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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유 Nov 01. 2024

카레 한 그릇

 마음이 허전하면 카레가 먹고 싶어. 따듯하고 부드러운 음식은 마음을 말랑하게 해주니까. 오늘도 생각이 나네. 

  카레의 기초는 역시 양파지. 양파는 겹겹이 쌓여 있는 삶의 응축이고 희로애락이란 생각이 들어. 내 삶에 녹아든 살뜰한 마음처럼. 무료한 날들이 마음을 지치게 할 때, 무기력함에 식욕조차 없을 때, 양파를 듬뿍 넣은 스프를 먹으면 저절로 기운이 나거든. 알싸하게 매운 양파 냄새에 먼 기억들이 밀려드네. 청년 시절 내게 맞지 않는 일을 하면서 지쳐가던 때 정희가 끓여주었던 따듯한 양파스프 한 그릇. 캐러멜라이징한 양파에 우유를 넣고 끓인 후, 살짝 구운 식빵과 치즈 한 조각을 얹었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던 하얀 김이 치즈를 녹진하게 만들었지. 한 숟가락 퍼 올리니 길게 치즈실이 늘어났어. 끊어지지 않을 우리의 우정처럼 느껴졌지. 나의 지친 마음을 잘 도닥여 주었어. 양파의 달콤함과 치즈의 짭짤함, 우유의 고소함이 어우러진 정희의 양파스프는 잊을 수 없는 그리움이야. 

  양파는 요리의 감초. 맛의 마술사야. 갈색이 나도록 오랫동안 볶아야 해. 진한 양파의 향이 침샘을 자극할 때쯤 제 모습은 뭉그러지고 서로를 껴안아 하나가 되지. 겹겹이 안고 있던 오묘한 향기를 아낌없이 내어놓아 맛이 어우러지지. 우리 가족에겐 바로 내가 양파 같은 사람이야.

  검은 봉투에서 감자를 꺼냈어. 고약해. 밋밋하고 수수함 속에 내재된 강렬함이 어느 순간 터져 나오는 걸까. 조금만 모른 척하면 여기저기에 뿔이 나거든. 그뿐인가. 축축한 부분을 살짝 건드리니 물컹하게 손가락을 받아들이네. 부드러운 촉감과는 달리 숨이 막히도록 지독한 냄새를 어쩌랴. 진실을 외면한 나의 우둔함이 감자를 고약한 존재로 만들었어. 부부도 적당한 무관심 속에서 지쳐가는 마음을 치유할 말이 필요하잖아. ‘이해해’ ‘괜찮아’ ‘힘들었지?’ 어떤 말이든 딱 한마디면 충분해. 그 말조차 하지 못해 상처가 쌓이고 썩어가는 우리 부부의 속마음을 닮았다는 생각이 드네.   

  느닷없이 기억조차 희미한 어떤 영화 속 두 친구의 대화가 떠오른 건 감자 때문이겠지. “그 남자에게선 아무런 향기가 나지 않아.” “향기가 없다는 건 오히려 세련된 것 아닐까.” 함께 살다 보니 너무 익숙해서 소중함을 잊게 되는 남편과 닮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아도 부드럽고 구수한 것이 감자의 깊은 매력이야. 버터와 소금, 약간의 야채만 섞어도 무한의 마술을 부리거든. 순수하기에 오히려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지. 땅 속 깊이 숨어서 수줍게 뽀얀 몸피를 만들어낸 감자. 그도 한때는 푸른 잎과 보랏빛 앙증스러운 꽃으로 햇살과 바람의 향기를, 별빛과 어둠의 은밀한 밀어까지 품고 있었다는 걸 기억해줘야겠어. 

  동글동글하고 터질 듯이 빨갛게 익은 토마토를 씻어 도마 위에 올려놨어. 칼집을 내어 끓는 물에 넣고 잠시 익히면 돼. 뜨거움을 버티지 못하고 껍질이 수축하면서 붉은 속살이 드러나지. 매끈한 껍질 속에 숨어 있던 과육이 뭉근하게 퍼지면서 숨어 있던 상큼한 향이 피어올라. 토마토는 자극적인 맛이 없어서일까. 생으로 먹으면 풀내음이 나고 밋밋하지만 달지 않은 풋풋하고 싱싱한 맛이 좋아. 자기와 맞는 재료를 만나면 부드럽고 상큼하게 고급스러운 요리로 변신을 하는 건 토마토의 반전 매력이지. 

  분노의 토마토, 좌절의 토마토라고도 하지만 난 희망의 토마토라고 말하고 싶어. 큰딸이 많이 힘들 때였어. 어느 날 딸은 잡동사니 속에 묻혀 있던 토마토 씨앗을 찾아내더니 화분에 심었지. 씨앗을 심었기에 발아가 되고 자라는 속도가 더뎠어. 제법 크게 자란 줄기에 노란 꽃이 몇 송이씩 피고 지더니 콩알만 한 방울토마토가 조롱조롱 달렸지. 한여름에 심었으니 토마토가 익기도 전에 서리가 내리기 시작했어. 남편은 토마토 화분을 비닐로 덮어 보온을 해주고 낮엔 열어서 햇빛을 쬐어주며 정성을 쏟았지. 딸이 심은 토마토가 빨갛게 익는 결실을 꼭 보여주고 싶었던 거야. 딸이 힘을 내기를 바라는 간절함이었어. 싸늘한 날씨에 익을 줄 모르고 파랗기만 하던 토마토가 조금씩 붉어졌어. 처음으로 수확한 방울토마토 두 알! 그 조그만 열매를 반씩 잘라 넷이서 나눠먹고 우린 엄청 뿌듯했지. 너무 작아서 제대로 맛을 느낄 만큼도 아니었건만 작은 열매가 품고 있는 희망과 사랑의 의미는 무엇과도 견줄 수 없이 남달랐거든. 우리가 먹어 본 가장 귀하고 맛있는 토마토 한 조각이었어. 가족들의 사랑이 힘이 되어서일까. 행복하게도 딸은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었어.

  말을 마음이 따라가는 걸까. 마음이 말을 따라가는 걸까. ‘화가 나면 당근을 흔든다’는 김겨울 작가의 한 구절이 참 재밌어. 호기심에 나도 당근을 힘차게 흔들어봤지. 화가 나서 흔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묘하게도 가슴속이 시원해지네. 잘린 당근에서 내뿜는 붉은 기운이 심장에 닿고, 스파크를 일으켜 온몸의 피를 힘차게 돌리는 듯했거든. 약간의 달짝지근함, 수박껍질의 시원한 향과 쑥 냄새가 섟인 듯한 오묘한 맛은 결코 맛있다고 느껴지지 않아. 그래도 카레엔 당근이지. 프라이팬 속에서 더 선명해지는 당근이 붉은 꽃으로 피어나네. 뭉뚱그려진 무채색 속에서 더 돋보이는 꽃으로. 속까지 푹 익혀도 잃지 않는 붉음의 지조. 본연의 색을 끝까지 지켜내지. 

  강렬한 빨강을 품고 있는 막내딸은 당근을 닮았어. 딸은 민화의 매력에 푹 빠졌거든. 찬란하게 꽃 피울 준비로 바빠. 준비 기간이 긴 만큼 더 탐스럽고 향기로운 꽃을 피울 테지. 딸의 작품을 펼치면 벌과 나비가 날아들 것만 같아. 그녀의 붓끝에서 피어난 꽃들은 너무 섬세하고 아름다워서 저절로 향기가 느껴지지. 딸의 마음에 내가 보지 못했던 꽃들이 참 많았다는 걸 요즘 느껴. 민화의 세계에서 더 선명하게 그려질 딸의 세상이 기대 돼.  

  모양과 색깔, 맛과 향이 다른 재료들을 다 볶았어. 냄비에 모두 담고 카레가루를 넣어 끓여야 해. 재료들이 따로 있을 땐 만나지 못했던 맛이 어우러지며 진정한 맛을 내게 돼. 숨겨진 맛이 화합하여 하나의 오묘한 맛을 만들지. 

  삶의 희로애락을 함께 하는 사람들, 우리 가족. 눈빛만 봐도, 표정만으로도 서로를 느낄 수 있는 사이. 행여 감추어진 아픔마저도 서로 끌어내 어우러질 수 있도록 각자의 배려가 필요해. 서로가 서로를 품고 기대고 끌어안아 마음과 마음이 어우러지는 거야. 카레 한 그릇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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