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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향 Apr 15. 2024

빈방

일상의 글쓰기 - 글감[상]


걸어서 30분 남짓의 학교에 오가는 길은 내 상상의 놀이터였다. 거기에선 외국인 친구가 생겨 영어를 근사하게 잘하고, 인기 많고 잘생긴 남자애가 고백하기도 했다. 전교 1등을 해서 친구들이 우러러본다던가, 아빠가 부자가 되어 나타날 때도 있었다. 가끔은 멋진 2층 주택을 설계하고 각각의 방을 꾸몄다. 분홍색 커튼이 풍성하게 드리운 창가에 하얀 탁자가 놓이고, 양쪽 벽 선반엔 흰색, 자주색 데이지 화분과 곰 인형이 자리했다. 벽지, 침대, 이불, 책상, 벽에 걸린 액자, 책꽂이의 책과 꽃이 심긴 화분의 색깔과 모양까지도 세세하게 꿈꾸곤 했다.


외삼촌 댁에 얹혀살았던 중학교 3년 동안은 외할머니와 함께 방을 썼다. 고등학생이 되자, 중학교에 입학하는 첫째 남동생까지 섬에서 나와야 해서 더는 신세 지기 어려웠다. 이번에는 큰고모 댁에 보내졌다. 대문 옆에 자리한 부엌이 딸린 방에서 동생과 둘이서 지냈다. 고모가 사촌 동생이 과외받을 동안에 방을 비워 달라고 한 모양이었다. 동생이 밖에서 기다리는데 생각할수록 부아가 났단다. 쥐뿔도 없는 게 자존심은 셌다. 엄마가 속상해하면서도 달래 주라며 전화했다. 난 그쯤은 참는 거라고 혼냈다.
 
고등학교 2학년 들어서, 엄마가 섬에서는 끝없이 일해도 더 이상 희망이 없다며 목포로 나왔다. 그녀는 시장에서 작은 가게를 세 얻어 장사를 시작했다. 이익을 좀 덜 얻더라도 품질이 좋은 곡물을 사다가 넉넉히 더 얹어주는 방법으로 단골손님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곧이어 아빠도 합류하면서 주택 한편에 붙은 사글셋방을 얻었다. 알고 보니 신안의 어느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 댁이었는데 외관은 깔끔한 편이지만 작고 오래된 집이었다. 섬에 남겨졌던 둘째와 막내 남동생을 데리고 와서 온 가족이 한집에 살게 되었다. 학교 끝나고 이사한 집을 찾아 들어온 내게 초등학교 5학년, 3학년이었던 동생들이 좋아서 뛰어오던 게 눈에 선하다. 우리 4형제는 큰 방, 부모님은 작은 방을 썼는데 아빠에게는 비좁아서 다리를 다 펴지 못하고 잤다. 화장실에 가려고 밤중에 불을 켜면 바퀴벌레 열댓 마리가 순식간에 흩어졌다. 바퀴벌레는 끔찍했지만 그래도 나는 불행하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대학 원서 쓸 무렵, 새로 지은 13평짜리 시영 아파트에 입주했다. 거실도 들일 수 없는 작은 평수였지만 새 벽지와 장판으로 단장된 집은 눈부셨다. 입식 화장실, 싱크대, 베란다, 엘리베이터, 놀이터를 보고 막내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춤을 췄다. 안방은 넓어졌지만 작은 방은 여전히 좁아서 아빠가 누우면 발이 벽에 닿았다. 부모님은 아침 일찍 나란히 나가서 저녁 늦게 들어왔다. 아빠의 배달 자전거는 봉고차로 바뀌었고, 엄마가 이대로 몇 년만 지나면 빚도 갚고 우리도 사람답게 살 수 있겠다고 했다. 여섯 식구가 좁은 줄도 모르고 복작복작 잘 지냈다.


대학교 2학년이 되었다. 주머니에 돈은 없어도 세상은 아름다웠다. 만나는 하루하루가 새롭고 재미있어 들떠 있었다. 온통 벚꽃으로 화려했던 어느 날 새벽, 작은 아빠가 목포 집으로 내려오라고 다급히 연락했다. 전화기 너머로 누군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싸늘한 기운이 온몸을 휘감았지만 무슨 일이냐는 말이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막 동이 트기 시작한 이른 아침에 들어선 방에는 삼촌, 고모들이 모여 흐느끼고 있었다. 처음 보는 병풍 뒤에 놓인 관 속에 아빠가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 심근경색이라는 낯선 단어도 말했다. 세상에 이런 어이없는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어째서 우리에게, 도대체 왜? 겨우 마흔다섯이었다. 아빠 무릎에 자리만 나면 어리광 피우며 앉아 있곤 하던 막내가 울다 울다 말했다. “누나랑 형들은 좋겠다. 아빠랑 오래 살아서.” 추억이 많아서 더 가슴 아플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르는 막내는 6학년이었다. 아빠가 사라진 그 회색빛 방에서 남겨진 이들은 계속 살아 내야 했다.
 
둘째 남동생의 중, 고등학교가 엄마 가게와 가까웠다. 둘째는 선생님께 허락을 받고 매일 하루에 두 번, 점심시간과 저녁 먹는 시간에 나와서 배달하고 다시 야간 자율 학습을 하러 들어갔다. 시장 사람들이 어쩌면 저렇게 이쁜 놈이 있냐고 칭찬했다. 성격이 활달하고 공부도 잘했다. 학교에서 엄마에게 어려운 형편에도 아들을 잘 키웠다고 ‘장한 어머니상’을 주었다. 삶은 팍팍했어도 엄마는 자식들 때문에 이겨 냈고, 자식들은 고생하는 엄마가 애처로워 일찍 철들었다.


이제는 가족 모두 각자의 안락한 방이 있다. 엄마 방도 정갈하게 잘 갖추어져 불편함이 없다. 내 맘에도  하나가 있다. 언제든지 다리 쭉 펴고 잘 수 있게 넓고 환하고 편안하다. 늘 준비되어 언제라도 내어 드릴 수 있는데 주인이 없어 빈방이다. 일상이 행복할수록 가슴 한편이 허전하고 먹먹해진다. 소중한 사람을 잃는다는 건 시간이 지나도 외로운 일이다. 어린 나를 꼭 껴안고 자던 아빠 품이 좋아서 숨을 못 쉬고 답답해도 참고 있었던 그 때가 그립다. 아빠가 보고 싶고, 외로워서,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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