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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ngerine Oct 25. 2023

딸을 남처럼 대하는 아빠

아빠, 땡큐!


엄마 언니와 전쟁을 치른 후 무사히 이사를 마쳤다.


결혼식 전 미리 신혼집에 필요한 물건들을 가져다 놓고 남자친구와 몇 달 동안 살고 있었기 때문에 이미 본가가 아닌 신혼집이 내 집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대학교 때부터 독립해서 살았기 때문에 21살 이후로는 엄마와 같은 집에서 살았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결혼 전 독립을 끝내고 엄마와 같은 집으로 합쳐 몇 달 동안 지낸 것이 성인 이후 엄마와의 유일한 동거기간이었다. 그 8개월 남짓 되는 기간 동안 같이 살면서 엄마와 언니에게 정이 뚝 떨어졌기 때문에 신혼집에 이사를 하고 나니 정말 미친 듯이 기뻤다.


이사 짐을 정리하기도 전에 나는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내 결혼식에 엄마 언니를 부르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렸다.


아빠에게 엄마 언니와의 갈등과 엄마 언니를 결혼식에 부르지 않겠다고 결심한 이유에 대해 말했다.

나는 아빠가 내 결정을 존중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내 결정에 대해 실망을 할 수도 있고, 많이 걱정도 되고 속상하겠지만 내 선택을 이해해 달라고.


아빠에게 내 결심에 대해 말하면서 내가 당한 일들을 구구절절 이야기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내 성격이 그렇다.

브런치에 글을 쓸 때는 tangerine이라는 이름으로 내가 겪은 일들과 엄마 언니에게 들은 말들을 적을 수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아빠에게 조차 내가 겪은 일들을 상세하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엄마 언니와 겪은 일을 자세히 말하는 건 뭔가 내가 겪은 힘든 일들을 아빠에게 하소연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들과의 힘든 기억을 굳이 아빠에게 말해 나의 힘든 감정을 공유하고 싶지 않았다.


오프라인에서 나의 모든 것을 공유하는 사람은 그때나 지금이나 내 남편밖에는 없다.




아빠는 내 이야기를 다 들은 후, 곧바로 내 맘대로 하라고 했다.


아빠는 엄마와 있었던 일들을 나에게 들려줬다. 아빠가 엄마랑 결혼하던 당시 내 외할머니가 너무 심하게 반대를 했는데, 엄마가 얼마나 죄인처럼 굴었는지 결혼 준비 당시 아빠가 무슨 범법행위를 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아빠가 엄마랑 같이 지내면서 힘들었던 일들이 나에게 다 말해주지도 못할 정도로 너무 많은데, 나도 아빠랑 비슷하게 힘든 시간을 보낸 것 같다고 했다.


아빠는 내가 엄마 언니와 있었던 일들을 자세히 말하지 않았는데도 내가 겪은 일이 어떤 것인지를 바로 이해했다.


언니가 내 결혼식을 망치겠다고 말하고, 엄마가 내 결혼식에 안 왔으면 좋겠냐고 말하면서 나를 괴롭혔다는 사실은 아빠에게 구체적으로 말했다. 아빠는 내 이야기를 듣고는 이렇게 대답했다.


"너희 언니 정말 나쁜 년이구나!"


너무 신기했다.

가족 중 유일하게 내가 미친 게 아니고 정상이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아빠라니. 내가 겪은 일들이 진짜라고 믿어주고, 다 이해한다고 고생이 많았다고 말해주는 가족이 있다니! 엄마와 언니랑 연을 끊겠다는 나에게 가족이라고 무조건 이해하고 참고 살아야 하는 건 아니라는 아빠의 말은 정말 큰 위로가 되었다. 아빠는 너무 힘들면 가족이더라도 거리를 두고 사는 것도 괜찮다고 했다. 내가 지금도 엄마 언니와 연을 끊은 이후로 죄책감 때문에 고통스러워하지 않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것은 아빠와 남편 덕분이다.  


나는 아빠가 내 편을 들어준 것에 대해 사실 안도하면서도 굉장히 놀랐다. 당시도 그렇고 지금도 드는 생각은 아마도 아빠는 나를 독립적인 한 개인으로 존중하기 때문에 내 결정에 대해 크게 반대를 하지도, 걱정을 하지도 않은 것 같다.


결혼 전 아빠와 통화 중 내가 엄마와 언니를 부르지 않겠다고 말했을 때 아빠가 반대하지 않아서 놀랐다고 말하자 아빠는 나한테 이렇게 말했다. 너는 이미 성인이고 결혼식은 너희 부부의 이벤트이며, 그 이벤트에 누구를 부를지는 너희 결정에 맡기는 게 당연하다고. 그게 엄마던 언니던 누구든 말이다. 아빠는 자기가 내 결혼식에 엄마와 언니를 부르지 않는 것에 대해 반대할 이유도 없고, 반대하고 싶다고 해도 나에게 강요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아빠는 내가 나중에 생각이 바뀔 수도 있다고 했다.


나는 절대로 내 맘이 변할 일은 없다고 말했다.


사실 엄마랑 언니가 나한테 사과를 하면서 제발 결혼식에 불러달라고 했다면 내 결정을 바꾸고 엄마 언니를 내 결혼식에 초대했을 수도 있다. 나는 진심으로 그들이 나에게 사과를 하면서 미안했다고, 결혼식에는 그래도 가고 싶으니 화해를 하자고 연락해 오기를 바랐다. 하지만 나의 나르시시스트 엄마 언니는 그러지 않았다.


나의 나르시시스트 엄마는 내가 이사를 하고 난 이후에도 나에게 필요한 것이 있을 때만 카톡을 했고, 내가 답장을 하지 않으면 엄마랑 연을 정말 끊으려는 거냐며 악담이 섞인 카톡을 보냈다. 나르시시스트 들은 사과를 하지 않는다. 그들은 절대로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순간 그들의 세상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가족은 피 외에 많은 것을 공유한다. 가족은 긴 세월 동안 함께 시간을 보내고 같은 경험을 통해 추억을 공유한다. 그 추억과 함께한 시간들이 어떤 경험이었는지에 따라 가족은 연결되기도 하고 끊어지기도 한다. 같은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가족으로 묶여야 할 이유는 없다.




나는 부모와 자녀가 서로를 남처럼 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자기 가족을 남처럼 대하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나는 서로를 남처럼 생각할수록 가족 관계가 행복해진다고 생각한다.


부모가 자녀를 내 품의 아이처럼 생각하는 것은 아이가 성인이 된 이후부터 그만둬야 한다. 자녀가 성인이 되고, 경제적으로 자립을 하거나 독립을 하면 부모는 자녀를 남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자녀를 위한 다는 이유로 조언을 가장한 간섭과 참견을 해서는 안된다. 아무리 자녀를 도와주고 싶더라도, 부모가 경제적으로 지원해 주면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녀가 행동하기를 바라면 그게 바로 간섭이고 통제다. 또는 내가 그래도 너를 키웠는데 이 정도는 받아야지 라는 생각으로 자녀가 효도를 하기를 바란다면 부모 스스로 외로워질 뿐이다.


자녀도 성인이 된 이후 자립을 하고 독립을 해야 한다. 입을 벌리고 있는 참새 새끼처럼 부모님이 무언가를 계속 떠먹여 주기만을 바라면 안 된다. 독립은커녕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않으면서 부모님에게 지속적으로 물리적, 정서적 도움을 받고 싶어 하는 자녀는 부모 노후를 방해하는 리스크일 뿐이다. 내가 그래도 자녀인데, 좀 도와주세요 라며 부모님에게 무작정 손을 벌리면 안 된다. 내 부모니까 이 정도는 해달라고 해야지 라는 생각으로 부모님의 지원을 바라는 자녀는 남보다 못하다.


내 나르시시스트 언니는 최근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서 자기가 집을 구하는데 급하게 돈이 필요한데 어차피 줄 돈이니 자기가 결혼하게 되면 줄 결혼 자금을 당겨서 미리 줄 수 없냐고 물어봤다고 한다. 아빠는 나한테 사귀는 사람도 없으면서 이런 말을 하는 언니가 걱정된다고 했다. 이미 몇 백만 원을 빌려 달라고 해서 여러 번 빌려줬는데, 언니가 또 무슨 일 때문에 돈이 필요한 건지 아냐고 물어봤다. 나는 이 말을 듣고 별로 놀라지도 않았다.


"저는 연락도 안 하고 지내는데 언니가 어디에 돈이 필요한지 어떻게 알겠어요. 독립은 하고 싶은데 엄마가 이젠 보증금 할 돈을 안 주는 걸 수도 있고, 엄마가 시켜서 아빠한테 돈을 달라고 하는 걸 수도 있죠."

"수억이 넘는 돈을 들여서 고등학교 때부터 유학 보내고 박사까지 공부시켜 줬으면, 그 나이 먹고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직업을 구하던지 그게 안되면 자기 분수에 맞게 살아야죠."  


부모와 자녀가 서로 도와주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이런 도움이 당연한 것은 아니다. 어느 쪽이던 도움을 청하고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그게 가족이라는 이유로 당연하게 여겨져서는 안 된다.


서로를 남처럼 대해야 한다는 것이 길을 지나가다가 스치는 사람 정도의 사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나의 경우처럼 엄마와 딸의 연을 끊고 지내는 것을 말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부모와 자녀가 정서적으로 서로 분리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자녀도 부모를, 부모도 자녀를 남을 대하듯 선을 지키고 예의를 갖춰 대해야 한다. 가족에게 도움을 받았다면, '가족이니까 이 정도는 해주는 게 당연한 거야'가 아닌, '가족이라는 이유로 나를 이렇게 도와주다니 너무 고맙네'라고 생각해야 한다.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의 일에 간섭하지 않는다. 남에게 걱정된다는 이유로 조언과 잔소리로 스트레스를 주지도 않는다. 부모와 자녀는 서로를 조심스럽게 대해야 한다. 내 가족이니까 잘 알고 있다는 착각도 하면 안 된다.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가족에 대해 잘 모를 수도 있다.  


 

서로를 남처럼 대해야 부모와 자녀가 더욱 길게 행복하게 지낼 수 있다.  




아빠는 나에게 결혼 자금을 지원해 주고도, 그 돈을 어떻게 쓰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 돈을 어디에 썼는지 어떻게 쓸 예정인지 물어본 적도 없다. 우리 부부가 집을 살 예정이라고 해도, 이사를 갈 예정이라고 해도 아빠는 걱정을 가장한 간섭을 하지 않는다. 우리가 먼저 조언을 구하면 아빠의 경험을 바탕으로 질문에 대한 대답을 줄 뿐이다.


아빠는 내 엄마와 시어머니가 궁금해하며 반복해서 물어봤던 것처럼, 나와 내 남편이 앞으로 우리 부부의 생활비를 어떻게 관리할지에 대해서도 절대로 물어보지 않았다.

우리 부부가 '생활비를 어떻게 관리할 건지'가 도대체 왜 궁금한 건지 모르겠다.

내 엄마와 시어머니가 우리 부부의 생활비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도 전혀 이해되지 않지만, 그게 궁금해서 물어본다면 우리에게 물어보는 태도가 적어도 조심스럽기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내 딸이니까, 내 아들이니까 이 정도는 물어봐도 된다는 건가? 아무리 부모라도 자녀의 생활비에 대해 과도하게 궁금해하고 간섭해서는 안된다. 자녀가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고 살게 되면 더더욱 조심해야 한다. 내 자녀가 아닌 자녀 부부의 일이기 때문이다. 양가 어머니들은 내 자녀의 배우자도 나의 가족이라고 생각한 걸까?


수십 년을 남으로 살던 사람이 내 자녀의 배우자가 되었다고 갑자기 가족이 되지는 않는다. 수십 년을 알고 지낸 가족도 조심스럽게 대해야 서로 눈 감기 전까지 화목하게 지낼 수 있는 마당에 내 자녀가 배우자라고 데려온 남의 집 자식에게까지 선을 넘는 간섭을 하는 나와 내 남편의 어머니들을 보면서 나는 정말 경악했다.


시어머니가 우리 부부의 생활비를 궁금해하며 간섭하셨기 때문에, 나도 시부모님의 노후 준비와 연금에 대해 남편에게 물어봤다. 시어머니는 최근 시부모님의 은퇴 후 생활비 관련 계획에 대해 나에게 직접 말해주셨다. 아무리 부모님이더라도 무언가 궁금해서 타인에게 사적인 질문을 하고 간섭을 한다면, 질문을 한 당사자도 같은 질문과 간섭을 받을 경우 대답해야 한다. 이건 우리 부부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이다.


나는 엄마와 연을 끊었기 때문에 우리 부부는 내 엄마의 간섭이나 참견 때문에 싸운 적은 없다. 시어머니가 우리 부부가 부부싸움을 하는지 시어머니 자신과 남편의 사촌누나가 궁금해한다는 사실을 나와 남편에게 물어본 것 때문에 우리 부부가 싸우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실지 궁금하다. 남편과 나는 더 이상 부모님들이 하는 불편한 말들을 가지고 서로 싸우지 않고 거울치료 작전을 쓰기로 했다.  


시어머니가 “너희 부부는 부부싸움 하니? 아들 사촌 누나가 궁금해하더라” 와 같은 말을 하면 우리 부부는 이렇게 대답하기로 했다.


“글쎄요 어머니, 저희가 싸울까요 안 싸울까요? 평생 궁금하시게 말씀 안 드릴래요ㅋㅋ."

"엄마 아빠는 부부싸움해?”


 


내 엄마와 시어머니는 결혼 전부터 나와 내 남편에 대해 많은 것을 궁금해하고 간섭했다.

내 엄마가 나르시시스트인 것과는 별개로, 엄마와 시어머니는 결혼식에 대한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서 아이를 갖는 문제와 같이 우리 부부와 관련된 것에 대해 정말 내가 경악할 만큼 선을 넘었다. 양가 어머니들은 선을 넘는 질문과 간섭을 하면서도 그게 무슨 문제인지를 모르는 것 같았다. 이게 가장 큰 문제였다.  


나는 결혼 전부터 결혼 이후 6개월 뒤까지 착한 며느리 병에 걸려, 남편의 어머니에게 '어른에게 따지지 않는 착한 사람처럼 보여야 한다'는 이상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신혼 초까지만 해도 시어머니에게 우리 부부에 대한 참견과 나에 대한 불편한 말과 질문들을 들으면서도 웃는 얼굴로 대답한 후,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오빠의 어머니는 도대체 왜 그런 걸 물어보시는 거야?"라고 따졌었다.


착한 며느리 병을 고친 후 시어머니와의 관계가 편해지게 된 스토리는, 나르시시스트 엄마와의 이야기를 완성한 이후 적을 예정이다. 지금은 다행히도 시어머니와의 관계가 매우 편하다.  



다시 아빠와의 이야기로 돌아오자.  


나와 남편은 딩크다. 남편과 내가 상견례 전 딩크라는 사실을 말한 이후부터 지금까지도 아빠는 아무런 잔소리 섞인 말도 없었다. 아빠는 아이를 갖는 건 우리 부부의 뜻대로 할 일이라고 했다.


내가 딩크를 하겠다고 말하자 "너는 이기적이게 너 생각만 하고 아이를 가질 생각도 안 하는 나쁜 년이야!" 라며 울면서 소리 지르던 나르시시스트 엄마를 생각하면 정말 아빠의 반응이 당연한 것을 넘어 고마울 지경이다.


우리 커플은 상견례 전부터 양가 부모님에게 우리 부부는 아이를 갖지 않겠다고 강력하게 말했었다. 남편과 나는 상견례 자리에서는 아이 관련된 이야기는 하지 말아 달라고 각자의 부모님에게 몇 번이고 당부의 말을 했다.


시어머니는 상견례 자리에서 내 남편이 결제를 하러 자리를 비우자마자 나와 남편이 아이를 낳으면 얼마나 이쁘겠냐고 하셨다. 나의 나르 엄마는 눈을 반짝이며 기다렸다는 듯이 자기 지인들이 손주 손녀를 보고 너무 기뻐한다며 나와 내 남편이 아이를 가지면 너무 예쁠 것 같다고 맞장구를 쳤다. 상견례 전부터 딩크를 하겠다고 강하게 말한 나를 앞에 두고, 우리 부부가 아이를 가지면 너무 이쁘고 좋겠다며 하하 호호 이야기 꽃을 피우는 양가 어머니들을 바라보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웃기고들 계시네, 내 배는 노키즈 존이거든요?'



이후 이 이야기를 들은 남편은 "엄마가 스스로 시어머니 점수를 깎아먹었네."라고 말했다.

상견례를 하던 당시 남편은 정관수술을 한 상태였다. 양가 부모님들은 딩크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얼마나 확고한지 아직도 전혀 모르실 거다. 결혼 이후에도 우리가 아이를 갖지 않겠다고 말하자,

"너희가 갖지 않겠다고 한다고 너희 뜻대로 되겠니. 아이는 하늘이 주는 거지."라고 말하던 시어머니가 이 사실을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이실지 궁금하다.


아이는 하늘이 주는 게 아니라, 정자와 난자가 수정되는 과정을 거쳐 생기는 거다.

내 남편의 정자들은 더 이상 바깥세상을 볼 수 없다.

어머니의 바람과는 다르게 우리는 우리의 뜻대로 살고 있다.






아빠는 결혼 한지 1년이 넘어가는 지금도 나를 거의 피만 섞인 남처럼 대한다.

나를 남처럼 대하는 아빠와의 관계가 나는 정말 편하다. 가끔 서로 건강 한지, 힘든 일은 없는지 정도만 물어보고 금방 끊는 전화도 너무 좋다. 아빠와의 전화 통화가 숨이 막히지 않고 아무런 부담이 되지 않는다는 게 이렇게 좋은 일이라니. 엄마와 했던 전화 통화와는 너무나도 달라서 아빠와 전화로 수다를 떨고 나면 오히려 기분이 좋아진다.


아빠와 나는 연락을 자주 하지 않는다. 한 달에 두세 번 정도 통화를 하고 카톡을 주고받는다. 가끔 안부를 물으려고 전화를 해서 내가 수다를 떨면 아빠는 빨리 끊고 싶어 한다. 내가 바쁠 때 아빠가 전화가 오면 내가 빨리 끊고 싶어 한다. 은퇴를 앞둔 아빠는 내년에 은퇴를 하고 나면 나에게 지금보다는 더 자주 전화를 해서 수다를 떠실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아빠와 함께한 세월의 공백이 존재하기에, 가끔 만나거나 통화를 하면서 점점 아빠에 대해 알아가는 중이다. 앞으로는 아빠가 귀찮아해도 더 자주 연락을 해 볼까 싶다.


아빠는 결혼 이후 우리 부부에게 적지 않은 용돈을 주면서도, 마치 기부를 한 것처럼 생색은커녕 잔소리도 하지 않는다. 정말 고마운 마음이 들면서도 가슴 깊은 곳에서 존경과 사랑이 샘솟는다. 지갑은 열면서 입을 닫는 게 얼마나 힘든 건지 알기 때문에,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우리 부부도 아빠 생일이나 명절에는 용돈과 선물을 드린다. 아빠 생일이나 명절 전에 만나서 가끔 밥을 먹으면 서로 요즘 뭐 하고 지내는지, 요즘 관심사는 뭔지 등등을 이야기하다가 헤어진다. 아빠는 나한테 바라는 게 없다. 뭘 해달라는 부탁도 없다. 내 남편에게도 너가 사위니까 이렇게 해야지 라는 태도로 말하지 않는다. 나한테 바라는 것도 없으니 내 남편한테는 더더욱 바라는 게 전혀 없다. 아빠는 우리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지내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아빠는 명절에 자기를 만나러 오지 않아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이번 추석 때도 우리 부부는 추석 연휴를 우리끼리 보냈고, 아빠에게는 연락만 드렸다. 우리 부부는 추석 이후 그다음 주에 아빠를 만나서 식사를 했다.

서로 차로 몇십 분 되는 거리에 살고 있더라도, 명절 연휴 기간에 평소보다 더 막히는 길에서 시간과 에너지를 버려가며 긴 교통체증을 이겨낸 후 지친 모습으로 힘들게 만나 마치 숙제를 하듯 밥을 먹고 헤어질 필요가 전혀 없다는 의견에 우리 부부와 아빠 모두 동의했다. 


자신의 생일과 이번 추석 전 자기를 만나러 오라고 말하기 위해 내 남편에게 연락한 나의 나르 엄마와는 매우 상반되는 태도다. 엄마가 최근 내 남편에게 연락한 이야기는 다른 글에서 더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시부모님께도 연락을 드리고, 앞으로도 명절에는 우리 부부끼리 시간을 보내겠다고 말씀드렸다. 설이나 추석 연휴에는 우리 부부와 시부모님 부부가 따로 각자 긴 휴가를 보내고, 명절 전 후로 만나 식사를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게 어떻냐고 말씀드렸다. 시부모님은 오케이 하셨다.


명절은 온 가족이 다 같이 모여서 시간을 보내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부부는 양가가 제사도 지내지 않는데 굳이 그 황금연휴에 서로 만나서 지친 모습으로 헤어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설이나 추석과 같이 무슨무슨 날마다 부모님들과 숙제하듯 만나는 것보다는, 연휴가 아닌 날에 서로 편한 시간을 맞춰서 자주 보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해외에 계시지만 남편 부모님은 내년에 한국에 들어오신다. 시어머니는 나에게 시부모가 한국에 들어간다고 해서 우리 부부가 자주 보고 인사하러 올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셨다. 어머니가 나에게 먼저 말해주시지 않아도 시부모님이 한국에 들어오신다고 해서 우리 부부가 자주 찾아 뵐 생각은 없었지만, 막상 어머니가 먼저 이렇게 말씀해 주시니 오히려 내가 먼저 시부모님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이번 겨울에 시부모님이 계신 해외로 휴가를 가기로 했다.  


너만 행복하고 건강하기만 하면 우리는 바랄 게 없다고 말만 하면서 자녀에게 집착하고 간섭하는 부모님들이 많다. 나는 내 아빠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내 아빠는 물론 좀 극단 적일 정도로 나를 대면대면하게 대하기는 한다. 하지만 나는 이게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연락을 자주 안 하고 자주 보러 오지 않는 자녀나 사위 또는 며느리는 살갑지 않고 정이 없다고 서운해하며 자녀들과 지나치게 가까이 지내고 싶어 하는 어른들이 평균이라고 생각하는 우리나라 정서가 나는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부모와 자녀 양쪽 모두 서로 가깝게 지내면서 자주 연락하고 보고 싶어 한다면 큰 문제는 없을 거다. 문제는 일방적으로 한쪽만 너무 가깝게 지내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고, 그럴 경우 반대쪽은 매우 빠르게 멀어진다는 것이다.


내 엄마는 나르시시스트여서 나를 많이 괴롭혔지만, 딸을 남처럼 대하는 아빠가 있어서 다행이다. 아빠가 엄마와 이혼을 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보통 부모 중 한 명이 나르시시스트일 경우, 다른 부모도 같은 성향을 보이거나 자녀의 편에 서지 않고 나르시시스트 배우자 편을 드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 있는 사람들의 경우 마음이 아프지만 부모 모두와 거리를 두거나 연을 끊어야 할 수도 있다.

나르시시스트가 더 나은 모습으로 변할 확률이 0%에 가까운 것처럼, 함께 살고 있는 배우자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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