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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별 Oct 03. 2023

그림자와 찔레꽃

세상에 없는 계절 #07

요양원은 면회시간이 정해져 있었다. 코로나 감염예방 시국이었다.


그리고 방문할 때마다 복잡한 신원 확인 절차를 했다. 면회 신청 서류를 작성하고 조금 기다리니, 아버지가 휠체어를 타고 내려왔다. 면회실은 따로 있지 않고 1층 로비 내 작은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대면이 이루어졌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아버지의 얼굴이 한결 편안해 보였다. 추운지 무릎 위에 두꺼운 담요를 덮은 채였다. 그리고 얼굴은 아주 말갛게 느껴졌다. 아주 오래 전에도 아버지가 참 말갛게 느껴진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어둠이 내리는 길목에 서성이며

불 켜진 창들을 바라보면서


내가 대학생이었을 때, 그러니까 아버지 나이가 예순이 훌쩍 넘었을 때, 아버지로부터 이런 문자 메시지를 받은 적이 있다. 메시지를 보는 순간, 아버지의 말투라기에 너무 어울리지 않아서 노래 가사가 아닐까 생각했다. 무슨 노래인지 찾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해 봤다.


어둠이 내리는 길목에 서성이며

불 켜진 창들을 바라보면서

아 외로운 나 달랠 길 없네

그림자 내 이름은 하얀 그림자

- 서유석, 그림자


"서유석의 그림자라는 노래네요."

정답을 찾아낸 나는 이렇게 답문을 보냈다.


아버지는 젊은 시절 회사에서 일할 때, 18번이었던 이 노래를 부르면 같이 일하는 동료들로부터 무수한 앙코르를 받았다고 기다렸다는 듯이 재 답문을 해 왔다.


아버지가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지만, 정확히 그가 그리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며칠 전 아버지에게 언성을 높인 일이 있었고, 이런 식으로 대화의 물꼬를 트는 것은 아버지의 화해 방식이었다. 어느 날인가에 아버지는 아침 등굣길에 전화를 걸어 뜬금없이 노래를 들려주기도 했다. 이름 모를 여가수의 사연 깊어 보이는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흘러나왔다.


"아빠는 이 노래가 참 좋더라. 들어봐라."

라디오였는지 여가수의 목소리는 드문드문 끊겨서 들렸다.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배고픈 날 가만히 따먹었다오

엄마 엄마 부르며 따먹었다오

- 이연실, 찔레꽃


이 통화를 끝내고 몇 년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불현듯 이 노래를 찾아보게 되었다. 그건 이연실의 찔레꽃이라는 노래였다.


제목도 몰랐던 이 노래를 듣고서, 전화를 끊은 뒤에 한참을 울었었다. 그즈음 아버지와 저녁 식사를 같이한 적이 있었는데, 아버지는 간짜장 면을 감싼 비닐 위에 소스를 그대로 붓고는 당황을 했다. 면 위에 덮여 있던 비닐을 전혀 보지 못한 것이었다.


자연스러운 노화의 과정이든, 녹내장의 증상이든, 그 장면을 목전에서 겪은 당시의 나는 알 수 없는 공포에 불안해졌던 것 같다.


마치 덩치 큰 곰이 아직은 날카로운 이빨과 손톱을 그대로 갖고는 있지만 서서히 쓰는 법을 잊어가고 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늙어가는 사람을 보는 일, 그 가족을 들여다보는 일, 이것 자체는 슬픔이지만, 나에겐 분명 다른 감정도 들었다. 만약 아버지가 늙지도 병들지도 않고 그대로라면, 내가 어린 시절의 그 모습 그대로라면, 나는 어쩌면 아버지를 충분히 미워할 수 있을 텐데. 왠지 미워할 시간이 부족해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팽팽한 비닐 위로 시꺼먼 짜장소스가 넘쳐흐를 때, 아버지는 아주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건 그 일을 벌인 것 자체가 당황스러워서라기보다는 내가 그것을 같이 보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어휴 참. 잘 보셨어야죠."

나는 별일 아닌 듯 무심히 대꾸하며 비닐에서 짜장 소스를 걷어냈다.


다음날부터 아버지는 어딜 가든 돋보기를 챙겨 다녔다. 그 후로 몇 년간은 짜장면을 먹을 때면 팽팽한 비닐 위에 짜장 소스가 질퍽하게 엎질러지는 장면이 이따금 떠올랐다. 그럴 때면, 그가 가족에게 바친 청춘과 기나긴 고통의 시간이 순식간에 엎질러져 내 눈앞에 펼쳐지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림자와 찔레꽃, 나는 이 두 곡을 포함해서 아버지가 평소에 즐겨 듣던 팝송들을 검색해서 일일히 다운로드했다.


그리고 면회하는 동안 아버지의 휴대전화에 파일을 넣고 이어폰으로 듣는 방법을 차근차근 알려드렸다. 유리창 너머로 본 아버지는 휠체어에 가만히 앉아서 한쪽 귀에 이어폰을 끼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대답할 힘이 없는 아버지는 순종적이고, 따분할 만큼 침착해 보였다.


"이 노래…. 참 좋다."

찔레꽃이 흘러나올 때, 마치 처음 들어보는 노래처럼 아버지가 말했다.


그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사람을 벌할 자격은 없다. 설사 그게 자기 자신이라고 해도.


아버지는 어느 선을 넘어가 버리자 계속해서 늙어가기만 했다. 나는 오히려 예전 성미대로 한 번씩 화를 내시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아직 몸 안 어딘가에 웅크리고 있을 거라고 믿고 싶은 아버지의 젊음이, 그 순간을 통해서나마 쏟아져나온다면 나는 이제는 그걸 담담히 지켜봐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래 '가는 세월'로 유명한 서유석은 '나는 젊어 봤단다.'라는 노래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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