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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류 Oct 24. 2024

[서평16] 소년이 온다 - 한강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받다니!


역시 나는 사람 보는 눈이 틀리지 않았어.

오래 전 [채식주의자]를 읽었을 때,

이 사람은 천재다! 보통이 아니다!

문장 하나하나, 범접할 수가 없다!

고 생각했는데 노벨문학상이라니.


받아 마땅합니다.



한국에서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하는 이유가 다채로운 한글의 표현을 감히 번역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들 하지.

백 번 양보해서 그렇다고 치자.

그렇다면, 한강의 책들은 그 번역할 수 없는 표현들을 뛰어넘었다는 뜻이잖아?


"갑"이 뭔가!!


내가 굳이, 애써서, 그들의 언어를 배우지 않고 내 언어로 조잘대도 지들이 알아서 번역기를 돌려주는 것.

이것이야 말로 "갑 오브 갑"이 아닌가!






슬퍼하고 분노하며 마음 무겁게 이 책을 읽었다는 사람들이 많다.

누구는 끊임없이 흐느끼며 읽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담담했다.


영화 [서울의 봄]을 봤을 때도,

"쿠데타가 다 그렇지 뭐."라고 생각했고, 그다지 와닿지 않았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쿠데타가 일어나고 정권이 바뀌고 있는데...,

같은 한국인이라고 해서 감정이 흔들려야 하나?


영화자체만 봤을 때, 그 후 전두환의 만행을 모른다는 가정하에, 내가 본 [서울의 봄]은 그냥 좀 식상한 신파극에 지나지 않았다.


[소년이 온다]도 사실 마찬가지다.


내가 왜 이렇게 감정이 매말랐냐면,


국민학교 저학년 때 읽은 만화책이 [삼청교육대]였고,

이휘소가 다리 촉대뼈에 뭔가를 넣어서 귀국했는데 그것 때문에 암살당했다는 뜬구름같은 얘기를 어린 나이에 듣게 되었으며,

실미도로 보낸 간부급 군인 중 한 명이자, 전두환의 가 내 친척이라는 복잡한 사실을 너무 어린 나이에 알아 버렸던 터이다.

그런 와중에 우리 집 책장에 꽂혀 있던 수많은 [김대중]에 관한 책들까지...


나는 어릴 적부터 주변에서 들려오는 너무도 많은 충격적인 사실들 속에서 자라왔고, 아닐 거라 생각했던 것들이 모두 진실이었기에, 이 책 하나로 슬퍼하거나 분노하기엔 내 마음과 머릿속이 이미 순수함과 너무도 멀어져 있었다.


그런 감정으로 무덤덤하게 읽다가 갑자기 눈물이 확 하고 쏟아진 부분이 있었다.


사랑채에선 남매가 주고받는 말소리가 들렸다.
나직하던 음성이 조금 높아지는가 싶으면 누군가가 다정히 달래고...,
[......]
잠들 때까지 너는 두 사람의 다투는 소리와 달래는 소리,
낮은 웃음소리를 점점 구별할 수 없게 되었다.

상상이 간다.

부모를 여읜 남매가 사랑방에서 알콩달콩 속삭이며 대화하는 모습이.


누나가 두 번 쓰다듬어준 내 얼굴,
누나가 사랑한 내 눈 감은 얼굴
더 많은 기억이 필요했어.
더 빨리, 끊어지지 않게
기억을 이어가야 했어.


이 부분에서는 거의 오열하다시피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서로 아껴주는 남매의 모습이 너무 생생해서,

사랑하는 동생의 눈을 감겨주는 누나의 모습이 아른거려서,


1장에서 영혼얘기가 왜 나오나 싶었는데, 2장에서 바로 죽은 정대의 혼이 "나"가 되어 1장부터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전개였다. 

동호가 "너"고, "나"가 정대였던 것이다.

아!!! 다들 이렇게 죽어간 거 였구나 ㅠㅠㅠㅠㅠ


5.18에 관련한 책은 사실 상당히 많다.


그중에서 내가 추천하고 너무너무 좋아하는 작품을 적어보겠다.


[김철수씨 이야기] - 수사반장 웹툰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 이문열 소설

[26년] - 강풀 웹툰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신해철의 70년대에 바침


학살자 전두환을 타도하라.

 


한때 유시민이 수감복입고 감옥에 끌려가는 사진이 너무 멋있어서 스.샷해서 배경화면으로 해 놓은적도 있었다.

전두환의 개들아!


책을 읽으서 여러작품들이, 이미지가, 상황이, 연출이 눈앞을 스쳐갔다.

한번도 가본적 없는 전남대, 도청, 광주시도 친숙한 눈앞에 스쳐갔다.


두려웠을 것이다.

오금이 저릴만큼 무서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도청으로 향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지금 죽어도 좋다는 느낌,
[......]
감히 내가 그것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
양심이라는 눈부시게 깨끗한 보석이
내 이마에 들어와 박힌 것 같은 순간의 광휘를.



나는 그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를 모두 들었다. 너무 슬퍼 눈물을 흘리면서도 나는 기록했다.
한국 언론에서 거짓을 말하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진실이 얼마나 위험한지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진실을 외면할 수 없었다.
내 필름에 기록된 모든 것은 내 눈앞에서 일어났던 일, 피할 수 없는 진실이기 때문이다.
위르겐 힌츠페터(당시 5.18 민주화 운동을 취재하러 온 서독의 기자)
나무위키 발췌



우리는 총을 들었지, 그렇지?
그게 우릴 지켜줄 줄 알았지.
하지만 우린 그걸 쏘지도 못했어.
[......]
방아쇠를 당기면 사람이 죽는다는 걸 알면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떤 기억은 아물지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흐릿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기억만 남기고 다른 모든것이
서서히 미모됩니다.


피해자는 눈감는 그날까지 피해자다.


살아남았다는 치욕을 느끼면서

그렇게 눈감는 그날까지 피해자로 어떤 보상도 받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다.


아무도 내 동생을 더이상 모독할 수 없도록 써야 합니다.



누가 모독을 받아야 하는가.

전두환은 그렇게 팔자좋게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모독만땅 채워서 디졌다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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