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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뜨끈한 콜라 Dec 27. 2023

동아시아 삼국의 인물론① - 덩샤오핑과 시안시 당교

실사구시와 지킬박사

시안시 당교 담장의 실사구시   

  

제가 종종 산책하는 길에는 중국 공산당 시안시위원회 당학교(이하 “시안시 당교”)가 있습니다. 시안시 당교는 대안탑 북광장을 지나 시안영화제작소 및 대당부용원의 돌담길을 거쳐 돌아오는 산책코스의 중간쯤 있습니다. 당교는 공산당 간부를 교육하기 위한 일종의 연수원으로서, 공산당 통치 체제의 유지에 중요한 기관입니다. 군대나 무장경찰만큼 중요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중국은 인민대중이 아니라 소수의 공산당 엘리트가 이끌어가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과거 우리 군의 육군사관학교, 옛 시절 법조계의 사법연수원 등을 떠올려 보면, 중국이라는 국가에서 당교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결은 다르지만 우리 특허청을 예로 들어 살펴보아도 좋을 듯합니다. 특허청은 국내 어느 기관과 비교하여도 독보적인 교육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분야 최고의 실무가와 학자들을 강사로 초빙하고 피교육자의 출결과 성적을 꼼꼼히 관리하며 양질의 커리큘럼을 개발하려고 끊임없이 애쓰는 등 직원 교육에 상당한 자원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민간의 삼성인력개발원을 제외하면, 특허청 국제지식재산연수원에 견줄만한 교육·연수기관은 아마 국내에 없으리라 봅니다. 특허청이 이렇게까지 교육에 힘쓰는 것은 업무의 성질상 심사관의 개인적 역량이 곧바로 특허청의 성과로 이어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당교도 같은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공산당이 영도하는 국가 시스템의 특성상 당 간부의 개인적 역량이 곧 중국이라는 국가의 역량으로 연결되니, 당교에 공을 들이는 것입니다.     


대당부용원 돌담길. 2021.7.18.촬영


시안시 당교의 담장에는 “실사구시(實事求是)”라는 사자성어가 붙어 있습니다. 이 문구는 “사실에 기초하여, 옳고 그름을 따지다.”, “현실에 터 잡아 진리를 추구하다.” 정도의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는 당교 앞을 지나갈 때마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이 글 앞에 멈추어 서서 생각에 잠기곤 했습니다. 정신 차려보면 매번 그렇게 담장 앞에 어정쩡하게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시안시 당교 정문. 2021.1.11.촬영


그 이유는 일단은 아마 조선의 실학자들 때문일 것입니다. 경세치용파, 이용후생파, 실사구시파, 기억나십니까? 그때의 역사 공부는 답을 골라낼 수 있을 정도로만 얕게 이해한 후 나머지는 그저 무작정 암기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사실 무슨 과목인들 안 그랬을까요. 답만 잘 맞추면 되는데, 어려운 개념을 이해해 보겠다고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니 당시 저도 ‘실사구시’가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했을 리 없습니다.    

  

다만 ‘실사구시’는 현실에 터 잡지 않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에 신물이 났던 자라면 누구라도 매혹될 만한 멋진 캐치프레이즈였습니다. 저라고 예외였을까요? 그렇게 이 문구는 중학생이었던 저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30년이 흘러 시안의 공산당 학교의 담벼락 앞에서 ‘실사구시’와 재회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 실학자들의 ‘실사구시’와 공산당의 ‘실사구시’는 같은 것일까요? 그렇다면 최초의 출처는 어디일까요?

  

‘실사구시’가 최초로 등장한 문헌은 후한시대 반고의 역사책 한서였습니다, 반고 이후 다양한 이들이 다양한 의도와 의미로 이 성어를 사용해 왔습니다. 일례로 추사 김정희 선생은 본인의 유학 연구 방법론으로서 ‘실사구시론’을 표방했습니다. 그는 실증적 태도로 옛 문헌을 해석하여 진리에 이르고자 했습니다. 유교적 세계관을 벗어나지 못했던 한계적 인물이라는 평도 있으나, 공리공론만 일삼던 당시 지식인 사회를 생각하면, 그는 분명 혁신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실사구시 방법론으로 완성해 낸 그의 서체를 유심히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 글씨는 옛것을 그저 답습하려는 사람이 쉽게 만들어 낼 수 있는 게 절대 아닙니다.     


마오쩌둥의 실사구시 서예 글씨. 연안. 2022. 2. 20. 촬영


당교 담벼락의 ‘실사구시’는 마오쩌둥의 글씨인데, (추사체와 스타일은 다르나,) 그만의 독특한 매력이 있습니다. 그의 필체는 호방하고 대담한 기세를 뽐내면서도 동시에 주의 깊고 세밀한 면모가 풍깁니다. 프로파간다의 결과물이라고 깎아내리기에는 그 예술적 가치가 만만치 않습니다. 하지만, '실사구시' 네 글자는 온전한 그의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가 ‘실사구시’를 당교의 교훈으로 정한 자라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껍데기는 마오쩌둥의 것이지만, 그 속에 담긴 정신은 덩샤오핑의 것입니다.     


마오쩌둥은 농민만이 순수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지식을 경시하였고, 이념에 집착하여 대륙을 불행한 길로 인도했습니다. 그는 사실 ‘실사구시’라는 말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다행히 덩샤오핑의 시대로 넘어오면서, 학교가 재건되었고 다시 지식과 과학이 존중되었습니다. 그래서 당교 담벼락의 ‘실사구시’는 아이러니하게도 1949년 이후의 마오쩌둥과 단절하겠다는 선언이자, 이념에 몰입하여 인민을 굶기는 일이 다시는 없게 하겠다는 결의인 것입니다.     


덩샤오핑, 그는 지킬박사와 하이드씨 

고대부터 현대까지 유구한 역사 속에서 중국인들인물관에 가장 부합하는 위인을 한 사람만 꼽아보라고 한다면, 저는 덩샤오핑을 선택할 것입니다. 그는 개방적인 정책과 리더십을 통해 위기에 빠진 중국을 구출하였고 오늘날의 중국을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는 진실로 '작은 거인'이었습니다. 그의 ‘실사구시’는 이른바 ‘흑묘백묘론(黑猫白猫论)’ 또는 ‘실천은 진리를 검증하는 유일한 표준(實踐是檢驗眞理的唯一標準)’이라는 명제로 구체화되었습니다. 결국 그의 사상의 핵심은 실용주의라는 한 단어로 요약할 수도 있습니다.     


그는 수많은 역경 속에서 쓰러지지 않은 불굴의 오뚝이(不倒翁)이자, 인민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자애로운 덩할아버지(邓爷爷)였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민의 요구를 무력으로 진압한 냉혈한 독재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인민을 풍요롭게 만들겠다는 위대한 이상을 품고 있는 겸손한 현자인 동시에, 이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베일 뒤의 모사꾼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어느 쪽이 본모습일까요? 자애로운 할아버지? 흑막의 음모자? 어느 쪽이 진짜이고 어느 쪽이 가짜일까요? 저는 둘 다 진짜라고 생각합니다. 자애로운 할아버지도, 흑막 뒤의 음모자도 100% 덩샤오핑의 본모습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는 야누스, 아수라 백작 또는 지킬박사와 하이드씨에 비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평소에는 지킬 박사처럼 올바른 일을 하려 진심으로 애쓰지만,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면 언제라도 하이드씨가 되어 설혹 가치에 위배되는 일도 서슴지 않고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1904년판 지킬박사 하이드씨 제1장  어린 소녀를 무자비하게 폭행하는 하이드씨.  삽화: Charles R. Macauley(1871-1934)


저는 동아시아 3국의 인물관은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중국이 ‘지킬박사와 하이드씨’를 추구한다면, 한국은 순수한 ‘지킬박사’, 일본은 순수한 ‘하이드씨’를 추구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글들에서 한국의 이순신 장군, 일본의 사카모토 료마를 예로 들어, 동아시아 3국의 인물론에 대해서 더 다루어 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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