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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별 Oct 03. 2023

아버지의 똥을 못본 척 했다.

세상에 없는 계절 #04

수술 이틀 전, 아버지는 관장을 시작하면서 성인용 기저귀를 준비하라는 간호사의 안내를 받았다. 간호사는 친절하게 대학병원 내 편의점 어디에나 성인용 기저귀를 팔 거라고 나에게 알려주었다.


"나는 기저귀 같은 거 안 한다! 절대 사오지마! 필요 없어!"

아버지는 늘 그랬듯 간호사의 안내를 거부했다.


아버지가 거부한 건 성인용 기저귀뿐만이 아니었다. 병원 시스템에 만족하지 못했다.


"내가 이 링거 용량 봤는데 그만하면 됐으니까 이제 그만 떼라!"


"무슨 검사를 이렇게나 많이 하니? 잠도 못 자게 밤새 침대를 옮겨대면서 검사를 하냐!"


"난 이대로 죽을란다. 내가 괜히 살아서 네가 고생이다."


"추워 죽겠다. 도대체 병원이 이렇게 춥다니. 환자들 다 죽일 셈이냐!"


"이 링거 두 개가 떨어지는 속도가 왜 다르니? 심장에 무리 가는 거 아닌지 간호사한테 물어봐라!"


"화장실이 이렇게 멀어서야 원! 자리를 좀 바꿔주던가!"


검사를 받지 않는 대부분의 시간에 아버지는 깨어 있을 기력도 없어서 잠만 잤다. 하지만 잠깐씩 깨어나는 시간에 아주 많은 불평들을 쏟아냈다.


아버지의 불편감은 그 종류가 정말 다양했다. 아버지는 어린아이처럼 하루도 빼먹지 않고 불평을 쏟아내고 있었다. 과연 세상에 이렇게나 많은 불평이 존재한다는 게 정말 놀라울 따름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다시 잠에 빠져든 후에, 성인용 기저귀를 사러 편의점에 갔다. 성인용 기저귀는 과연 종류별로 편의점에 구비되어 있었다. 잠깐의 고민 끝에 남자 성인을 위한 팬티형 기저귀를 골라들고 결제를 했다. 그리고 사둔 기저귀를 곧장 아버지 병실 사물함에다 가져다 두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벌건 국물의 육개장을 시켜두고 반도 먹지 못할 만큼 나는 비위가 약해지고 체력이 깎여 나가고 있었다.


간병은 가족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니, 가족이기에 더욱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아버지에게 여자친구가 있었다면 상황이 조금 달라졌을까, 아니 어머니가 그대로 계셨다면 어땠을까, 아버지를 귀엽게 보아줄 누군가가 있었다면 지금의 내 몫이 혹시 내 몫이 아닐 수도 있었을까 잠깐 상상하다가 이내 병실로 올라갔다.


병실 침대 커튼을 걷어보는데 아버지가 짐짓 놀란 얼굴로 날 보며 당황스러워했다. 그리고 자세 또한 침대에서 엉거주춤하게 엉덩이가 반쯤 내려와 있어 아주 이상했다.


"뭐 하세요....? 아버지?"


"아니, 화장실 좀 가려고. 근데.... 나 침대랑 이불 새것 좀 깔아야겠다. 여긴 왜 맨날 이불을 안 갈아주냐! 네가 복도 간호사실 가서 좀 받아 와. 쓰던 이불은 내 갖다 놓으마."


말을 잠깐 더듬거리며 잇던 아버지가 쓰던 이불을 구겨들고 천천히 자리를 떴다. 나는 그제서야 병실 침대를 살폈는데, 낙석방지용 침대 보호대에 미처 닦아내지 못한 황색의 뭔가가 묻어 있었다.


그건 똥이었다.


침대 아래 바닥에도 변 자국이 약간 있었고, 휴지통은 변을 닦은 휴지로 가득 차 있었다. 아버지가 미처 조절할 틈도 없이 병실 침대 위에서 똥을 누고 말았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커튼 사이로 스멀스멀 구린내가 풍겨 왔다.


근데 희한했다.


그 냄새는 전혀 역하지 않았고 그저 힘이 빠져버린 구린내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의 성질을 닮아 아주 고약하기라도 했으면 나는 불평을 터뜨리며 아버지를 구박할 수 있었을 텐데, 그렇지 않고 뭐랄까. 내가 그동안 생각했던 아버지의 뿌리가 실상은 어쩌면 가장 약하고 여린 것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싱겁게 쉬어빠진 똥 냄새였다.


아버지에게도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환자가 되어 딸의 돌봄을 받을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시간이. 노화와 질병을 인정하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수용할 시간이. 하지만 아버지는 자신의 생리적인 부분까지 이성의 자녀에게 의탁해야 할 처지가 된 것을 아직은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몇 분 전 큰일을 보고서 많이 당황했을 것으로 추측이 됐다.


하지만 내가 봤을 때 녹내장을 앓고 있는 사람치고 제법 많은 부분을 꼼꼼히 닦아두신 게 분명했다.



벌써 오래전, 아버지는 녹내장을 진단받았다. 진단받기 몇 해 전부터 아버지는 운전하면서 바로 옆 차선에서 끼어드는 차를 전혀 보지 못했고, 길을 걸으면서는 바로 옆의 간판을 발견하지 못하기 일쑤였다. 녹내장은 아버지 눈에 자그마한 동굴을 만들었고, 그 동굴은 점점 커졌다. 아버지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것은 보고 어떤 것은 전혀 보지 못하고 있었다.


"녹내장, 그까짓 거 겁 하나도 안 난다. 실명하라지 뭐!"


녹내장이란 무언가 간절히 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쌓이면 찾아오는 질병일까. 한평생 삶의 고초와 구질구질함을 토로하던 아버지는 이제 그게 무엇이 됐든 더는 보고 싶지 않은 어린애처럼 굴었다.



동굴 같은 아버지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최대한의 변은 이미 닦여 있었다. 자신의 결점을 추호도 들키고 싶지 않은 아버지의 성미 그대로, 가능한 많은 시선을 움직여 가며 닦아내고 또 닦아냈을 거라는 생각에 나는 갑자기 마음이 한없이 쪼그라들었다.


그래서 못 본 척 했다. 나는 아버지가 돌아오시기 전에 미처 아버지가 닦지 못한 얼룩을 재빠르게 닦았다. 내가 지금 아버지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단지 그것뿐이었다.


다른 환자들과 달리 아버지는 개인 짐이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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