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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별 Oct 03. 2023

개고기와 양치질

세상에 없는 계절 #03

암 판정을 받으셨을 때 아버지의 몸무게는 고작 50kg 남짓이었다.


CT를 찍고, MRI를 찍고, 내시경을 할수록 몸은 점점 더 앙상하게 말라가는 것만 같았다. 얼굴은 누렇게 떴고 눈가에 빛은 조금씩 사라져갔다. 나는 그나마 지금의 몸으로 아버지가 수술을 안 받으신다고 괜한 고집을 부리시지 않는 것만으로도 상황은 수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한 번 아니다 싶은 건 절대로 그 뜻을 굽히는 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표현이 이상할지 모르겠지만, 환자복을 입은 아버지는 제법 귀여웠다.


우스운 일이지만 아버지에게 희고 푸르른 환자복은 아주 잘 어울렸다. 아버지가 환자복을 입은 품새는 몸에 꼭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몹시 자연스러운 데가 있었다. 키가 작고 나이는 들었지만, 상체에 다부진 체격은 아직 남아 있어 환자복이 잘 맞았다.


아버지는 응급실에서 8인실의 보호자동반 입원실로 이동했다. 입원 수속을 마치고 올라가니 병실 문 앞에는 이미 아버지의 이름이 적힌 명패가 걸려 있었다. 병실에 처음 들어섰을 때는 무척 희한한 냄새가 났다.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아주 복잡하고 쿰쿰한 냄새였다.


병실에서 며칠 지내보니 8개의 병상 중에서 가장 오래 입원한 환자가 누구인지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입원 기간이 오래될수록 침대를 둘러싸고 있는 커튼은 활짝 열려 있었다. 그리고 그런 환자의 간병인일수록 말이 유독 많았다.


"이것 좀.... 먹어보러구요. 맛딛을.... 거애요."


저녁 시간에 보호자용 간이침대에서 눈을 붙이려는데, 커튼 밑으로 작은 목소리가 새어 들어왔다. 마치 외국인이 구사하는 듯 어눌한 말투였다. 내가 누운 자리의 바로 옆 커튼 너머에서 들려온 소리였다.


"쭈어어쩌 업. 쩌어어 쩝."

그리고 이내 무언가의 음식물을 조심히 씹어대는 소리가 났다.


내가 누운 간이침대에서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의 음식물 삼키는 소리가 바로 내 귓가에 대고 먹는 것처럼 확성되어 들렸다. 보호자용 간이침대를 이용해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여기 누워있다 보면 바로 옆 침대를 쓰는 환자와 간병인의 대화, 식사하는 소리와 트림, 방귀, 잠꼬대 같은 생리 현상과 특유의 체취까지 웬만한 절친보다도 금방 알게 된다는 것을.


나는 눈을 감고 흐릿하게 풍겨오는 냄새를 맡았다. 고기 냄새는 맞는 것 같은데 어딘가 낯선 느낌이었다. 무엇을 먹는 걸까. 잠깐 궁금해하다가 아버지가 양치를 하겠다고 해서, 치약과 칫솔을 챙겨 들고 아버지를 부축해서 일어났다. 커튼을 걷으며 옆 침대를 슬쩍 훔쳐보는데 그만 간병인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간병인은 비닐봉지를 다급히 옆으로 치웠다.


다음 날, 같은 방 사람들이 떠드는 말을 훔쳐 들으니 그 간병인이 감췄던 건 개고기였다.  


개고기라니.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음식이었다. 나 역시 아버지가 수술을 받기 전에 보양식을 마련하기 위해 다양한 음식들을 구해봤지만, 개고기는 내 리스트에 없었다. 그러고 보니 어느 죽어가는 환자가 마지막으로 제발 개고기 한 번만 사 달라고 부탁했다는 이야기는 들어 봤다. 언젠가 암 환자에게 개고기가 최고로 좋다는 속설을 들은 적도 있다.


간병인이 급하게 감춘 이유가 단순히 혐오식품이라기에는 조금 부족한 느낌이었다. 그건 마치 자기 인생이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자의 절박한 의지랄까, 갈망이랄까, 그래서 알지 못하는 타인과는 절대로 조금도 나누어 가질 수가 없는 것을 아주 다급하게 감추는 느낌이었다.


나 역시, 예전처럼 반려동물인 개를 잡아먹은 것에 단순히 혐오를 느끼기에는 인생이 조금은 복잡해졌다. 이제 나에게도 개고기는 단순히 개고기가 아니라 마지막으로 쥐어짜 내보는 죽어가는 이의 집요한 생의 의지로 다가왔다.


나는 남자 화장실 열린 문틈으로 양치질을 하는 아버지를 가만히 보고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앙상한 팔로 신기하리만큼 힘차게 칫솔질을 하고 있었다. 기괴한 장면이었다. 이렇게 이를 박박 닦는 사람을 나는 그전까지 본 적이 없었다. 더구나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이 마른 몸으로 세면대에 기대어 선 사람의 행동이라기에 너무 이질적이었다.


누군가는 매일 하는 양치질인데, 몸에 기력이 없어 하루에 겨우 한 번 양치하는 아버지가 사실은 얼마나 절박하게 살고 싶은지, 살아남고 싶은지 느껴지는 강력한 손짓이랄까, 몸부림이랄까. 옆 침대 사람이 뜯어먹은 개고기만큼이나 아버지의 양치질이 내게는 똑같은 절박함으로 느껴졌다.


암 환자에게 개고기가 좋나

개고기 보신탕 파는 곳


나는 어느 날 밤인가 자다 말고 이런 검색어들을 입력해 보았다.


병실 문 앞에 걸린 아버지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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