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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24] 노인과 바다-헤밍웨이

by 소류

책을 다 읽고 나자 가슴이 먹먹해져서 잘 시간이 지났는데도 잠을 못 이뤄서 노트북을 꺼내 브런치를 열었다.

(지금 시간이 새벽 2시...)


며칠 전, 호수에서 송어를 몇 마리 잡았던 덕에 소설 속 낚시 장면들이 유난히 생생하게 떠올랐다.

특히 노인이 상어 떼와 사투를 벌이는 장면부터는 긴장감에 단숨에 읽었다.

마지막, 몇 페이지는 몇 번이나 읽었고, 소년이 우는 장면에서는 나도 울지 않을 수 없었다.


노인은

망망대해 한가운데서 조각배 하나에 의지해 떠다녔다.

혼잣말을 하고, 과거를 회상하며, 자신의 아픈 손이나 새와 대화를 나누며 외로움을 견뎠다.

그러다 마침내, 조각배보다 훨씬 큰 청새치와 마주하게 된다.

사흘에 걸친 사투 끝에 그는 그 전설적인 물고기를 낚아낸다.


참고로 노인이 잡은 청새치는 "18피트는 되겠다"는 동네 사람들의 말로 보아, 5미터 이상에 무게는 최소 800kg의 전설적인 대어이다.


실제로 청새치는 쿠바 일대에서 잡히며 낚시대회에서 가장 상징적인 어종이기도 하다.

노인 혼자 몸으로 이 녀석을 잡기 위해 손을 다치고 찢기고 배고픔에 외로움과 싸워 마침내 청새치를 잡고야 만다.


청새치는 조각배보다 훨씬 크고 무거워서 배 위에 올릴 수 없어 배 옆에 매달고 항구로 향한다.
그 피 냄새를 맡고 상어 떼가 몰려들고, 노인은 피가 범벅된 바다 한가운데에서 상어들과도 끝없는 싸움을 벌인다.

무기라곤 작살, 노끈, 노, 키뿐. 결국 그는 배 키까지 뽑아 들고 싸운다.
하나씩 잃어가며 버텨내고, 물고기는 상어들에게 다 뜯기고 만다.


와! 상상해봐라.

깊은 밤, 피 냄새로 들끓는 바다,

조그만 배 위에 홀로 선 노인.

뾰족한 이빨을 드러내고 몰려드는 상어들,


노인은 늦은 밤 가까스로 항구에 도착한다.
불빛도, 마중 나온 사람도 없다

청새치는 뼈 밖에 안남았고, 노인은 만신창이가 되어 침대에 쓰러져 잠에 든다.


다음날 아침,

소년은 노인의 집에 와서 노인이 자는 모습을 보고 안도를 하지만 노인의 두 손을 보고는 그만 울기 시작했다.

커피를 가져오기 위해 길을 내려가면서 소년은 계속 울었다.

어부들이 노인의 조각배 주위에 몰려 서서 배 옆에 묶어놓은 것을 보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물속으로 들어가서 뼈만 남은 고기의 길이를 재고 있었다.


노인이 깨어나고 소년과 이야기를 나눈다.

소년은 다음부터는 노인과 같이 바다에 나가겠다고 한다.

운은 내가 가지고 가면 되죠.

나는 소년의 말 하나하나가 너무 좋았다.


“아무도 산티아고 할아버지를 깨우지 말아요.”
“코에서 꼬리까지 십팔 피트야.”
길이를 잰 어부가 소년에게 외쳤다.
“그 정도는 되죠.”
소년이 대답했다.”


이 부분이 너무 좋았던 이유는

소년이 아는 노인은 그 정도는 된다 라는 뜻이며 노인을 뿌듯해하며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노인이 소년에게 묻는다.
“사람들이 나를 찾았니?”
“당연하죠. 해안 경비선과 비행기까지 동원했는걸요.”

이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상관없다.

소년은 노인이 얼마나 외로웠는지,
얼마나 누군가 자신을 찾고 있기를 바랐는지 알기에

진심을 담아 위로한 것일지도 모른다.


노인은 소년과 대화를 나누는 순간 깨닫는다.

사람하고 말을 나누니 얼마나 기쁜지,
새삼 알 수 있었다.



이야기 마지막에는 관광객이 물고기 뼈를 보고 묻는다.
“저게 뭐죠?”

“티뷰론(상어)입니다.”

웨이터가 대답한다.


고작 티뷰론이라니!!

노인은 목숨 걸고 싸운 청새치를 세상은 고작 상어 한 마리로 여길 뿐이다.

세상은 누가, 무엇과, 어떻게 싸워왔는지 안물안궁이다.

그리고 그 결과물 역시 자기 마음대로 해석한다.




말 못 하는 갓난아이를 키우는 독박육아를 해 본 사람은 안다.
고산병을 이겨내며 히말라야 등반을 해 본 사람도 안다.
그것이 단순히 아기를 돌본 일이나, 산을 오른 행위가 아니라는 것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신과의 싸움,
그 외로움과 고통의 시간.

그리고 누군가 그걸 알아봐 주는 단 한 마디.


해안 경비선과 비행기까지 동원했는걸요.


이 한 마디가 지금 이 순간을 버틸 수 있는 유일한 위로일지도 모른다.


이 책의 핵심은 거창한 성공이나 패배가 아니다.

바다와 물고기를 사랑한 노인,
그 마음을 누구보다 이해하고 존중해 준 소년.

그 둘이 만들어 낸
고독과 연대, 싸움과 위로의 이야기다.


혹시 지금, 당신도 어떤 싸움을 조용히 견디고 있지는 않은가.
아무도 몰라주는 그 시간,
오해받고 외면당하는 그 자리에 혼자 서 있다면—

산티아고는 분명히 말해줄 거다.

“인간은 패배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부서질 수는 있어도,
무너지진 않는다.”

그러니 당신의 싸움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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