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 습도 유명하다. 제주에 먼저 내려와 살 던 지인은 "폐에 물이 차는 것 같아"라고 표현했다. 제주도로 이주하기 전에도 여름에 여행으로 제주도를 놀러 왔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땐 잠깐의 여행이고 여행의 설렘 때문인지 딱히 습도 때문에 힘들다는 느낌을 받진 못 했었다. 그런데 정작 제주도로 이주하려고 하더니 여기저기서 너도나도 제주도 습도 때문에 힘들다는 것이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을 몇 가지 얘기하자면 먼저 빨래다. 빨래를 널어놔도 마르진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마르길 기다리며 널어놓으면 습기 때문에 꿉꿉해지고 빨래 덜 마른 냄새가 나서 다시 빨래를 해야 된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100번 공감한다. 나도 제주도로 내려와서 건조기를 구입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특히 주짓수 체육관을 업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도복과 운동복을 매일 같이 빨아야 한다. 도복은 두께 때문에 육지에서도 마르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다. 제주도의 습도를 테스트(?) 해보기 위해 도복을 널어놓고 언제 마르나 기다려보았다. 과장 없이 일주일을 널어놔도 축축한 느낌이 있었다... 매일 도복을 갈아입고 세탁을 한다고 했을 때 7벌도 모자랄 판이었다. 그래서 가장 먼저 구입한 게 건조기다. 제주도에 살고자 한다면 건조기는 필수다. 빨래 건조기가 없던 시절 제주도 사람들은 어떻게 빨래를 말렸는지 궁금해진다.
두 번째는 벽지 곰팡이다. 습도가 높아 여름 장마철엔 벽지를 따라 곰팡이가 올라온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케이스 바이 케이스인 것 같다. 우리 집은 여름을 지내본 결과 벽지 곰팡이가 생기지 않았다. 특히 5월은 거의 한 달 내내 비가 왔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로 매일 비가 왔다. 그럼에도 우리 집은 곰팡이로부터 살아남았다. 딱히 관리를 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지인의 집은 오래된 구옥이었는데 침실 천장부터 벽지를 따라 심하게 곰팡이가 생겼다. 집주인에게 수리를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크게 싸우고 지금은 이사를 한 상태다. 우리 집은 방 창문으로 포구가 내려다 보일 정도로 바다 바로 앞에 위치해 있다. 반면 지인의 집은 동문시장 근처로 바다에서 거리가 꽤 떨어져 있는 집이었다. 그럼에도 지인의 집이 곰팡이 문제가 생긴 것을 보면 집을 잘 고르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바닷가라고 무조건 곰팡이가 생기는 것도, 바닷가가 아니라고 곰팡이가 안 생기는 것도 아니다. 집을 구할 때 이 부분은 꼼꼼히 살펴보고 집을 구해야 한다. 내가 어릴 적 살던 빌라는 빌라 외벽을 따라 배수관(?)이 지나갔는데 그 라인을 따라 실내에도 벽면을 모두 덮을 정도로 심하게 곰팡이가 올라왔었다. 부모님이 여러 방법을 동원해 해결해보려 했지만 결국 해결하지 못했었다. 어릴 적 나와 누나는 락스, 곰팡이 제거제등으로 항상 벽지를 닦았었다. 제주도에서 집을 구할 때 벽지와 천장을 꼼꼼히 살펴보고 계약서를 작성할 때도 이 부분을 명확하게 명시하여 곰팡이가 심하게 발생할 경우 조치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세 번째는 습도 때문에 불쾌지수가 높다는 것이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여름에 밖을 돌아다니면 인간 제습기가 된 것처럼 폐에 물이 차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사람마다 느끼는 정도가 다른 것 같다. 신라면이 너무 매워서 못 먹는 사람도 있고 신라면 정도는 매운 것도 아니라며 맛있게 먹는 사람이 있다. 매운맛도 사람마다 느끼는 정도가 다르듯 습도도 느끼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인천도 바다와 가까워서인지(나는 영종도에서 몇 년간 체육관을 운영하기도 했다) 여름철 굉장히 습한 편이다. 그리고 서울도 굉장히 습한 편이다.
그날 유독 더웠을 수도 있는데 몇 년 전 운동을 하러 이태원에 갔을 때 정말 숨이 턱턱 막히고 가만히 서 있어도 턱에 땀이 고였다가 떨어질 정도로 습하고 더웠던 경험이 있다. 내 기억에 그때가 인생에서 가장 더웠다.
제주도 습도도 만만치 않게 높다. 섬 자체가 바다로 둘러 쌓여있고 비를 항상 달고 살 정도로 비가 많이 오는 섬에서 습하지 않길 기대하는 것만큼 미련한 것이 있을까?? 그것들을 다 감안하고 제주도라는 섬의 특성에 적응하며 살아야 제주 라이프가 가능한 것이다.
가끔 30년 넘게 제주도 밖을 나가 본 적이 없는 제주도 토박이가 제주도 날씨를 두고 툴툴거리는 모습을 보면 '저 사람은 어딜 가서 든 저러겠구나' 싶다. 춥다면 춥다고 툴툴거리고 더우면 덥다고 툴툴거릴 것이다. 날씨가 좋으면 날씨가 좋은데 놀러 가지도 못한다며 툴툴거리고 비가 오면 비가 와서 못 놀러 간다고 툴툴거릴 것이다. 불평불만이 기본 장착되어 있는 사람은 잠재의식의 프로그램에 그렇게 저장되어 있어 본인도 모르게 튀어나온다. 보통 어릴 적 보고 자란 부모님의 말과 행동으로 인해 프로그램된 경우가 대부분이고 자라면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사람의 영향을 받은 경우도 있다. 이 것을 알아차리고 개선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평생 자신이 통제하지 못하는 것에 불평불만을 하며 살다가 죽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말과 행동은 전염병처럼 주변 사람들에게 퍼지고 주변사람들의 기분마저 불편하게 만든다. 그래서 부정적인 사람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과 오래 어울리다 보면 본인의 잠재의식에도 가랑비에 옷 젖든 서서히 불평불만이 프로그램되어 버릴 것이다.
제주도에 이주한다고 했을 때 주변 지인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부러움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응원하는 사람, 온갖 제주도에 살면 안 되는 이유를 대며 말리는 사람으로 나뉘었다. 보통 후자의 사람들에게 제주도에서 살아보았냐고 물어보면 10명 중 9명은 아니었다. 본인도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걸 마치 직접 경험한 것처럼 말하는 것이었다. 물론 걱정이 되어 좋은 마음으로 말했을 테지만 코끼리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이 코끼리를 설명하는 것처럼 쓸데없는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듯 본인이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실패의 리스크가 너무 클까 봐 실패를 피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당신이 생각하는 실패는 실패가 아니다. 본인이 실패라고 받아들일 때만 실패인 것이다. 전체 인생으로 놓고 보았을 때 그저 삶이 진행되어 가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우린 방향을 선택하고 결정할 수가 있다. 그러나 그렇게 결정한 삶의 모습까지 내가 결정할 순 없다. 삶이 펼쳐지는 모습을 바라보고 수용할 수 있을 뿐이다. 그 당시의 선택이 지나고 보니 나쁜 선택이었을 수도, 좋은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선택을 해야 하는 그 순간엔 그것을 알 수 없다. 삶이 펼쳐져봐야 좋은 선택이었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좋든 싫든 다시 되돌아가서 바꿀 수는 없다. 수용하고 다시 다른 선택지를 놓고 고심하고 결정하고 나아갈 뿐이다. 이것이 반복되는 것이 인생이다.
나도 아직 제주도에 내려온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앞으로도 만나게 될 것이고 그동안 30년 넘게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것들을 경험하느라 바쁘다. 이러한 경험이 어떨 땐 나를 힘들게 하기도 한다. 어떨 땐 '그래 이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 제주도에 왔지' 하며 행복을 마음껏 만끽하기도 한다. 이것들 모두 제주도에 살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펼쳐지는 삶의 모습들이다. 만약 인천에 계속 살기로 결정했다면 절대로 경험해보지 못했을 것들이다. 나는 이제 또 제주도에서 여러 결정을 내릴 것이고 그 결정으로 인해 펼쳐지는 삶에 경험하게 될 것이다. 어떠한 삶이 펼쳐질지 알 수 없기에 기대가 되고 설렘이 있는 것이다. 결과를 모두 알고 있는 반전영화는 재미가 떨어진다. 삶도 결과를 알 수 없기에 재밌는 것이다. 마블 영화 같은 히어로 영화를 볼 때 타노스처럼 빌런이 강력할수록 영화는 흥미진진하고 재밌어진다. 이렇듯 삶도 고난이 있어야 뒤에 따라오는 행복도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이다. 고난을 피하려 하기 때문에 불행을 느끼는 것이다. 고난과 행복을 동전의 양면처럼 항상 붙어서 따라다닌다. 모순적이게도 더 큰 행복을 느끼고 싶다면 더 큰 고난을 겪어야 한다. 캠핑을 하는 사람들을 공감이 쉬울 것이다. 악천후에 준비물도 여럿 빼먹어 고생스러운 캠핑을 하고 난 뒤 집에 오면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하다. 평소에 집에만 있을 땐 느낄 수 없었던 집이라는 행복은 그렇게 큰 고난 뒤에 더 크게 느껴진다.
그러니 실패를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결정하고 결심하고 행복으로 옮겨라. 그 결정으로 인해 펼쳐지는 삶의 모습을 바라보며 고난도 행복도 온전히 받아들여라. 그렇다고 분위기에 휩쓸려 지식도 없이 영끌해서 집을 사는 것처럼 감당 못 할 정도 리스크를 지진 마라. 코끼리에 대해 한 번도 제대로 본 적도 없으면서 코끼리를 집안에서 반려동물로 키우겠다고 분양받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행동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