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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흠 Dec 04. 2024

악명 높은 제주도 바퀴벌레 드디어 발견!

*이 글에 바퀴벌레 사진은 없으니 안심하세요*


제주도 이주하면 항상 등장하는 키워드가 몇 개 있다. 변덕스러운 날씨, 습도, 괸당 등등 그중 많은 이들에게 가장 두려움을 주는 키워드는 '바퀴벌레'일 것이다. 제주도 바퀴벌레는 크기와 개체수로 유명하다. 크기도 클뿐더러 워낙 개체수가 많아서 잡아도 잡아도 계속 나온다는 것이다. 나도 제주도로 이주하기 전에 집을 알아볼 때 가장 중요하게 봤던 것 중 하나가 바퀴벌레였다. 

24세 첫 자취를 할 때 구했던 오래된 빌라에서 하루가 멀게 바퀴벌레가 나왔었다. 자다가 '탁!' 하는 소리가 들려서 불을 켜보면 바퀴벌레가 벽에 붙어있었다. 아마 날아서 벽에 붙는 소리였을 것이다. 그때 바퀴벌레 약이란 약은 모조리 사서 방역을 했었는데 그중 부탄가스처럼 생겨서 위에 버튼을 누르면 최루탄처럼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제품이 효과가 최고였다. 집에 뿌려놓고 몇 시간 동안 나가있다가 집에 들어가면 숨어있던 바퀴벌레들이 연기를 맡고 기어 나와 죽어있었다. 생명력이 강해 살아있더라도 술 취한 사람처럼 비실비실거렸기 때문에 잡기가 편했다. 이 약을 한번 뿌리면 한동안 바퀴벌레가 나오지 않았다. 효과로 정말 만족했던 제품이다. 약국 가면 구입할 수 있으니 바퀴벌레로 고생하는 사람은 꼭 써보시길.

그때 그 경험을 또 하고 싶진 않고 지금은 혼자 사는 집도 아니기에 집 구할 때 바퀴벌레가 나올 것 같은 집은 되도록 피했다.(그렇다고 안 나오는 건 아니다..) 지금 사는 집은 바닷가에 있지만 동네에서 가장 신축에 가까웠고 관리도 굉장히 잘되는 깨끗한 빌라다. 특히 집주인분이 건축일을 하시고 우리 옆집, 아랫집으로 집주인분들 가족들이 거주하고 있다. 본인들이 살 집이라서 신경 써서 만든 티가 나는 집이다. 여러 조건들을 따져봤을 때 가장 만족스러운 집이라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다. 내가 제주도로 이주한게 2024년 1월 겨울이다. 지금이 12월이니 거의 1년이 되어가는 시점이다. 

처음엔 그 어느 곳에서도 바퀴벌레를 볼 수가 없었다. 먼저 제주로 이주해서 살고 있던 친구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바퀴벌레랑 눈이 마주쳤다느니, 바퀴벌레 날아다니는 소리에 잡을 못 잔다느니 하는 말을 했지만 정작 내 눈엔 바퀴벌레 새끼도 보이지가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역시 집을 잘 구해야 돼'하며 속으로 약간 우쭐댔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정말 바보 같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날씨가 따뜻해졌다. 제주도는 5월부터 날씨가 따뜻하다는 느낌을 받았고 하늘 또한 맑고 푸르렀다. 그때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주말에 집에서 쉬고 있는데 위층(우리 집은 복층구조이다)에서 "꺄!!! 오빠!!!" 하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가 뛰어가보니 테라스에 바퀴벌레가 죽어있다는 것이다. 테라스에 나가보니 저 끝에 시커먼 게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니 바퀴벌레가 배를 뒤집고 죽어있었다. 그 악명 높은 제주도 바퀴벌레의 실물을 드디어 목격한 것이다. 크기가 손목시작점부터 엄지손가락이 끝나는 끝지점까지의 길이만큼 컸다. 거짓말하지 말라고? 충격에 더 커 보였을 수도 있지만 그 이후로 나왔던 바퀴벌레들도 크기가 정말 상당했다. 

우리는 먼저 제주도에 내려와 살고 있는 지인의 추천을 받아 '슈퍼킬'이라는 제품을 추천받아 사용해 보았다. 분무기 형식으로 되어 있는 제품이라 방역이 필요한 곳에 뿌리면 된다. 테라스 바깥 테두리 라인을 따라 3통을 열심히 뿌렸다. 그리고 효과는 굉장히 놀라웠다. 그날 이후로 원치 않게 하루도 빠짐없이 테라스에는 엄지손가락만 한 바퀴벌레가 배를 뒤집어까고 누워있었다. 여름철 나는 눈을 떠 제주도의 푸른 하늘과 날이 좋으면 선명하게 보이는 한라산을 보러 테라스에 나가며 바퀴벌레를 치우는 게 루틴이 되었다. 

약을 열심히 뿌린 덕분인지 집안에서는 바퀴벌레가 나오지 않았고 테라스에도 항상 죽어있는 녀석들뿐이었다. 하지만 제주도 바퀴벌레의 무서움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밤길을 걸어 다니면 바닥에서 사사삭! 하고 엄청나게 큰 바퀴벌레들이 지나다닌다. 보통 육지에서는 겁이 많은 바퀴벌레들이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숨어있다. 때문에 밤길을 돌아다닌다고 인도 한가운데서 마주치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하지만 이곳 제주도의 바퀴벌레들은 겁도 없다... 심지어 바닥에 발을 굴러도 몇 걸음 도망가다가 멈추기도 한다. 크기가 큰 만큼 간도 큰가 보다.

하루는 클린하우스에 음식물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는데 보지 않아도 될 장면을 목격했다. 바퀴벌레 10마리 정도가 바닥에 떨어진 음식물을 옹기종기 모여서 먹고 있었던 것이다. 식사에 미쳐있어서인지 바로 옆에 발을 굴러도 전혀 도망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순간 한 번에 다 밟아버릴까도 고민했지만 그 느낌을 차마 느끼고 싶진 않았다.

그렇게 여름이 지나고 이 글을 쓰고 있는 12월 겨울이 되었다. 날이 추워지기 시작하니 신기하게도 더 이상 테라스뿐 아니라 길가에도 바퀴벌레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습한 곳을 좋아하는 녀석들의 습성상 습한 여름에 주로 활동을 하는 것 같다. 주변에 식당, 카페 등을 운영하는 지인들은 여전히 바퀴벌레가 출몰한다고 한다.

녀석들도 날이 추우니 실내로 들어간 듯싶다. 

그 밖에도 제주도에 오래 산 도민들, 먼저 제주도에 내려온 지인들을 통해 들은 썰이 많지만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의 비위를 위해서 여기까지만 쓰도록 하겠다.

내 동거인은 작은 날파리도 정말 무서워할 정도로 벌레는 정말 무서워한다. 만약 내가 없었다면 절대로 혼자서는 제주도에 못 살았었을 거라고 한다. 그러니 제주도에 한달살이, 일 년 살이가 아닌 우리처럼 정말 정착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각오 단단히 하고 오기 바란다. 신축 아파트는 괜찮지 않냐고?? 갓 지은 뜨끈뜨끈한 신축 아파트면 모르겠지만 나름 신축 아파트 9층에 사는 지인의 집에도 바퀴벌레가 나온다고 한다. 

구옥 로망을 가진 사람이라면 바퀴벌레, 지네(돌담이 있는 집은 무조건 있다), 민달팽이 등의 벌레와 함께 거주할 각오를 해야 한다. 제주의 옛구옥을 꾸며 숙박업을 운영하고 있는 지인의 숙소에 놀러 갔던 적이 있다. 여름밤에 마당에 조명을 달아놓고 분위기 있게 술을 한잔 마셨다. 화장실을 가기 위해 집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는데 벽에 무언가가 수없이 빼곡하게 붙어있었다. 어두워서 잘 안 보여 라이트를 비추어 보고 깜짝 놀랐다. 

집이 없는 민달팽이 수십 마리가 집 벽을 타고 오르는 장면을 보고야 말았다. 민달팽이를 무서워하진 않지만 수십 마리가 벽에 붙어 꿈틀꿈틀 올라가는 장면은 썩 유쾌하진 않았다. 이 집에 거주한다면 이런 장면을 일상처럼 봐야 할 것이라는 생각에 구옥에 대한 로망을 접었다. 

이제 이번달이 지나면 제주도에 온 지 1년이 된다. 1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정신없이 빠르게 지나간 것 같다. 누군가 말했다. 제주도의 여름은 천국이고 겨울은 지옥이라고. 1월 겨울에 제주도에 왔기 때문에 이미 겨울을 겪어봤지만 전혀 지옥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겨울도 겨울 나름에 재미와 낭만이 있다. 

하지만 여름은 천국이라는 말엔 120% 공감한다. 특히 서핑, 수영, 다이빙 등을 사랑하는 나 같은 사람에겐 제주도의 여름은 천국이다. 여름엔 정말 하루에 두세 번씩 바다에 입수해서 놀았다. 러닝 하다가 처음 보는 수영스폿을 발견하면 바로 뛰어들었다. 그만큼 첫해 여름을 굉장히 알차고 즐겁게 보냈다. 그러니 나에겐 여름에 바퀴벌레가 많아지는 건 그렇게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그런 단점보다 장점이 훨씬 많은 게 제주도의 여름이기 때문이다. 

모든 지역이 그렇지만 제주도는 장단점이 더욱 뚜렷한 특성을 지닌 곳이다. 장단점이 뚜렷하고 확실한 만큼 결정하기에도 애매한 부분이 없다. 제주도가 가진 장점이 더욱 크게 다가오고 그것이 본인의 라이프 스타일에 잘 맞다면 단점들을 충분히 커버할 수 있다. 그러니 겪어보기도 전에 너무 걱정하지도 두려워하지도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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