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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별 Oct 03. 2023

이혼한 부부의 장례식장

세상에 없는 계절 #02

오래된 미국 드라마 [맥가이버]는 무려 1985년부터 방영된 추억의 외화다. 나는 아버지를 맥가이버라고 불렀다.


아버지는 맥가이버처럼 일상생활에서 연장을 아주 잘 다루었다. 정해진 규칙과 시스템 안에서 아버지는 누구보다 완벽했다. 아버지는 타고나길 꼼꼼했으며 비상한 머리를 갖고 있었다. 아버지는 당시 굴지의 일본계 전자회사에서 인정받으며 10년 넘게 기계를 연구하고 제조하는 일을 했다.


어린 나는 아버지가 맥가이버인 줄 알았다. 하지만 내가 국민학교에 막 들어갔을 무렵, 그제야 아버지의 모습을 제대로 보게 되었는데 아버지는 우습게도 기계를 전혀 다루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아직 아기였던 오빠가 밀어뜨려 고장 낸 흑백 텔레비전, 어머니가 매일 듣다 고장이 난 FM 라디오 기계는 한 번 고장이 난 후 끝내 고쳐지지 못하고 버려졌다. 아버지는 기계를 믿지 못했고, 기계를 만드는 사람은 더욱 믿지 못했다.


아버지가 믿는 건 오직 자기 손으로 만든 것들뿐이었다. 아버지는 세상과 사람에 대한 불신이 아주 컸다. 상대방이 이유 없는 호의나 감춰진 선의를 베풀면 대부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나이가 들수록 아버지의 그런 점은 점점 강화되었다.


아버지의 검사 결과를 들으러 대학병원에 간 날. 진료실에서는 큰 소리부터 터져 나왔다.

"아니, 대체 왜 정확히 말씀을 안 해주시는 거요, 의사 양반. 죽을병인지 살 병인지 당사자가 알아야 할 것 아니오? 검사 결과가 정확하게 있을 것 아닙니까!"


병원 측은 일흔이 넘은 아버지가 고령이라고 판단했고, 직접적인 병명을 당사자에게 섣불리 밝히지 않으려 했다. 쇼크가 올 수 있으니, 시간을 두고 천천히 알려드리는 게 좋겠다는 계산을 이미 해 버린 의료진의 확고함 앞에서, 보호자인 나는 무력하게 입을 닫고 잠자코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의사와 실랑이를 한 후에 식식대며 다시 한 무더기의 검사를 또 받으러 갔다.


나는 병원 복도에 앉아, 검사실로 들어간 아버지를 기다리며 어린 시절에 즐겨봤던 또 하나의 외화인 [긴급출동911]을 떠올렸다. 예기치 못하게 사고가 난다 - 사람이 다치거나 위험에 빠진다 - 언제나 늦지 않게 구급차가 온다 - 모든 이는 안전하게 구조된다. 여기서 다른 결말이란 없다. 누구도 죽거나 크게 다치는 일은 없는 안전한 에피소드만이 재생되는 그 방송을 나는 참 좋아했었다. 지금 내가 그 방송 안에 있는 주인공이라면 좋을 것 같았다.


검사를 끝낸 아버지는 외장관외과 전문의가 있는 위암센터로 진료 배정이 옮겨졌다.


아버지의 주치의로 배정된 나이 든 외과의를 직접 만나고 나서, 나는 아버지의 암 판정이 더 이상 불확실한 또는 바뀔 수 있는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요즘은 오진도 많다는데, 내 마음 한구석에는 혹시라도 검사 결과가 달라지지는 않을까 하는 얕은 희망을 품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최대한 빨리 수술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정확한 건 개복해 봐야 알아요."

의사의 말이 너무 담백해서 나는 순간 마음이 울렁거렸다.


"죽으면 죽으라지 뭐. 살 만큼 살았다.... 나는 참 복도 없는 인간이다."

위암 판정을 받은 후 아버지의 반응이었다. 지금 어머니가 옆에 있다면 뭐라고 반응했을까? 분명히 마지막 문장에 꽂혀 뭔가 대꾸했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아버지의 배우자이자 나의 어머니인 그녀는 지금 아버지 옆에는 없다.


어머니는 이혼을 택하고, 아버지와는 아예 연락을 끊어버렸다. 그럼에도 자식인 내가 연락해서 아버지의 소식을 전한다면, 그건 아버지를 위해서인가? 어머니를 위해서인가? 아니면 자식인 나를 위해서인가? 아니, 아직 어떤 일도 벌어지지 않았으니, 고작 진단에 불과할 뿐이니 잠자코 있어야 하는 게 맞는 건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수많은 질문들 중 무엇을 택하여 답을 해야 할지 난감했다. 지금 내게 필요한 질문이 무엇인지조차 판단이 잘 되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내가 자식으로서 감당해야 할 몫은 이미 막 시작된 것 같다는 거였다. 왠지 억울했다.


수없는 가정 끝에 아버지의 소식을 어머니에게 전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지만, 혹시 돌아가시게 되면 그때는 알려드리는 게 맞지 않나 하는 마지막 질문이 아무리 떨치려 해도 집요하게 나를 파고들었다.


서로의 안부를 더 이상 묻지 않기 위해 돌아선 부부에게 그럼에도 마지막 생의 순간은 자식으로부터 공유되어야 하는 게 맞는 건가. 이혼한 부부의 장례식장에서 어떤 장면이 연출되는 게 가장 자연스러운지 누구도 내게 가르쳐준 적이 없었다.


1986년 한국에서 방영된 미드 맥가이버. 아버지는 맥가이버처럼 강단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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