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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별 Oct 03. 2023

마지막 통화

세상에 없는 계절 #05

크리스마스이브에 아버지는 위암 수술을 받았다.


나는 업무 중 짬이 날 때마다, 아버지의 병을 수시로 검색해보곤 했다. 암의 세계는 깊고도 다양했다.


암 환자들과 그 가족들은 각종 인터넷 모임에 가입해서 의학적인 질병의 정보는 물론 용한 의사와 병원을 비롯해서 각종 미신과 자연치유 요법까지 여러 정보를 교환하고 있었다. 하지만 수술 전 보호자가 어떤 마음을 갖는 게 좋을지에 대해서 알려주는 정보는 없었다.


그러다 어느 딸이 쓴 아버지의 폐암 투병기가 적힌 블로그를 따라가 읽어보게 되었다.


그 딸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몇 주 전 함께 한 식사에 대해 적어두었는데, 나는 특히 그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멀쩡히 외래 진료를 같이 와서 병원 식당에서 함께 밥을 먹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마지막 식사가 꿈 같은 일이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는 마지막이 미리 와 있을까봐 겁이 났다.


수술 당일 이른 아침이었다. 나는 급한 마음으로 자동차 엑셀을 밟고 있었다. 간밤에 늦게까지 회사 업무로 야근을 하다가 그만 출발 시간이 늦어지고 말았다.


게다가 수술실 일정상 예고된 시간 보다 빨리 아버지의 수술이 시작된다는 문자를 받은 터였다. 겨우 주차를 하자마자 아버지가 입원한 병실로 곧장 뛰어갔지만, 병실 침대는 이미 비어있었다. 그 순간 띵- 하고 코트 주머니 안에 있던 휴대전화 문자음이 울렸다.


".....(아버지)님께서 수술실에 도착했습니다. [대학병원 본관]"

왜였을까. 아버지의 얼굴을 꼭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술실은 한 층 아래에 있었다. 나는 비상계단을 두 칸씩 딛으며 뛰어 내려갔다. 수술실 문 앞에 도착하니 스크린 현황판에 아버지의 이름이 떠 있었다. 수술실 관계자가 문을 열고 나온 사이, 잠시 열린 틈을 이용해 재빠르게 들어갔다. 숨은 차서 헉헉대는데, 문 바로 앞 데스크 간호사가 익숙한 듯이 환자 이름을 물어보았다. 아버지의 이름을 대니 간호사는 더 묻지도 않고, 곧장 수화기를 들어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 누군가에게 몇 마디를 하더니 간호사가 내게 수화기를 건넸다.


"아버님 연결되셨으니까 마지막 통화해 보세요."

마지막. 이 단어 한마디가 심장을 파고들었다.


계단을 뛰어 내려와 숨이 차기 때문이었을까. 머리로는 '수술 전의 마지막 인사'라는 늬앙스라고 해석했지만, 자꾸만 내 가슴이 벌렁거리며 다른 해석을 하게 했다. 누군가에게는 진짜 마지막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럴 가능성이 1%라도 있다면 저 말은 듣지 말아야 하는 말인데. 나는 내 마음이 이렇게 쉽게 무너져 내리는 것이 난감했다.


만약 지금, 이 대화가 아버지와의 마지막이라면 나는 최선을 다해서 아버지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을 해야 했다. 이대로가 마지막이면 안 된다. 나는 아버지에게 아직 할 말이 많이 남아 있다.


"아버지 저예요. 간단한 수술이니까 편한 마음으로 수술 잘 받으시고 나와서 봬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나는 짐짓 쾌활하게 말했다.



병원에 입원하기 위해 큰 가방을 끌고 수속을 밟던 날 아침, 아버지는 코로나 신속항원검사를 받으며 이상하리만치 툴툴거렸다. 그날의 대화가 우리의 마지막 대화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나는 어쩐지 그 대화가 마지막 대화인 것만 같은 생각이 자꾸 들었다.


"안 그래도 비염 때문에 죽겠는데 코를 이렇게 쑤셔대니 정말 성가셔 죽겠다."

내가 아무런 답이 없자 아버지는 말을 이었다.


"근데 니 엄마는 잘 사니? ....혹시 나 아픈 거 모르지?"

너무 가벼워진 아버지였지만, 여자인 내가 부축하기에는 그래도 버거웠고 나는 힘을 끌어쓸며 무심하게 대꾸했다.


"엄마가 이제 와서 궁금해요? 그러게, 왜 그렇게 두드려 팼어요."


이제 와서 아버지에게 듣고 싶은 대답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나도 모르게 속엣말이 나와버렸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다음 말까지 이어졌다.

'아버지 지금 벌 받는 거예요.'


나는 매주 연차를 쓰고, 아버지를 간병해오며 순간순간 탈진 상태가 되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몸과 마음의 긴장이 느슨해진 순간이 왔다. 나는 아버지가 멋쩍어하거나 흠칫 놀라거나 또는 자기 입장을 변명하며 화라도 내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건 기우에 불과했다.


"하하하. 그러게, 말이다. 하하하. 내가 벌 받나 보다."

아버지는 내가 속으로 한 말을 들은 것처럼 대답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내가 갖고 있는 퍼즐 조각들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오래 생각해 왔다.


이리저리 시간을 들여 맞추어 보아도 뚜렷한 그림 하나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한 번씩 그 조각들을 한데 펼쳐놓고 각 조각의 귀퉁이들을 멍하게 들여다보고는 했다. 아버지에게서 받은 조각 중 어떤 것은 아귀가 아예 맞지 않았고, 또 어떤 것은 일부가 깨져 영영 다른 조각과는 맞추어 볼 수가 없는 것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평생 나는 그 조각들의 모퉁이를 맞추어 가며 커다란 하나의 조각을 완성해 보려고 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게 나의 마지막 숙제라고 생각했다.


그것을 알아내야만 나는 살 수 있고, 내 존재가 증명이 되니까. 하지만 역시나 아버지는 만만치않은 분이었다. 어느 것 하나의 조각도 간단하고 쉬운 건 없었다.


수술이 시작되고 네 시간쯤 지났을까. 오전 11시가 다 된 시각에 휴대전화가 울렸다. 수술을 집도한 의사가 보호자를 찾는다는 간호사의 연락이었다. 나는 지하 매점에서 컵밥을 먹다 말고 급히 수술실로 뛰어 올라갔다.


이렇게 컵밥을 많이 먹은 건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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