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이별 Oct 03. 2023

본능과 섬망 사이

세상에 없는 계절 #06

간호사는 나를 수술실 한쪽의 작은 진료실로 안내했다.


자그마한 의자에 앉자마자 곧 의사가 들어왔다. 의사의 녹색 수술복에는 얼룩이 여기저기 있었는데, 그게 곧 아버지의 혈액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의사는 스테인리스로 된 작은 트레이를 들고 왔고, 나와 마주 앉은 테이블 가운데 놓았다. 트레이를 덮고 있던 거즈를 들어내니 막 소독액으로 세척을 한 듯한 허연 껍데기 같은 것이 있었다.


의사는 평평하고 납작한 그것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아버님의 절제하신 위입니다. 3분의 2가량 절개했고, 절개한 부분과 소장을 이어뒀습니다. 수술은 잘 됐고요. 지금 후처치 중이니 그것만 끝나면 나오실 거예요. 자, 확인해 보세요."


확인해 보세요?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 걸까.


이게 내 아버지의 위가 맞는지 아닌지인가? 아니면 절개된 부분이 과연 잘 되었는지 아닌지인가? 나는 난감했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건 아버지의 위장이었다. 비위가 약한 나는 나도 모르게 입에 손을 가져다 댔다. 본능이었다. 의사가 나를 보더니 바로 거즈를 덮어 주었다.


아버지가 수술받는다는 것의 의미가 곧 아버지의 장기를 두 눈으로 직접 보게 된다는 의미인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나는 당황했다. 그렇지만 의료사고를 대비해 무엇이든 카메라로 남겨 두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사진을 찍어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의사가 다시 덮개를 걷어내 주었다. 나는 휴대전화를 꺼내 트레이에 놓인 아버지의 잘린 위장을 찍었다.  


아버지는 수술 후 통합간호병동으로 옮겨졌다. 통합간호병동은 간병인이 필요 없었고, 보호자의 출입 시간에도 제한이 있었다. 나중에야 들었는데, 아버지는 수술을 끝내고 입원실로 옮겨진 당일 밤, 서서히 마취가 풀리면서 너무 아파서 죽을 것 같다는 말을 계속했다고 한다. 나는 출입 제한시간이 끝나갈 무렵 한 번 더 아버지를 보러 갔는데, 어두운 병실 안에서 아버지는 나를 딸이 아닌 의사로 오인하고 이렇게 흐느꼈다.


"태어나서 이렇게 아픈 건 처음이에요. 잘못했어요. 의사 양반, 제발요. 제발 좀 살려주세요....잘못했어요. 허어흐."


개복해 본 아버지 뱃속의 악성 종양은 3기였다.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2주 후 퇴원은 예정대로 진행이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아버지는 돌아갈 집이 없었다.


명절이면 아버지는 매일 집 앞에서 들어오지 말고 그만 돌아가라며 손사래를 쳤었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헤어지고 혼자 원룸에서 지냈고, 많은 생활의 변화를 겪었다. 우선 고령으로 직장을 관두게 되었고, 척추 디스크가 있어 거동이 불편했다. 거기에 녹내장과 고혈압까지 앓고 있어 매일 먹는 알약만 열 알 가까이 됐다. 혼자 남은 아버지는 남들보다 빨리 늙어갔다.



아버지의 위암 판정 직후, 옷가지와 잔짐을 챙기기 위해 처음으로 문을 따고 아버지 집에 들어가 보았다. 방바닥에는 음식물이었을까, 피였을까. 알 수 없는 얼룩이 여기저기 있었다. 그리고 썪고 있는 음식물과 더러운 이부자리와 옷가지, 한쪽 구석에 마구잡이로 쌓여있는 종이들까지. 별다른 짐이 없는데도 무엇 하나 제자리에 물건이 있다는 느낌이 없이 어질러져 있었다. 모든 물건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전부 낡았고 새까맸고 헤져 있었다. 종이 한 장을 집어 드니, 손가락에 새까만 먼지가 묻어났다. 오래된 먼지들이 작은 방 하나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여기서 지내셨구나, 이렇게 지내셨던 거구나....

아버지는 이 좁은 방 안에서 배를 잡고 쓰러지셨던 거였다.


나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방바닥에 온기라고는 없었다.

나는 바닥에 누워있었을 아버지를 상상했고 그 바람에 갑자기 눈알이 빠질 듯이 아파왔다.


이렇게 쉽게 울고 싶지는 않았다. 마음을 다잡았다. 도대체 왜 이렇게 방은 엉망인지, 무엇 하나 제대로 된 물건은 없는 건지, 난 과연 어떤 짐을 챙길 수 있는 건지, 화를 내 보려고 노력했다. 아버지의 방은 알 수 없는 오물로 가득 차 있었고, 모든 물건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남루했다. 거기에 찌든 담배 냄새까지 코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추석인가에 선물로 드린 넥타이가 상자째 바닥에 쌓여있는 걸 보고 난 그만 앉은 자리에서 아이처럼 울음이 터져버렸다. 그동안 왜 그렇게까지 집에 못 들어오게 했는지 이해하면서, 아버지가 느껴야 했을 수치심과 부끄러움은 고스란히 내 몫이 되었다.



아버지는 수술 후 당분간 집을 구하기 전까지 요양원에서 지내게 되었다. 다행히 대학병원에서 연계해 준 요양원에 어렵사리 입원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수술 후에 조금도 걷지 못해 휠체어를 타야 했고, 자극이 없는 음식들만 아주 소량으로 씹어 넘길 수 있었다.


코로나 시국이라 요양원은 보호자를 포함한 모든 외부인이 출입 금지 상태였다. 다행히 나는 아버지가 요양원에 입원하던 날, 방호복을 입고 병실에 같이 올라가서 잠깐 짐 정리만 하고 내려올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다. 먼저 도착해 병실 침대에 누워있던 아버지는 바로 옆에 있는 나를 계속 못 보고, 말을 더듬으며 누군가를 찾았다. 침대 옆 수납장에 짐을 다 정리하고 돌아서려는데, 남자 요양사가 아버지에게로 뛰어왔다.


아버지는 침대에 누운 채로 바지를 내리고 소변을 보고 있었다.


나는 바로 고개를 돌렸다. 그 장면을 보기가 두렵기 때문이 아니었다. 나는 간병하는 내내 아버지가 보지 않았으면 하는 것들을 충실히 못 본 척해 왔다. 아버지에게 필요한 건, 나에게 그런 자신을 들키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찰나에 아버지의 눈을 분명히 보았는데, 완전히 텅 비어버린 공허한 눈빛이었다. 마치 섬망 같았다.


아버지의 세간살이 중 가지고 나올만한 것은 보건소에서 나누어준 무료 마스크와 이력서 종이들뿐이었다.
이전 05화 마지막 통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