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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조의품격 Jan 09. 2024

77세 아빠의 마음을 엿보다

아빠라는 우주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방학중인 서아와 함께

친정에서 이틀을 지내다 왔다.


초3이 되는 방학을 맞은 서아는

집에서만 지내는 게 심심하다고

외할머니집에 가고 싶다고 했다.


나는 왠지..

가고 싶지가 않았다.

여기저기

할 일 투성이라도

나의 집 내가 사는 집이

더 좋고 편하다

(언제 오나 기다리시는

엄마 아빠한테

미안한 일이지만

서아가 더 커갈수록

그런 마음이 든다)


몸이 움직이기가 싫었던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서아가 어릴 때는

부모님의 도움 없이는 아이를 케어하기가

너무 벅차고 힘들었던 것 같고

이제는 서아와 힘들이지 않고

잘 지낼 만 해서인 것 같다


꾸역꾸역 짐을 챙겨

막상 친정에 도착하니

마음에 있던 무언가가

사르륵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 또한 참 신기한 경험이다

가기 전에 마음속에 올라왔던

불편한 생각과 감정들이

쏙 내려간 것이다.


최근에 시작한 내 마음에 대한

공부 중이라 내 마음의 변화가

참 신기하게 다가오는 요즘이다


결혼 전에도 그랬지만

결혼 후에는 더 이기적인

나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서아에게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오늘 내 글쓰기의

키워드는 `아빠`이다


오후에 서아의 수영수업이 있어서

2시 정도에 나와 집에 가려는데

오늘은 서아가

할머니, 할아버지의

헤어짐의 포옹 요청에

응해주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그런 강요는

불필요한 것이기에

강요는 하지 않았지만

내 엄마 아빠라

좀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이 자식 사춘기인가...

다 컸네. 우리 딸... 하며

4살 때 "할머니 안아줘~"하면

바로 안아드리고

"할아버지 안아줘~"하면

또 바로 안아드리고

얼굴 찡긋하며 자기 예쁜 줄 알던

기계 같던

꼬꼬마 시절이 살짝 그리웠다.


아무런 아쉬움 없이

집에 쿨하게 가는 줄 알았던

서아가 차에 타더니

"엄마 너무 아쉬워."

"집에 가고 싶지 않아..."라고

눈물을 찔끔... 하길래

깜짝 놀랐다.

아 서아도 아쉬웠구나...

헤어질 때

아쉬움을 숨길줄도 알고

이제 쑥스러운 것도 알고

대견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버릇처럼

그 흔한 질문을 했다.

"할머니가 좋아, 할아버지가 좋아?"

"누구랑 헤어지는 게 더 슬픈 거야?"

물으니 "응, 할아버지"하며 운다

그러면서 "할아버지는 착해"하는데


그 마음이 뭔지 알아서인지

나도 급 먹먹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 친정은 엄마가 아니라

아빠가 음식을 하고 살림을 해주신다

아빠는 IMF때 중국으로 가셔서

사업을 하시고 남은 우리 가족을 위해

타지에서 정말 힘들게 일하셨다


그 시절부터

사실 한국의 친정집 살림은

엄마 담당

중국의 살림은 아빠 담당

이렇게 어떻게 보면

떨어져 지내신 지 오래라

아빠는 한국에 오신 후에도

집안 살림을

주체적으로 하시는 게

더욱 마음이 편하신 것 같았다


코로나 여파로 아빠는

강제적으로

한국에서 지내게 되셨다

20년 만에 엄마, 아빠가

함께 지내시는 게

너무나 힘드셨을 거란 생각이 든다

어린 시절부터

엄마와 아빠는

정말 많이 다투시고

아빠는 엄마의 살림에 대해

화를 많이 내셨던 기억이 있다.


내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의 아빠는

엄마를 무시하고

화를 잔뜩 내면서

가족 외 다른 어른들에게는

매우 친절한 모습이라

많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어디까지나 나의 주관적 기억이고

오빠나 여동생과 대화하다 보면

나의 기억과 다를 때가 많다


그리고 아빠는 늘 잘해주시다가도

혼낼 때는 정말 인정사정이 없었다

너무 무섭고 공포스러울 정도였다

예전의 내가 가끔 매우 극단적인

태도로 서아를 혼낼 때

딱 그때의 아빠의 모습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를 이해하고 사랑하고

애틋한 마음이 드는 건...

아빠의 유년시절에 대한

이야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아빠가 아주

어린 시절부터 할머니와 아빠를

두고 다른 여자와 사셨다고 한다

내 기억의 할아버지는

내가 7살 때인가..

친오빠에게는 그 시절에도

10만 원을 주고

나와 내 여동생에게는

똑같이 5천 원을 주셨던 분이다


 아빠에 대한 나의 이미지는

`아빠는 그런 아빠를 둔

나의 아빠`

그래서 우리들에게

더 희생적이고 무조건적인

응원과 지원이 있으셨구나...

너무 고맙고 감사한 아빠

이게 끝이었던 것 같다

아빠의 내면에 대해

생각해 볼 이유와

여유가 없던 거다


그런데 내가 결혼을 하고

남이었던 남자와 살며,

그 남자를 반이상은 닮은

아이를 낳고 가족을 꾸려 살아가다 보니

지난 아빠의 아픈 행동들과

불편하지만 고맙고

또 어렵지만 감사한 부분들이

너무 아프게 다가왔다.


나의 미술 수업에서

아이들의 부모님들께

그림 실력보다

늘 강조하는


한 인간이 완성되기까지

너무 중요했던 그 유년기에

아빠의 부재와

아빠의 부재로 인한

엄마의 마음고생...

경제적인 어려움등을

오로지 아빠 혼자 감내했다는

그 부분이 너무 아린다


이제 77세가 되시는

우리 아빠는 최근 들어

"나는 우리 엄마가

너무 불쌍했어

정말 너무 불쌍했어"

이 말씀을 종종 하신다


우리들이 성인이 되어

각자 가정을 꾸리며

부모의 입장이 되다 보니

같은 부모입장인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물었던 것 같다


오늘은 점심을 아빠와 먹으며

아빠의 반찬이 너무 맛있어서

못하는 게 없는 우리 아빠

"아빠는 어릴 때

꿈이 뭐였어요?"라고 물었다.

아빠의 대답이 또 아팠다.

"음, 나는.....

할머니가 너무 불쌍해서

할머니 말을 잘 듣는 게

할머니를 힘들지 않게 하는 게

꿈이었어."라고 하셨다.


나는 우리 세 남매 중

우리 아빠와 친할머니를

가장 많이 닮았다

아빠를 닮아 그림을

잘 그리고

아빠를 닮아

책과 글쓰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아빠를 닮아

손재주도 좋은 편이라

나도 요리를 잘한다


왜 그동안은 항상

나를 찾아야 해!

아이를 키우다가

내 인생이

끝날수는 없어

또는

서아의 미래를 위해

지금 아이의 정서발달에

온마음을 다해야 해

서아는 불편한 게 없을까?...

서아는 고민이 있을까?...

아픈 데는 없나... 등등

또!!!! 나만 생각한 것 같아

너무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이다


분명 이렇게 똑바로

잘살고 싶은 마음이 들고

한때의 영광 같은

능력을 인정받던 시절에는

엄마 아빠의 희생과 사랑이

있었음을 잊으면 안 된다

애쓰고 노력해서

부모님을 더 바라보고

더 관찰하고

무엇을 하시던

응원해드려야 한다


아빠에게

꿈이 무엇이었는지

그 꿈을 발견한다면

무엇을 하고 싶으신지

그 꿈을 이루었을 때

아빠는 행복할지

성취감을 느끼실지

어떠한 마음이 들지

너무 궁금하다


나의 예상 답안은

아빠는 우리가

무탈하게 잘 지내는 것

이라고 말씀하실 것

같아 마음이 쓰리지만

어디까지나 이건

나의 마음이고

어쩌면 아빠는

지금에 만족하실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 시대의

아빠들은 태어날 때부터

아주 큰 우주의 그릇을

가슴에 담고 태어난 분들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아기와 노인은 같다는

말이 무엇인지 가끔 느낄 때가

있어 내가 서아에게 하듯

엄마, 아빠에게 못 해 드리는 게

미안할 때가 많지만

이 우주에서 함께 하는 동안

더 많이 마주하고

더 많이 대화하고

더 많이 함께 웃고 싶다


건강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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