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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ngerine Oct 25. 2023

엄마처럼 대해줄게 라는 시어머니에게 내가 한 말

엄마처럼 대해주신다고요? 어머니 어떻게 그런 심한 말씀을!

결혼 전 엄마와 언니를 결혼식에 부르지 않겠다고 남편 부모님께 어떻게 말씀드릴지 한 달 내내 고민했다.


왜 나는 나르시시스트 엄마와 언니를 만나서 행복해야 할 결혼 준비 때 꽃장식이나 드레스 고민보다 엄마 언니와의 갈등으로 인한 고민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 건지 너무 속상했다.


엄마와 언니가 나르시시스트인 것을 몰랐다면 내 처지를 비관하며 매우 힘들어했겠지만, 두 사람이 나르시시스트라는 것을 안 이상 자기 연민에 빠져 봤자 내 상황이 더 좋은 쪽으로 변할 리가 없었다.


나는 남편에게 매일 미안하다고 말하면서도 만약 시부모님이 엄마 언니를 내 결혼식에 부르지 않겠다는 말을 들으시고 우리의 결혼을 반대하시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됐다. 내가 남편 부모님 입장이어도, 양가의 축복 속에서 결혼하는 아들을 보고 싶지, 엄마 언니와 사이가 좋지 않은 여자를 만나 걱정 속에서 결혼을 하는 모습을 보면 너무 슬플 것 같았다.


내가 매일같이 걱정 하는 것을 보며 남편은 내 부모님들은 잘 말씀드리면 이해하실 분들이라고 했다. 남편이 위로를 해줘도 나는 매일 걱정했다.


“엄마랑 언니를 결혼식에 안 부르기 때문에 외가 식구들도 전부 오지 않을 거야.”

“오빠 부모님이 내가 엄마 언니를 결혼식에 안 부른다는 걸 아시고 결혼 반대하시면 어쩌지?”


내가 이렇게 걱정할 때마다 남편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해해 주실 거야. 두 분이 결혼 반대하시면 아들 평생 못 보시는 거지 뭐.”


내가 엄마 언니와 연을 끊었다는 사실이 남편이 나를 사랑하는 마음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나니 안심이 됐다.


미안하고 고마웠다.


남편은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는 사람이었다.


나는 스스로 자신의 기분이 뭔지도 모르면서, 태도가 좋았다 나빴다 널을 뛰는 엄마와 언니의 모습을 보면서 자라서 그런지, 감정 기복이 심하지 않은 남편을 보고 놀랬다.


나의 기준에서 이건 엄청나게 큰 일이어서, 계속 걱정하고, 이 주제로 대화를 나눠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남편의 대답은 나를 차분하게 만들었다.


남편의 말을 들은 후에도 나는 매우 걱정이 됐다. 이 사실을 예비 시부모님에게 어찌 말씀드려야 하나...


남편 어머니는 결혼 전 한국에 자주 오셨다. 어머니가 한국에 들어오신 이후 나는 조심스럽게 엄마와 나의 관계를 말씀드렸다. 내가 겪은 일들과, 엄마 언니와의 관계가 회복 불가능한 상태임을 말씀드렸다. 시어머니에게 엄마와 언니를 결혼식에 부르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어머니가 속상하고 걱정하실 걸 알기에 너무 죄송하다고 말했다. 내 선택에 변함은 없을 거라고, 그래서 더 죄송하다고 했다. 어머니는 처음 내 이야기를 듣고 많이 놀라셨고, 내가 그동안 많이 힘들었겠다고 위로해 주셨다. 아마도 당시 내 말을 듣고 어머니는 내가 마음을 바꾸고 엄마 언니와 화해를 한 후 결혼식은 아무 문제 없이 진행될 거라고 생각하신 것 같다.



나는 원래 스몰 웨딩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결혼식을 의논하던 당시 엄마와 남편 그리고 시부모님이 손님이 많이 오는 결혼식을 원했기 때문에, 큰 규모의 예식을 예약한 상태였다.


엄마와 언니를 부르지 않겠다고 결심한 이후 나는 더더욱 스몰웨딩을 하고 싶었다. 당시 결혼식까지 6개월이나 넘게 남았기 때문에, 예약을 취소할 수 있는 시기였다. 엄마와 언니 그리고 외가 식구들이 전부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내 지인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내가 엄마 언니와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을 돈을 들여가면서 셀프로 광고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남편에게 내가 원래 하고 싶었던 것처럼 스몰웨딩을 하고 싶다고 말했고, 남편은 많이 고민하다가 알겠다고 했다. 남편은 시부모님에게 전화를 걸어 이 사실을 알렸다.


시부모님은 이 소식을 듣고 매우 슬퍼하셨다. 내 아들이 뭐가 부족해서 그런 식으로 결혼식을 해야 하는 거냐고 하셨다. 시어머니는 남편에게 내 엄마가 남편을 반대하는 거냐고 물어보셨다. 남편은 그런 게 아니라고, 전에 말했던 것처럼 내가 엄마 언니를 결혼식에 부르지 않기 때문에 결혼식을 작게 하는 걸로 변경하는 거라고 말했다. 시부모님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하셨다. 남편에게 어머니가 우셨다는 말을 듣고 나는 더 움츠러들었다. 이를 어쩌지...


남편과 긴 상의 끝에 우리는 시부모님과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하기 위해 해외로 떠났다. 여행의 목적은 시부모님께 엄마 언니가 내 결혼식에 오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잘 말씀드리는 것과, 결혼식을 작게 하겠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이었다.


해외에 도착한 이후 남편 부모님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남편 부모님의 집에 모여 이야기를 시작했다. 시부모님은 이미 내가 엄마 언니를 결혼식에 부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신 것 같았다.


시부모님은 먼저 내가 많이 힘들었겠다고 말씀하셨다. 두 분은 나를 위로해 주면서 혹시 사부인이 아들을 반대하시는 거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그런 건 절대 아니라고 말했다. 나는 혼자 미리 열심히 연습한 데로 시부모님께 내 이야기를 했다. 내가 시부모님에게 할 말을 미리 연습했다는 사실은 아마 남편도 이 글을 읽으면서 처음 알게 될 거다.


"어머님, 아버님. 저희 엄마가 오빠를 반대해서 결혼식에 오지 않겠다고 하는 게 아니에요. 제가 엄마랑 언니를 저희 결혼식에 초대하지 않는 거예요."

"저도 저랑 엄마의 문제이기 때문에 말씀드리기 정말 부끄럽고 힘들지만, 저희 엄마가 좀 일반적이지 않으세요. 제 엄마는 어릴 때부터 저한테 집착도 많이 하고, 상처 주는 말들로 저를 많이 힘들게 했어요. 엄마 언니랑 지내면서 정말 너무 많은 폭언과 폭력을 당해서 제가 견디기 정말 힘들었어요. 오빠랑 결혼 준비를 하면서 엄마 언니의 괴롭힘이 더 심해졌고요.  그리고......"


내 이야기를 다 들은 후 시부모님은 안타까워하셨다. 두 분은 내가 너무 힘들었겠다고 말하시면서 나를 위로해 주셨다. 시아버지는 사부인이 조건적인 문제로 아들이 나와 결혼하는 것을 반대해서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으시는 건가 하고 생각하셨다고 말하셨다. 나는 대답했다.


"아버님, 저희 엄마는 한 번도 본인 입으로 오빠를 반대한다고 말한 적이 없어요. 대신 오빠가 집이 없어서 맘에 안 든다고 하거나, 별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으면서 상처되는 말들로 저를 많이 괴롭혔어요."


"저희 엄마는 오빠가 아닌 그 누구를 결혼하겠다고 데려왔어도 반대했을 거예요. 오빠가 강남에 엄마가 정확히 원하는 집을 가지고 있어도, 다른 이유를 대면서 트집을 잡았을 거예요. 오빠의 문제가 아니에요 아버님."


내 말을 듣고 아버님은 내 말이 무슨 뜻인지 바로 이해하셨다.


내 나르 엄마는 노답인 사람이라는 것을 시부모님들은 바로 캐치하신 것 같았다.


시어머니는 내 이야기를 듣고 놀라셨다. 엄마가 나에게 집착하면서 괴롭히는 건 그렇다 쳐도, 내 나르 언니가 나를 괴롭히는 건 이해가 안 간다고 하셨다. 나는 그러게요...라고 대답했다. 시부모님에게 내 엄마와 언니가 나르시시스트라고 설명하지 못했다. 그걸 어떻게 설명할까. 지금은 두 분이 많이 편해졌기 때문에, 이제는 조금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냥 내 엄마가 얼마나 일반적이지 않은지, 나랑 얼마나 관계가 좋지 않은지 밖에 이야기할 수 없었다.


시부모님은 내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내가 정말 많이 힘들었겠다면서 엄마와 언니를 결혼식에 부르지 않는 것이 이제 이해된다고 하셨다. 시부모님은 다른 사람들의 구설에 오를 수도 있을 거라는 것을 우리에게 말하셨다. 나와 남편은 다른 사람들의 구설수에 오르내리는 것 정도는 당연히 생각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남편에게 시아버지는 "아들 괜찮아?"라고 물어보셨다.


남편은 "아, 저는 괜찮아요. 이 정도는 뭐. 나는 괜찮으니까 걱정할 필요 전혀~~ 없어요."라고 대답했다.


시부모님은 "역시 내 아들 멘탈이 강해."라고 하셨다.



시부모님이 내가 맘고생이 얼마나 많았겠냐고 말하면서 위로해 주시니, 눈물이 났다.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미안하면서도 나 스스로 이런 상황을 감당하기가 심적으로 너무 힘들었다는 말을 하며 글썽이자, 시어머니도 눈물을 보이셨다.


남편 어머니는 원래 눈물이 많으시다. 남편은 사귀던 당시부터 어머니가 눈물이 많고 정이 많은 분이라고 나에게 말을 했었다. 어머니는 눈물을 훔치고 내 손을 잡으면서 말하셨다.


"이제 나는 딸이 생긴 거야. 내가 너 엄마가 되어줄게. 내가 엄마처럼 대해줄게."


엄마가 되어주겠다는 어머니에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엄마처럼요? 어머니, 저는 엄마처럼 대해준다는 말을 들으면 소름이 돋는 사람이라서요. 괜찮아요, 어머니."


내 말에 어머니는 웃으셨다.


진심인데. 나는 다른 엄마는 정말 필요 없는데.  




어머니는 내가 엄마 언니를 초대하지 않기 때문에 스몰웨딩을 할 거라는 남편의 전화를 받은 이후 더 보란 듯이 결혼식을 크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셨다.


아 이런. 스몰웨딩은 어려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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