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엄마가 나한테 무릎 꿇고 사과했으면 좋겠어. 그냥 말로만 말고 진심으로.” 막내딸이 멀찍이 떨어져 앉더니, 내 눈을 보고 또박또박 말했다. “그러면 네 맘이 풀리겠어? 그럼 할게.” 자식을 살리는 일이라면 못 할 것이 뭐 있겠나. 아이 앞에 무릎을 가지런히 하고 앉았다. “엄마가 정말 미안해. 네가 잘못한 일이 있더라도 너를 때리면 안 되는데 참지 못했어. 소리치지 않고 좋은 말로 타일렀어야 하는데 엄마가 어른답지 못했어.” “욕한 것도 사과해.” 딸이 덧붙인다. 쉽지 않구나. “그것도 정말 부끄럽게 생각한다. 엄마가 화를 다스리지 못해서 어린 너한테 상처를 줬어. 엄마 자격이 부족했어. 앞으로 다시는 그런 일 없을 거야. 용서해 줄 수 있겠니?” 눈시울이 붉어졌다.
첫째, 둘째 딸을 키우면서도 몇 번 손찌검을 한 적이 있었다. 소리를 지르며 화낸 건 다반사였고. 그 아이들이 그것을 부모의 훈육으로 받아들이고 문제삼지 않고 잘 컸다고 해서, 예민하고 내면의 힘이 약한 막내에게도 별일 아니지는 않았다. 후회가 가슴을 후볐다. 단단한 신뢰 위에서 다시 시작하려면 내 모든 화의 근원이었던 부모의 '권위'도 내려놓아야 했다.
막내딸은 올해 중학교 1학년, 사춘기가 한창이다. 서른아홉에 낳은, 생각지도 못한 늦둥이였지만, 우리 집을 화목하게 만드는 복둥이 노릇을 톡톡히 했다. 엉뚱하고 재미있는 데다 순둥순둥해서 주변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그런데 커갈수록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 느리고 긴장을 많이 했다. 공부와 스스로 해야 하는 일을 다 버거워했다.
4학년 때였다. 아이 마음에 원망의 씨앗이 심어진 시기가. 전학 간 시골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매일 학습지 숙제를 내주었다. 혼자 풀 수 없는 문제가 많아 저녁마다 도와주는데, 이해가 더딘 아이는 고집을 부리고 하기 싫어 갖은 핑계를 댔다. 혼을 내니 반항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늘 칭찬과 사랑, 관심만 받아서인지 조그만 지적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하지만 나는 자식이 부모에게 대들고 무례하게 구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모른다고 혼낸 게 아니라, 끝도 없이 말대꾸해서.’ ‘엄마가 계속 참았지만 너무나도 예의가 없어서.’, ‘자기 일에 엄마 탓을 해서.’라고 아이를 비난하며, 매를 들었던 내 행위를 정당화했다. 공부는 못해도 제 책임을 다하고 어려워도 포기하지 않고 해 내는, 자존감 높은 사람으로 키우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분노를 조절하지 못한 나약한 한 인간의 핑계일 뿐, 오히려 아이의 마음에 상처만 새기고 말았다.
내가 근무지를 옮겨야 해서 다시 목포로 전학 온 딸아이는 학년이 높아질수록 짜증이 늘었다. 학교에서는 당당하고 눈치 빠른 친구들의 기에 눌려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말 한마디 못 하는 것 같았다. 수학은 선생님이 너무 빨리 설명해서 하나도 이해를 못 하고, 영어는 원어민을 만나도 입이 떨어지지 않는 공부는 하기 싫다는 핑계로, 몇 달 전에 학원도 모두 그만뒀다. 집에서 혼자 하겠다고 했지만 의지와는 달리 휴대폰만 들여다보다 하루를 다 보냈다. 작은 일에도 삐딱하게 굴고, 공부 이야기는 아예 꺼내지도 못하게 했다. 어른들의 흠을 잡는 빈도도 잦았다. 문 닫고 들어가는 시간이 늘어났다. 조언과 참견은 역효과만 났고, 내 속도 타들어 갔다.
가을이 오자, 아이가 말했다. “예전엔 안 그랬는데, 지금은 너무 집중이 안 되고, 귀에서 온종일 같은 음악이 반복돼. 생각하고 싶지 않은 장면이 계속 떠올라. 내가 내 생각을 조절할 수가 없어. 찾아보니까 ‘귀벌레 증후군’이래. 계속 나는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했어. 평생 이렇게 사는 것은 너무 괴로우니까. 이건 내가 없어져야 해결될 것 같아. 엄마한테는 말하기도 싫었어. 어차피 공감해 주지도 않을 테니까. 완도에서 왜 나를 때렸어? 지금보다 착했던 것 같은데. 나는 그때부터 엄마가 싫어.”
아! 쓸데없는 기 싸움을 하느라 정작 아이의 고충을 놓쳤구나. 실은 잘하고 싶은데 뜻대로 안 돼서라는 것을, 그래서 좌절하고 자존감이 떨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왜 좀 더 지혜롭게 대처하지 못했을까? 이제라도 어려움에 빠진 아이를 도와주고 싶었지만 방법을 몰랐다. 아무리 잘해 줘도 밀어내기만 해서 말다툼으로 끝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아이는 때때로 거실 화장실을 두고 굳이 안방 화장실을 들락거리거나, 내가 있는 곳을 흘깃거리면서 주위를 맴돌았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엄마와 다시 좋은 사이가 되고 싶은 게 느껴졌다. 아빠에게 ‘공허하다’라는 단어를 썼단다. 그렇게 무겁던 가운데, 아이가 내게 사과를 요구한 것이다.
“엄마가 사과 안 할 줄 알았는데, 무릎까지 꿇어서 진짜 놀랐어. 이제 그 얘기는 안 할게.” 사과 한 번으로 아이의 표정에 생기가 돈다. 엄마를 용서할 수 있어서 홀가분해졌나 보다. 수학 학원을 다시 다니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아주 마음에 든단다. 조금씩 의욕이 생기는 것 같아 다행이다. 스트레스가 원인이라는 귀벌레 증후군의 증상도 점점 없어지고 있다고 한다. 저녁마다 같이 산책하며, 아이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조잘조잘 풀어놓는다. 말투가 순해졌다. ‘영어도 다시 시작하는 건 어때?’라는 말이 나오려는 걸 얼른 멈췄다. 안돼! 이제는 스스로 계획하고 책임지도록 해야지. 거리를 두고 요청할 때만 도와주자. 조금씩 헤쳐 나가면서 독립하도록 북돋고, 지지해 주기만 하자.
해남으로 가족 나들이를 다녀왔다. 피곤한데 아이가 저녁에 또 배드민턴 하러 나가자고 조른다. 훨훨 자유를 누려할 시기에 아직도 어린 아이가 딸린 늙은 엄마는,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 엄마 자격을 얻으려고 무거운 몸을 일으킨다. 아이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