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들여다보는 시간
“일주문부터 차문화체험관까지 묵언으로 걷겠습니다. 순간순간 발끝에 의식을 집중하시고요. 무릎 아래로만 걷지 말고, 배를 끌어당기면서 배꼽 아래 근육 전체를 다 사용하세요. 천천히 걷는 게 생각보다 쉽지가 않아요. 더 흔들리는 느낌이 들 거예요. 입은 닫고, 귀는 자연에 열고 가겠습니다.”
템플스테이 둘째 날, 아침공양을 마치고 아홉 시에 일주문 앞에 다시 모였다. 양쪽 귀 뒤쪽에 머리핀을 단아하게 꽂고 긴 머리를 어깨까지 늘어뜨린 보살님 뒤로 회색 개량 한복 바지에 청색 조끼를 단정히 입은 십여 명의 사람들이 천천히 따른다. 절에 사는 강아지가 어제에 이어 길을 인도한다. 영락없이 프로그램을 꿰고 앞서 가는 녀석이다. 배꼽에 손을 얌전히 얹고 곧은 자세로 자갈이 깔린 일주문을 지난다. 발뒤꿈치부터 천천히 내디딘 후, 발바닥 가운데를 거쳐 엄지발가락으로 힘을 모은다. 뒷발은 섣불리 떼지 않고 앞꿈치로 마지막까지 지탱한다. 허리와 등을 펴고, 아랫배에 힘을 주고 엉덩이를 쪼인다. 고요히 발과 몸의 동작에 집중한다.
걷는 게 무슨 무술 같다. 입을 쉬지 않던 중년들이 잠잠해지고, 아저씨들은 왜 나이가 들수록 말이 많아지냐며 흉보던 내 입도 순하게 다물어졌다. 이제 조금씩 고장 나기 시작한, 삐걱거리는 몸에 신경을 모으며 한 발 한 발 춤추듯 나아간다. 진지한 예식을 치르듯 슬로모션으로 움직이는 나이 든 선배들을 보니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간다. 이렇게 순진하고 귀여운 교장선생님들의 뒷모습이라니. 균형을 못 잡고 비틀거리기도, 자꾸만 오른쪽으로 치우쳤다가 다시 돌아오기도 한다. 배에 손을 모으라니까는 아까부터 합장하고서 입술을 동그랗게 만들어 힘쓰고 있는 옆 선배도 우습다.
맞은편에 어르신 네 분이 올라오고 있다. 그중 한 분이 멈추고 질문한다. “왜 그렇게 걷는 거예요?” 다들 당황해서 대꾸하지 않고 앞만 보고 간다. “그게 무슨 걸음이에요?” 다시 한번 묻는다. 옆에 있던 선배가 조용히 가더니, 그분 귀에 대고 도사처럼 점잖게 리듬을 타며 말한다. “묵언수행 중입니다.” 하하. 역시 재밌는 사람. “왜 그래?” 앞서가던 그분 일행이 뒤돌아보며 묻는다. “아니, 이상하게 걷고 있잖아.” 듣는 사람 배려없이 큰소리로 말하는 어르신이 꼭 주변 사람은 안중에 없다는 듯 무례하게 행동하는 중학생 같다. 어떤 사람은 소도 상처받을까봐 안 들리게 귓속말로 한다던데.
뽀롱뽀롱, 쪼롱쪼롱, 삐삐삐, 깍깍, 짹짹, 글자로는 흉내 낼 수 없는 소리로 각종 새들이 이 숲의 주인임을 알리며 손님을 맞이한다. 멧비둘기가 몇 번의 묵직한 울림만으로 숲을 장악한다. 귓가에 바람이 스며든다. 들릴 듯 말 듯 미세하게 웅웅 거리고, 귓바퀴를 돌며 떨림을 만들어 존재를 밝힌다. 바람 소리는 이마를 지나 나뭇잎 사이를 사뿐히 거닌다. 그 음악은 빠르게, 천천히, 거세게, 여리게 움직인다. 때론 초록 단풍나무 잎 위에 머물다 동그란 느티나무 잎사귀로 부드럽게 옮겨간다. 멀리서 들려오던 물소리가 점점 진해진다. 넓지 않은 계곡 하류인데도 폭포수같이 웅장한 소리로 존재감을 뽐낸다. 작은 바위와 돌덩이가 많아서인가? 속까지 시원해지는 연주다. 자락 자락. 짜그락 짜그락. 돌멩이 밟는 소리가 타악기처럼 오케스트라에 리듬을 보탠다. 자연의 소리는 언제나 평온을 나눠 준다.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한걸음, 한걸음을 정성껏 떼며 내 몸을 느껴본다. 어깨와 등에 통증이 있다. 오른쪽 무릎 안쪽도 불편하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대로 계속 걸으면 치유될 것만 같다. 몸이 점점 가벼워진다. 아직 아침 햇살은 아기의 옹알이처럼 순하고, 등에 불어오는 바람은 살짝 밴 땀을 말리고 가슴과 머리까지 상쾌하게 식히고 달려가는 싱그러운 소년의 웃음인 듯 경쾌하다.
제 속도로 가면 10분이면 충분할 텐데, 45분에 걸쳐 느리게 걸어 차문화체험관에 도착했다. 예쁜 테이블에 차와 다과를 준비해 놓고 법은스님이 기다리고 계신다. 차를 만드는 과정, 초의선사의 차 이야기, 추사 김정희와 초의선사 사이에 오간 편지 이야기 등이 이어졌다. 제주도에서 귀양살이하던 추사가 초의선사에게 보낸 서찰의 주가 되는 내용이 ‘차를 보낸다고 했는데 왜 안 오느냐, 전에는 차를 마시고 화기를 다스렸는데 차가 없으니 마음이 힘들다.’라며 빨리 보내라고 닥달하는 내용이었다는 게 재미있다.
“초의스님은 ‘다선일미(茶善一味)’라고 하셨습니다. 다(茶)와 선(善)이 같은 맛이다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무언가 한 가지에만 집중할 수 있으면 선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제 명상도 해보고, 오늘 걸어도 보고, 이제 차도 마시는데, 호흡하는 행위, 걷는 행위, 차를 마시는 행위가 마찬가지로 모두 선에 이르는 것입니다.” 다선에 대해 맑은 목소리로 조근조근 이야기하는 법은스님은 키도 덩치도 크고, 눈도 시원시원하게 큰 젊은 스님이다. 속세에 있으면 인기가 많았을 것 같은데 어떤 이유로 절에 귀의하셨을까 궁금하다. 우리 선배님들의 강제로 닫아놓았던 말문이 터지는 바람에 불교 사상과 윤회, 기독교 믿음과 비교하는 질문과 문답을 하며 짜여있는 한 시간의 차담 시간을 훌쩍 넘기고 말았다. 원래는 ‘동다송’(동쪽의 차를 칭송한다는 뜻의 초의선사가 쓴 글)도 함께 읽는다는데 건너뛰었다. 하도 진지해 그중 한 명은 눌러앉는 줄.
“스님, 저희가 어제부터 세 끼의 공양을 하는데, 간이 잘 맞고 집에서 먹는 것과 다르지 않네요. 절밥이라는 느낌이 안 듭니다. 양념도 거의 쓰지 말고, 좀 슴슴하게 해야 하지 않나요?” 한 선배님의 질문한다. “저희 주지스님께선 음식이란 자고로 맛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다. 하하하.” 큭큭큭. 명답이다. 차담이 끝난 후 점심공양으로 템플스테이의 마지막 프로그램을 마쳤다. 역시 주지스님의 깨달음이 듬뿍 담겨 꿀맛이었다.
‘내 것이라고 집착하는 마음이 갖가지 괴로움을 일으키는 근본이 된다. 온갖 것에 대해 취하려는 생각을 하지 않으면 훗날 마음이 편안하여 마침내 근심이 없어진다.’ 화엄경에 나오는 글귀가 대웅보전 옆에 쓰여 있었다. 성경말씀과 다르지 않다. 대흥사 템플스테이는 오랜만에 걱정, 불안, 불편한 마음을 내려놓고 평화롭고 고요하고 자유롭게 쉴 수 있는 시간이었다. ‘호흡명상’으로 평상심을 유지하고, 생각에 브레이크를 걸어 쉴 수 있는 방법을 경험해 본 것도 좋았다. 미생물이 죽는 것까지 최소화하려고 날짜를 정해서 머리를 민다는 스님들 앞에서 날아다니는 모기를 요란하게 손바닥으로 탁, 살생해 스님을 웃겨 드리기는 했지만. ‘자비명상’으로 그동안 애쓰고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온 나를 위로하고 격려한 시간을 가진 것도 따뜻했다. 나는 그저 조금의 벅참이 있었지만, 눈물을 줄줄 흘리며 오래도록 훌쩍이는 분도 계셨다. 그것도 평소에 냉철하게 보이던 분이라니. 우리는 참 사람을 모른다.
집에 돌아와 선풍기를 틀고, 편안한 몽제 매트리스에 몸을 던졌다. 아이고! 우리 집이 극락이네! 경추베개에 머리를 눕히고 유튜브 숏츠를 위로 올려대는 손가락질을 연속하다가 겨우 정신을 차렸다. 으이그, 우째 두 시간째 한심하게 정치 클립에나 시간을 버리고 있을까. 습관이 무섭다. 헛되고 헛되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휴대폰의 노예에서 벗어나 벌떡 일어나서 걷기나 하러 나가야겠다. 이 순간 이곳에 온전히 살아있음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러.
※ 프로그램 내용을 모두 쓰지는 못했지만 해남 대흥사 템플스테이는 정말 맛있는 3끼의 식사와 외형은 전통적이지만 방과 화장실과 취침도구는 깔끔한 숙소를 제공하고요.
프로그램은 첫날 오후부터 대흥사 탐방과 설명, 저녁공양, 저녁예불 참여(주지스님과 예불), 명상과 호흡법, 저녁 산책, 취침.
둘째 날 새벽 예불, 아침공양, 느리게 걷기, 스님과 차담시간, 점심공양으로 이루어집니다.
모든 프로그램은 자유롭게 참여하니 원하지 않으면 따로 쉬어도 됩니다. 저희는 1박 2일 프로그램을 10만 원에 체험했습니다. 너무 싸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