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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류 Nov 01. 2024

분주한 도쿄의 아침: 러시아워 일상 스케치

러시아워의 지하철은 끝내준다.

지하철의 아니라 말 그대로 지옥철이다.

지하철에서 내릴 때는 이미 전쟁에서 패하고 귀향하는 패전사처럼 만신창이가 되어있다.

내리자마자 옷을 한번 털고 후~하고 한숨을 쉰 다음 발걸음을 옮긴다.

이 때는 몇 가지 규칙이 있는데 그중에 하나는

절대 길을 물어서도 안되고, 걷는 템포를 바꿔서도 안된다.


이이다바시(飯田橋)에서 내려 유락초선(有楽町線)에서 토자이선(東西線)으로 환승하러 가는 사람은

일제히 일정한 패턴과 속도를 유지한다.

검은 슈츠를 입고, 업무용 가방을 들고 5~7Km 정도를 꾸준히 유지하면서 앞만 혹은 발밑만 보면서 걷는다.

열차가 들어오는 시간은 정해져 있으므로 그보다 빠른 속도를 낼 필요는 없다.

물결의 흐름에 따라서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표정은 없다.

전화를 하거나 말하는 사람도 없다.

회전스시의 컨베이너가 돌아가는 것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다.

앗차! 잊어버린 물건이 있어서 돌아가야 할 때라도 있으면 큰일이다.

스시 컨베이너를, 에스컬레이터를 거꾸로 거슬러서 그 인파를 뚫고 역주행하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전쟁이 일어나 이산가족이 생길만한 이유를 알 것만 하다.

인해전술도 이해가 된다.

길을 물어도 대꾸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히려 꾸준히 유지하고 있는 이 페이스를 끊는 길 잃은 양의 잘못이다.

정말 친절한 사람은 같은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제자리걸음으로 알려주곤 하지만, 성의 있는 대답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토자이센(東西線)을 타면 (물론 다른 지하철도 마찬가지겠지만) 지하철을 탄다라는 개념이 아니다.

쑤셔 넣는다라고 한다면 그것 역시 부족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엉덩이부터 밀어 넣는 사람들은 대부분 러시아워 30년 경력의 배테랑 40~50대의 회사중역이다.

신입사원은 일일이 스미마센이라고 말하면서 타지만 노련한 배테랑입에서 그런 말을 기대할 수는 없다.

일단 뭔가를 밀어 넣고, 쑤셔 넣고 문이 닫히기만을 기다린다.

문은 좀처럼 닫히지 않으면, 역원들이 달려와 꾸욱꾸욱 밀어 넣고서야

드디어 문이 닫힌다는 알림과 다음차를 타라는 외침과 함께 문은 닫히고 닭장차는 출발이다.

차 안에서의 풍경은 가관이다.

몸을 꼬깃꼬깃 접어서 가까스로 발은 디디고 있지만 가방은 둥둥 떠있고 손잡이 따위는 잡지 않아도 절대 넘어지거나 요동치는 법은 없다.


검은 슈츠를 입고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뚱뚱한 안경잡이가 내 눈앞에 서 있다고 한들 피할 구멍이 없다.

땀이 내쪽으로 튀지 않기 만을 바랄 뿐이다.

그 자리에서 참고 견뎌야만 한다.

아토피로 온 몸이 고목나무 같은 30대 후반의 키 작은 남자의 어깨에 비듬인지 각질인지가 소복이 쌓여있어도 눈 꼭 감고 견뎌야 한다.

내려서 다른 칸으로 이동한다는 자체가 무리다.

다른 칸에 그러한 사람이 없다는 보장도 없고 내렸다가는 이차를 못 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러시아워때의 배차간격은 2분 정도지만 그 인구는 결코 줄지 않는다.


이때에는 1억 일본 인구가 돌아가면서 몇 차례 씩 지하철을 탔다 내렸다 하는 것만 같다.

9시 가까이 되어 회사에 도착한다.

혼잡함은 금방 잊어버리고 일을 시작하고 다음날 이런 걸 또 반복하고 있다.


이런 아침이 5년째가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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