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가족의 행복을 알려줘서 고마워 남편
이 글에서의 남편은 이 이야기 시점 당시에는 남자친구였다.
지금의 남편과 사귀던 때부터 나는 엄마와 언니가 이상하다는 확신을 하게 되었다. 이전부터 엄마 언니가 이상하다는 것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가족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내가 들은 말과 내가 겪은 일을 말할 수 없었다.
"엄마가 나한테 쓸모없고 멍청한 애라고 하면서 물건을 던져서 멍이 든 거야.",
"엄마가 나를 임신했을 때 자살하고 싶다고 많이 생각해서 내가 예민한 거래.",
"엄마가 어제 내가 11시 이후에 들어왔다고 내 뺨을 때렸어."
마음이 찢어지게 아프던 때마다, 누구에게라도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나는 어제 들은 말도, 며칠 전 겪은 일도 내가 만나던 남자친구들에게 말할 수 없었다.
어쩌다가 엄마 언니가 나에게 폭언을 하고 물건을 던진 이후
엄마 언니가 나에게 심한 말을 했다고 말을 꺼내기만 해도, 내가 사귀었던 남자친구들은 늘 이렇게 말했다.
"엄마가 말을 심하게 하셨네, 그래도 너를 너무 사랑하니까 걱정돼서 그런 걸 꺼야."
나는 항상 어디에 가서도 내가 겪은 일을 말할 수 없었다.
친구에게 말하면 그건 내 흠이었고, 남자친구들에게도 절대 말할 수 없었다.
나는 나 스스로 예민하고 끈기가 없고 이기적인 사람이어서 다른 사람들을 배려 안 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했다. 엄마 언니가 늘 나에게 나는 그런 애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취업을 하고 회사 생활을 하다 보니, 나는 내가 스스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괜찮은 사람이었다.
취업 전까지 엄마와 언니가 늘 나에게 위에 쓴 말들로 비난을 했기 때문에,
날 괴롭히는 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한편으로는 나 스스로 그런 면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항상 내가 하는 말과 행동에 대해 곱씹으며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실수한 것이 없는지 걱정했다.
대학원을 다닐 때 까지도 이런 걱정은 계속되었다. 취업을 하고 회사생활을 하면서 연말마다 피드백을 받았다. 연봉협상 전 팀원들로부터 받은 내 평가는 내가 스스로에 대해 생각한 것과 매우 달랐다. 나는 나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나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잖아?'
자신감이 생겼다. 엄마와 언니가 나에 대해 하는 비난의 말들이 취업 이후 매우 희미하게 들렸다. 나에게 더이상 엄마와 언니가 가스라이팅을 하면서 하는 비난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내 머리에는 더 중요한 일들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있었기 때문이다.
첫 직장이 업무적으로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이직을 하기로 결심했다.
마음을 먹고 열심히 이직준비를 했다.
그리고 이직에 성공했다.
여러 번의 서류 접수, 코딩테스트, 면접, 인성 테스트를 거쳐 이직에 성공한 후 집에서 먼 회사로 출근을 하게 되었다.
서울에 있는 집에서 판교로 출근하기는 생각보다 힘들었다.
이직한 회사는 적응이 안 됐다. 재택을 안 하던 전 회사와는 달리, 이직한 회사는 재택으로 근무를 했기 때문에 사람들 얼굴은커녕 누가 누군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업무 관련해서 모르는 것을 누구에게 어디서부터 어떻게 물어봐야 하는지도 몰랐다. 가끔 대면 회의를 해야 할 경우 부서 직원들이 전부 모여서 회의를 몇 번 했을 뿐이었다.
그때 남편을 처음 봤다.
남편과 사귀게 된 이후 연애 초기부터, 제주도 여행을 가기 전까지 많은 일을 함께 겪었다.
(엄마가 어떻게 제 연애를 방해했는지 궁금하시다면 링크의 스토리를 읽어보세요.)
남편은 내가 엄마와 언니에게 겪은 일을 용기 내서 말하자, 나를 걱정했다.
남편은 나와 처음 사귈 때부터 내 나르시시스트 엄마가 데이트를 하고 내가 집에 들어갈 때마다, "차량이 도착했습니다."를 듣고 내가 11시 이후에 집에 들어왔다고 나를 미친 듯이 괴롭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내 이야기를 듣고도 사실 별로 놀라지는 않았다.
당시 남자 친구였던 남편은 내가 제주도 여행을 오기 전까지 엄마와 언니에게 시달렸던 이야기를 하는 내내 아무 말 없이 다 들어줬다. 몇십 분을 이야기해도 끼어들거나, 조언을 한다고 말을 끊지도 않았다.
이야기를 들은 남편은 나를 걱정해 줬다. 내가 이야기를 끝낸 후, “근데 사실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나는 엄마 언니는 사실 신경도 안 쓰여” 라고 센 척을 하자, 남편은 걱정되면 걱정된다고 말하도 된다고 나에게 말해줬다.
남편은 나한테 내 엄마랑 언니가 이상한 거 같다고 말했다. 엄마랑 언니가 하는 말들이 다 이상한데, 내가 이상하다고 느끼면 이상하다고 하는 게 맞다고 했다.
내가 남편에게 "엄마랑 언니가 좀 나한테 집착해서 내가 힘들어, 내가 나 스스로 내 가족이 나한테 못된 말을 하는 나쁜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게 좀 이상하지만..."이라고 말하자, 남편은
"아니, 상처 주는 말을 가족이 하면 더 나쁜 거지."라고 말했다.
나는 그 여행 이후 남편에게 내가 엄마 언니와 겪었던 일들을자세히 얘기해 줬다.
내 어린 시절부터의 이야기와,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 나르시시스트 엄마와 언니가 나를 힘들게 한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남자 친구가 나를 불쌍하게 생각하고 나와 헤어지고 싶어 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다.
남편은 내 이야기를 듣고 나를 불쌍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원하지 않던 과한 위로를 해주지도 않았다.
남편은 내가 힘들었던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나를 안아주면서 내가 그동안 고생했다고 했다.
남편과 결혼을 하기로 한 이후, 엄마를 결혼식에 부르지 않겠다고 말하기까지 나는 너무 힘들었다. 내가 엄마와 언니랑 거리를 두겠다고 말하자 남편은 그렇게 하는 게 내 마음이 편하면 자기는 상관없고 다 이해해 준다고 했다.
나는 남편이 정말 괜찮아서 그렇게 말하는 거라는 걸 알았다. 남편은 가끔 내가 놀랄 정도로 나보다도 더 이성적인 사람이라서, 내가 감정적으로 슬픈 기분에 빠질 때마다 나를 확-! 현실로 돌아오게 도와줬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엄마 언니와 거리를 두는 것과, 결혼식에 엄마 언니를 부르지 않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나는 남편에게 엄마 언니를 결혼식에도 부르지 않고 연을 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처음 할 때부터,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남편에게 가끔 이런 말을 반복해서 했다.
"오빠가 나처럼 가족한테 상처를 많이 받아서 슬픔이 많고, 결혼식에 엄마랑 언니를 부르지 않은 사람 말고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을 만났다면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오빠한테 너무 미안해."
"나보다 더 사랑받고 자란 사람을 만났다면 좋았을 텐데 오빠한테 내가 미안해 ㅠ."
이런 말을 할 때마다 내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그런 말은 하지 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네, 난 자기를 만났기 때문에 행복한 거야."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앞으로 나랑 행복하면 돼."
처음 사귀던 때부터 결혼 준비를 하는 내내 내가 엄마와 언니 때문에 미안하다고 해도,
결혼식에 엄마를 부르지 않아 미안하다고 해도
남편은 항상 자기한테 내가 전혀 미안해할 필요가 없다고 말해줬다.
내가 “나처럼 가족이랑 사이가 안 좋은 여자랑 결혼해서 이런 일을 같이 겪게 했잖아.", "울 엄마가 오빠를 안 좋아한다는 말을 듣게 했잖아."
라고 내가 말하면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자기가 나를 안 좋아한다고 한 것도 아닌데 뭐. 자기가 나 사랑해 주는데 뭐가 문제야."
무슨 복인지, 나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가족을 정말 잘 택한 것 같다.
지금도 남편은 나에게 불만이 있거나 고쳐주기를 바라는 게 있으면 정말 예쁘게 말한다.
나는 점점 남편과 닮아 가고 있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에 짜증을 낼 필요가 없고, 가족끼리 큰소리를 한번도 안낼 수 있다는 것을 남편을 만나고 나서 나는 깨달았다.
결혼식 전, 결혼식에 엄마 언니를 부르지 않겠다고 시부모님께 말씀드리는 건 또 다른 큰 산이었다.
나는 마음이 무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