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 엄마와 손절 후 여러 감정들이 찾아왔다
내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엄마 스스로 기분이 나쁘거나 그냥 엄마 자신이 불안할 때마다 나를 무시하고 나에게 폭언 폭행을 했고, 성인이 된 지금도 나를 힘들게 한다고 사귀고 있는 남자친구에게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엄마에게 나를 더 이상 힘들게 하지 말고 한 개인으로 인정해 달라고 하며 나에게 엄마가 한 폭언과 폭력에 대한 사과를 하라고 요구하면, 사과는커녕 너가 엄마인 날 감히 화나게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엄하게 키운 것뿐이라고 주장하며 평생 자신의 행동에 대한 사과를 하지 않는 엄마랑 살고 있다는 사실을 친한 친구에게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
나르시시스트 피해자들은 나르시시스트가 가족일 경우 특히 엄마일 경우 그 누구에게도 나르시시스트와의 경험을 말하기 쉽지 않다.
엄마는 평생 희생하고 고생하며 가족을 위하는 사람!이라는프레임 때문에 엄마가 나르시시스트 일 경우 피해자인 자녀들은 엄마에 대해 양가감정을 느낀다.
저 사람이 증오스러울 만큼 싫고 소름 돋는데, 또 사랑하는 감정이 들기도 하는 엄마라는 존재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엄마가 나르시시스트라는 것을 깨닫고 슬퍼한다고 한다.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도 미워하고 싶지 않은 대상과 손절을 해야 한다니 피해자들은 혼란스러워진다.
엄마 언니와 연을 끊은 이후 나는 늘 감정이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오르락내리락했다.
책 <You're not crazy it's your mother>에 따르면, 나르시시스트 피해자들이 겪는 감정 롤러코스터는 다음 순서를 따른다고 한다.
기쁨
쓸쓸함
비통함
죄책감
슬픔
화남 (분노, 격분, 노여움)
희망 (나르시시스트가 나아질 수 있을 거라는 착각)
절망
이 과정들의 순차적 또는 무작위 적인 반복이 시작된다. 저자에 따르면 이건 정상이라고 한다.
엄마 언니가 나르시시스트라는 것을 깨닫고 나서 나는 정말 환희에 차서 기뻐했었다. 내가 미친 게 아니라 엄마랑 언니가 미친 거고, 우리 집에서 내가 유일하게 정상인 사람인게 맞았다는 것을 책과 유튜브를 통해 확인하고 너무나도 기뻤다.
나는 책과 유튜브 영상을 통해 엄마와 언니가 악성 나르시시스트이기 때문에 나를 괴롭히고 힘들게 한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전문가들이 추천한 모든 해결책을 적용한 후에도 변함없이 나에게 상처를 주고 폭언과 폭행 그리고 거짓말과 이간질로 나를 괴롭히던 엄마 언니와 No Contact(접촉차단이라고 하지만 손절이라고 보면 된다.)를 했기 때문에,
이제 나는 상처와 지옥에서 벗어나서 행복할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엄마 언니가 나르시시스트라는 것을 깨달은 이후, 나는 안도했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슬펐다. 정말 많이 슬펐다. 나르시시스트들은 괜찮아질 수 있는 유형의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난 이후 슬픔은 더 커졌다.
많은 전문가 들은 나르시시스트 피해자들이 나를 괴롭히던 상대가 나르라는 것을 깨닫고 나면 매우 비통해한다고 말한다. 나르시시스트들은 결코 좋은 모습으로 변하지 않는다는 것과, 그들과 더 이상 더 나은 관계가 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엄마 언니가 변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엄마 언니와 손절을 했다.
그리고 나는 외로워졌다. 나는 여태까지 평생 그 누구에게도 엄마 언니가 이상한 사람들이어서 나를 괴롭힌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다행히 엄마 언니와 연을 끊던 당시 결혼 예정이었던 지금의 남편에게 엄마 언니와 있었던 일들을 말할 수 있었지만, 내가 겪었던 모든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기에 굉장히 고독한 시간들 속에서 혼자 고통스러워했었다.
전문가들은 나르시시스트 피해자들이 가족 또는 연인과 같이 오랜 기간 가까운 사이었던 나르와 거리 두기를 할 때 거리를 두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면서도, 심리적으로 거리를 두고 나르와의 관계 정리 과정에서 상대 나르가 마치 죽었을 때의 이별을 하는 것과 같은 감정을 겪는다고 한다.
이후 나르시시스트 피해자에게 찾아오는 감정은 죄책감이다. 내 엄마를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다니! 내 엄마가 나를 괴롭히는 아픈 사람이라니! 내 아빠가, 남편이, 아내가, 자식이, 애인이, 절친이 나르시시스트라니! 피해자 들은 사실을 인정하고 나르시시스트들과 거리를 두는 과정에서 매우 큰 죄책감을 겪게 된다. 나르시시스트가 가까운 사이일 경우에는 가까운 사람을 배신했다는 생각 때문에 연을 끊거나 거리 두기를 하다가 다시 나르와의 이전 관계로 돌아가는 사람들도 많다.
나르시시스트와 여태까지 함께 했던 세월이 길 수록, 그리고 공유하는 경험이 많을수록 더더욱 나르시시스트와 거리를 두면서 죄책감을 많이 느낄 수 있다.
나 또한 그랬다.
나는 엄마 언니와 연을 끊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이후 두 사람과 외가 친척들 없이 결혼식을 한 이후에도 끊임없이 죄책감에 시달렸다. 하지만 나는 엄마 언니와 연을 끊은 사실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고통스러웠던 것은 아니다. 죄책감보다는 다른 외가 친척들이 연을 끊은 나를 버릇이 없고 이상한 아이라고 생각하면 어쩌지?라는 걱정에 더 가까웠다.
물론 아마 나의 외가 친척들은 엄마 언니가 나에대해 나쁘게 말했기 때문에, 모두 내가 미친 애여서 엄마랑 언니도 결혼식에 부르지 않고 엄마 언니와 연을 끊은 경우가 없고 싸가지 없는 애라고 알고 있을 것이다. 아니면 아닐 수도 있고. 이제는 뭐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지만, 엄마 언니와 손절한 이후에는 다른 가족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이 되서 죄책감을 많이 느꼈다.
나는 엄마 언니와 연을 끊어서 죄책감을 느꼈다기보다, 사회적으로 가족끼리는 연을 끊고 손절을 하면 안 좋은 것이라고 하도 주입을 당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스스로 죄책감과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지금 누군가 나에게 인생에서 가장 잘 한 선택이 뭐냐고 묻는 다면,
1. 남편이 나한테 처음 맥주 마시자고 했을 때 OK 했던 것
2. 엄마 언니와 연 끊고 결혼식에도 안 부른 것
이라고 대답할 거다. 나는 결혼식 이후에 그래도 엄마 장례식에는 가야 할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도 엄마 언니니까 내가 이제는 그냥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고 연락하고 지낼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어리석은 생각을 했다.
지금은 아니지만,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엄마가 나에게 카톡을 보내고 필요한 것이 있을 때마다 연락을 할 때 답장을 씹으면서도 나는 헛된 희망을 품었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You're not crazy it's your mother 이 책을 정말 추천한다. 영어 원서라 읽기에 많이 불편하지만, 만약 영어가 편하다면 꼭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번역기를 써서 불편하게 라도 꼭 읽어보면 좋은 책이다.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책의 내용이 쉽게 읽힌다. 나르시시스트 엄마로부터 고통을 겪고 연을 끊은 저자는 자신이 겪은 일들과 나르시시스트로부터 고통받은 사람들의 사례를 정말 유쾌하게 풀어내며 독자들을 위로한다. 저자는 너무 무겁고 심각한 말투 대신, 유쾌하고 공감이 되는 말들로 나르시시스트 엄마를 둔 사람들을 위한 예시와 나르시시스트 엄마와 거리 두는 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진짜 나르시시스트를 겪은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큰 공감을 할 것이다.
둘 째는 우리나라 저자들이 쓴 나르시시스트 관련 책과는 달리 정말 속 시원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한국은 겸손과 도덕성을 강조하는 문화이고 유교, 가부장제에 기초하여 보수성이 강한 문화를 가진다. 많이 나아졌지만일부 사람들에게서는 아직도 보수적이고 과거지향적인 태도가 많이 보인다. 서양의 나르시시스트 들은 나이 듦을 거부하고 과거에 대해 부정하고 새로운 문화와 가치관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반해, 한국 나르시시스트 부모들은 자신들이 유리하도록 과거 시절의 전통적 가치관과 새로운 가치관 사이를 넘나드는 경향이 많다.
우리나라는 엄마의 모성애와 엄마의 자녀에 대한 사랑을 예전부터 강조해 오고, 엄마는 늘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고생한 사람이라는 것을 미디어와 책을 통해 꾸준히 다뤄왔다. 이런 문화에 노출된 우리나라 사람들은 엄마가 이상하더라도 엄마를 욕하기가 더더욱 어렵고, 엄마가 이상한 사람이라는 의심을 갖기가 더 어렵다.
하지만 저 책은 다르다. 엄마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인정한 후, 나르시시스트 엄마와 손절하는 방법을 그 어떤 책들 보다도 속 시원하게 제시한다. 난 이 책 제목이 너무 맘에 든다. 너가 아니라 너의 엄마가 미친 거야! 우리나라에서 쓰인 책들과는 달리 나르시시스트 부모가 성공을 하고, 높은 지위를 가졌을 경우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도 있다.
우리나라는 부모를 비판하면 안된다고 어릴 때부터 학교, 미디어 그리고 수많은 책을 통해 말한다. 가족은 무슨 일이 있어도 욕을 해서는 안되고 평생 함께하는 피가 섞인 끈끈한 사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문화이다 보니 우리나라의 경우 나르시시스트 피해자 중 부모 특히 엄마가 나르시시스트인 경우피해자는 자신의 엄마를 비판하기 매우 힘들다.
나르시시스트 피해자였던 저자는 그 누구보다도 쾌활하고 신랄하게 나르시시스트 엄마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의 경우 유교사상은 싫어하고, 종교는 무신론자 이기 때문에 당연히 없으며,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효 사상은 과학의 발전과 길어진 수명, 그리고 저성장으로 인해 서서히 종말 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어서 이 책이 너무나도 큰 도움이 되었고 공감이 됐다. 속 시원한 해결책이 필요하거나, 국내에 있는 나르시시스트 관련 책의 대처법이 답답하거나 큰 도움이 되지 않은 분들은 You're not crazy it's your mother 책의 연 끊기 이후의 대처법 부분만이라도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정말 나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고, 엄마와 연을 끊은 이후 들던 죄책감이 이 책을 읽고 사라졌다.
이 책은 나르시시스트 엄마와 연을 끊어도 되며, 손절이 필요하다면 몇 번이고 끊었다 다시 만났다 반복해도 스스로를 자책하지 말라고 한다. 원래 엄마와 같은 관계가 나르시시스트인 경우 한 번에 연을 끊어내기는 쉽지 않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나르시시스트 엄마와 연을 끊고 No Contact 이후 엄마의 장례식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내가 아이를 낳아도 그 사실을 엄마에게 말해주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엄마가 집 앞에 찾아와서 벨을 눌러도, 내가 집에 오기를 기다리느라 비에 온몸이 젖어있어도 연을 끊은 이후에는 엄마를 못 본 사람 취급하고 집에 들이지 말라고 말한다. 종교를 가지고 있더라도, 엄마를 용서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 주는 등 정말 현실적인 조언과 대처법을 속 시원하게 제공해 준다.
<You're not crazy it's your mother> 이 책은 엄마가 나이 들고 병상에 있을 때, 엄마의 장례식 때도 안 가도 되는 것인지 등등과 같이 현실적인 고민과 해결책을 그 어떤 책보다도 더 직설적으로 이야기한다.
긴 시간 동안 나를 괴롭혔던 죄책감이 사라지고 나니, 나는 슬픔에 빠졌다. 이 슬픔에 빠진 기간 동안 나는 마치 엄마 언니가 죽기라도 한 것처럼 두 사람이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때때로 그리고 어떤 날은 하루종일 엄마 언니가 나에게 했던 상처되는 막말과, 나를 때리고 괴롭히며 했던 수많은 비상식적인 언행들에 대해 스스로 떠올리며 괴로웠다.
나르시시스트 엄마 언니에 대한 기억들이 반복해서 나를 괴롭혔다. 떠올리고 싶지 않아도 두 사람과 관련된 나쁜 기억과 관련된 물건만 봐도 나는 두 사람과 연 끊기 전까지 내가 당했던 모든 일들을 생각하고 또 슬퍼했다.
결혼 전부터 나에게 연락을 퍼붓다가 내가 계속 읽씹 하자 나에게 보내던 카톡 연락을 멈췄던 엄마가 결혼 식 이후 1달 만에 나에게 연락을 해 왔다.
나에게 부탁할 게 있다는 내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