그냥 네가 당한 학대를 훈육 정도로 그렇게 생각하고 그냥 넘어가라.

그리고 너는 예민하구나, 내가 한 악담 때문에 아직도 슬퍼하는 너는 심약한 애야.  증거도 없는 과거에 내가 한 폭언을 그대로 기억하니까 아직도 니 맘이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 같아서 연을 끊은 이후 내가 아직 영향력이 있는 것 같아 너무 행복하고 기쁘다.

나는 너를 어릴 때 버리고 도망가고 싶었고, 실제로 너를 버리고 도망가기 위해 시도도 했으며, 거의 성공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를 안 버리고 키워야만 했다.
어린 너를 3살 때 버릴 수 있었는데 그래도 버리고 도망가지 않은 얘기를 아무리 어릴 때부터 지금 까지 반복해서 너에게 말해줘도 너를 안 버린걸 나한테 고마워하지도 않고, 감히 너가 나를 결혼식에 부르지 않아 나는 너에게 버림받았다고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닌다.

내가 한 것은 다 정당하지만, 너가 결혼식에 엄마인 날 안 부르는 건 인간의 도리가 아니라고 해서 또다시 너에게 나는 '인간의 도리를 저버린 애'라는 죄책감을 심어주겠다.

너는 내가 낳았으니 내 전용 최애 펀칭백이 되어도 돼. 내 최애 펀칭백이 없으니 몸이 근질근질하다 감히 어딜 도망가려 해.

이전처럼 간간히 너가 내 펀칭백이 되어 주면 좋겠다.



엄마는 아빠와 살기 너무 힘들고 이혼하고 싶어서 내가 3살이던 때에 나를 시댁에 두고 언니만 데리고 친정에 갔었다는 말을 나에게 절연 전까지도 수도 없이 했었다. 그때 내가 눈에 밟혀서 몇 달 후 다시 나를 데리러 시댁에 갔었고, 내가 안쓰러워서 아빠와 이혼을 하지 못했다며 자신이 나 때문에 아빠와 이혼을 하지 못한 거라는 말을 나에게 자주 했었다.


엄마가 아마 나를 어린 시절 고아원에 보내려고 했었다면,


그래도 내가 어릴 때 자식을 고아원에 보낸 엄마도 아니고, 네 결혼식에 까지 부르지 않을 정도로 못나고 너에게 버림받을 만큼 나쁜 엄마는 아니지 않니!?라고 카톡을 보냈을 거다.


또는 내 돈을 다 써서 착취하고 내 명의로 빚을 지고 힘들게 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면,


그래도 내가 어릴 때 널 착취하고 니 명의로 빚을 지게 한 엄마도 아니고, 네 결혼식에 까지 부르지 않을 정도로 못나고 너에게 버림받을 만큼 나쁜 엄마는 아니지 않니!?라고 내게 답장이 왔을 것이다.


간간히 생사 정도 확인 하면 좋을 것 같다는 말로 끝난 내 나르 엄마의 카톡을 읽으며 나는 어이가 없었다.


내 남편에게 자신은 사위를 사랑하는 장모이기 때문에 늘 우리 부부가 생각나고 궁금하고 따듯한 밥 한 끼 해주고 싶으니 연락하라고 톡을 보내 놓고는,

정작 내가 연락을 해서 서로를 존중하고 선 넘는 말을 하지 않으며 잘 지내보자고 요구하자 엄마는 자신의 본색을 드러냈다. 사실 남편에게 연락을 하면서 자신이 승진을 했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자랑스럽게 전달할 때부터 엄마의 의도를 파악했어야 하는데, 나는 또 바보같이 엄마와 정말 잘 지낼 수 있을 거라는 착각을 하고 도돌이표와 같은 관계를 시작할 뻔했다.


나의 나르 엄마는 내가 자신을 결혼식에 부르지 않은 것에 대해 많이 분노하고 있는 듯했다. 자신이 나에게 했던 모든 폭력이 정당하다고 말하며 나는 인간의 도리를 저버렸다고 말하는 엄마의 연락을 받고 나는 화가 많이 났고, 매우 슬펐다.


남편은 슬퍼하고 화내는 나에게 이제 엄마와의 일은 그만 생각하고 자신과 행복하게 살자고 했다. 남편도 엄마의 연락처를 모두 차단했다. 더 이상 엄마의 연락을 받을 필요가 없었다.


말로는 밥도 해주고 싶고 주고 싶은 게 늘 많은 너희를 사랑하는 장모라고 연락을 해 놓고는, 정작 내 남편이 어떻게 지내는지는 물어보지도 않으면서 나와 남편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만 요구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나는 마음을 정리할 수 있었다. 그동안 엄마와 연락을 끊고 죄책감과 공허함에 심적으로 힘들었던 나는 엄마와의 이 마지막 연락을 끝으로 엄마에게 남아있던 일말의 정을 다 뗄 수 있었다.


엄마에게  마지막 연락을 받은 이후로 한 달 동안 괴로워하던 나는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놀라울 만큼 나는 괜찮아졌다.


어떤 대상에 대한 기대가 있어야 실망도 있고 화가 나는 등의 감정이 생긴다. 하지만 난 이제 엄마에게 아무런 기대가 없다.


그래서 일까. 엄마를 생각하면 들던 안쓰러운 마음도 이제는 들지 않는다.


아직도 내 나르시시스트 엄마는 스스로가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지옥에 살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지옥에 같이 있지 않겠다고 결심했고, 엄마와 완전히 손절한 지금 매우 평온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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