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하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있다. 바로 제주도의 푸른 바다이다. 제주도의 바다는 해외 부럽지 않은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 서울의 3배 크기인 제주도라는 섬은 서울과 비교했을 땐 크다고 할 수도 있지만 제주시에서 서귀포까지 차로 1시간이면 갈 수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전체로 보면 작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제주도의 장점은 동서남북으로 각각의 차별된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제주도에 여행을 와 본 사람은 공감할 것이다. 서쪽에선 폭우가 쏟아지는데 동쪽은 해가 쨍쨍 맑은 날씨인 경우, 제주시는 추운데 서귀포는 더운 경우 등 지역별로 날씨도 다른 나라로 이동한 것 같은 차이를 보인다. 이와 마찬가지로 제주도의 바다는 동서남북이 다 다르다. 서쪽 바다는 야자수가 질서정렬하게 솓아있고 관광객을 상대로 한 이색적인 가게들이 많아 하와이의 휴양지 느낌을 준다. 특히 서쪽 끝에 있는 신창풍차해안도로는 노을이 질 때 황홀한 선셋을 감상할 수 있다.
동쪽 바다는 조금 더 바닷가 마을스러운 느낌을 준다. 삼양, 함덕, 김녕 등 바닷가에 형성된 마을들이 있다. 그래서 바닷가에 있는 집에 살면 언제든 걸어서 동네 편의점 가듯 바다로 뛰어들 수 있다.(물론 서쪽도 그런 곳들이 있지만 서쪽은 휴양지 느낌이라면 동쪽은 좀 더 바닷가 마을스러운 느낌이 있다.)
남쪽 서귀포 바다는 생각보다 해수욕장이 별로 없어서 놀랐다. 또한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거주지역은 생각보다 바다와 떨어져 있어 바다를 가려면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울창한 야자수숲과 사람의 발길이 드문 시크릿스폿은 서귀포쪽이 더 많다. 여름 중문의 색달해변은 서퍼들의 천국으로 불릴 정도로 파도 컨디션이 좋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나도 처음 제주도로 이주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무조건 서귀포를 생각했었다. 하지만 경제활동, 동거인의 잦은 육지출장, 집 앞에 언제든 뛰어들 수 있는 해변 등을 생각해서 지금 살고 있는 제주도 북동쪽에 위치한 삼양해변 근처 화북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는 굉장히 잘한 선택이라고 느낀다. 서귀포를 바람 쐬고 싶을 때 놀러 가는 여행지로두니 1시간 거리의 짧은 거리지만 서귀포를 방문할 때마다 여행온 기분이 들고 좋다. 만약 서귀포에 살고 제주시를 여행지로 뒀다면 도심으로 여행 가는 게 별로 취향에 맞지 않기 때문에 별로였을 것 같다.
이렇듯 제주도는 지역마다 다른 색, 다른 느낌을 주기에 조금만 차를 타고 이동해도 여행 가는 기분이 들어 너무 좋다.
제주도에 와서 본격적으로 바다를 즐기기 위해 탐색(?)을 하며 놀라운 점을 발견했다. 제주도의 바다는 통제되어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특히 너무나 친절하게 대부분의 바다들이 계단이 만들어져 있다. 아마 해녀분들이 바다에 나가 어업활동을 해야 하기에 그런 것 같다. 그럼에도 가끔 '이런 곳에도 계단이 있다고?!' 할 정도로 다소 위험해 보이는 지형과 바다에도 친절하게 계단이 만들어져 있다. 그걸 보고 처음에 든 생각이 '맘껏 들어가~~ 대신 안전은 너의 몫이야'라고 하는 것 같았다.
인천에 살면서 강원도 양양으로 서핑을 하러 다닌 게 3년이 넘었는데 강원도의 바다는 통제되어 들어가지 못하게 막힌 곳이 많다. 북한과 인접해 있기 때문에 군사지역이 많기 때문이다. 서핑 포인트를 찾기 위해 고성부터 강릉까지 이동하다 보면 통제된 바다에 기가 막힌 파도가 들어오는 경우들이 있다. 그럴 때면 군침만 흘리고 아쉬움에 발길을 돌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지나가는 말로는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기 때문에 전복, 소라 등 어자원도 풍부하다고 한다.
이러한 강원도의 아쉬움은 제주도에선 거의 느낄 수 없다. 여름엔 차에 언제나 바다에 뛰어들 수 있게 수영복, 물안경, 오리발을 싣고 다녔다. 볼일이 있어 방문한 곳 근처에 수영할 수 있는 스폿이 있으면 환복하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제주도에 내려온 게 1월인데 2월부터 바다에 들어갔으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기도 했다.
그렇게 돌아다니면서 우연히 찾아낸 시크릿스폿은 여름성수기에 가도 사람이 10명 내외이고 스노클 장비를 착용하고 스노클링을 하면 이름 모를 물고기들과 운이 좋으면 문어도 볼 수 있다.
그렇게 제주도의 푸른 바다는 물속성 인간들에게 입장권도 받지 않고 마음껏 즐기고 누리라고 자신의 품을 허락해 준다.
다만 앞서 말한 대로 안전은 항상 나의 몫이다. 시크릿스폿은 인적이 드문 만큼 사고가 났을 경우 구해줄 사람이 거의 없다. 정말 아무도 모르게 비밀스럽게 죽을 수도 있기에 항상 조심해야 한다.
매번 성수기 때 제주도 바다는 다이빙, 수영 등을 하다가 사망하는 사고들이 일어난다. 바다는 천국이며 한순간에 지옥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친구들 앞에서 허세 가득 객기 부리다가는 가족들이 대성통곡하는 일이 생길 수 있으니 본인의 안전은 본인이 잘 챙기기 바란다. 옆에서 아무리 친구들이 "야 쫄았냐?"라며 놀려도 괜한 자존심 부리지 말고 이때만큼은 쫄았음을 용기 있게 인정하자.
나는 아직도 제주도에 못 가본 곳이 너무나 많다. 가보려고 저장해 둔 곳만 해도 수백 군데가 넘는다. 제주도에 살면서 할 게 없다고 심심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그런 사람들은 제주도라는 특성과 성향이 잘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도민 중에도 바다와 오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정작 제주도에 30년 넘게 살았지만 이제 막 1년 된 나보다도 안 가본 곳이 많다.
비가 오면 비가 온다고 불평하고, 바람이 많이 불면 바람이 분다고 불평하고, 습하면 습하다고 불평한다.
이런 사람은 메타인지를 더 키우고 자기 자신과 좀 더 친해지고 알아가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 한번 사는 인생인데 한평생을 본인이 태어난 곳이라는 이유로 본인의 성향과 맞지 않는 곳에서 살다 죽으면 얼마나 억울한가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나의 라이프스타일에 가장 잘 맞는 제주도를 선택한 것이다.
나는 바다도 좋아하고 숲도 좋아한다.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을 사랑한다.
제주도에 와서 알게 된 50대 중반의 형님은 우도에서 태어나서 한평생을 제주도에 사셨다. 그럼에도 주말이면 바다로 수영을 가고, 자전거를 타고 트립을 떠나고, 한라산 등반을 하고, 골프를 치며 제주도를 여전히 즐기고 있다. 얼마 전 함께 식사를 하고 차를 타고 함께 동네로 왔었다. 해안가도로와 도심가도로 둘 다 길이 있었는데 형님은 "해안가로 가시죠" 하셨다. 오는 길에 마침 기가 막힌 선셋이 바다를 더욱 아름답게 꾸며주고 있었다. 형님은 바로 창문을 내리더니 영상을 촬영하셨다. 그 모습을 보며 '그래 이런 사람이 제주도에 살아야 돼'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