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해
인생은
그 시간의 길이보다
깊이가 중요하듯
행복한 한 순간이
무의미한 백 년의 인생보다
더 가치 있습니다
아름다운 목소리
꿈결 같은 당신의 초청에
나는 기꺼이 당신에게 달려갑니다
지금 내 뒤에서 귀를 막고
떨고 있는 저 사람들은
아마도 이 바다를 건널 수 있겠지요
하지만
정말 행복한 인생일까요?
- 세이렌의 노래에 혹해 바다로 뛰어들고 있는 선원의 변
트로이의 전쟁영웅 오디세우스는 전쟁이 끝난 후 귀향길에서 긴 항해를 하며 수많은 모험을 겪는다. 그중 세이렌과의 조우는 의지가 강한 오디세우스까지 굴복시킬 정도로 강렬한 사건이었다.
오디세우스의 연인 키르케는 항해에서 만날 위협들을 피할 방법들을 알려주는데 그중 하나가 세이렌의 유혹에 대처하는 방법이었다. 그녀의 조언에 따라 세이렌이 살고 있는 해협에 이르러서는 함께 항해하는 뱃사람들과 동료들의 귀를 밀랍으로 모두 막게 하고, 자신은 돛대에 스스로 묶여 어떠한 상황에서도 밧줄을 풀지 말 것을 동료들에게 당부한다. 세이렌의 유혹에는 빠지기 싫지만 노래는 들어보고 싶었나 보다.
이윽고 세이렌의 노래가 시작되고 밀랍으로 귀를 막은 동료들이 열심히 노를 저어 그 해협을 빠져나가는 동안 오디세우스는 밧줄에 묶인 상태로 그 노래를 들었다. 그를 미치도록 한 것은 달콤한 유혹의 노랫소리가 아니라 그 뒤에 들리는 지혜의 목소리였다. 세상의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주면서 더 많은 지혜를 얻고 싶다면 밧줄을 풀고 자기에게 오라고 하는 세이렌의 유혹에 그는 몸부림을 치며 주변의 전우들에게 밧줄을 풀라고 소리쳤다. 동료들은 이미 그가 당부했던 대로 오히려 밧줄을 더 강하게 묶어 그를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어 결국은 그곳을 무사히 빠져나오게 된다.
마치 뱀이 이브에게 에덴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를 먹으면 신과 같은 지혜를 얻게 될 것이라고 유혹한 것과 같이 세이렌도 쾌락과 더불어 지혜까지 제안해 오디세우스를 유혹한다. 세이렌의 유혹에 몸을 맡기고 바다로 뛰어든 선원들은 죽기 직전 지혜를 얻었을지는 몰라도 죽는 마당에 그 지혜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니, 그 순간은 행복했을까? 성경 전도서에서 지혜의 왕 솔로몬은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아 근심을 더한다고 했다. 지혜도 적당히 추구하는 것이 장수의 비결이 아닐까 싶다.
옛날이야기에서 항해 이야기는 단골 메뉴였다. 그 항해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집채만 한 파도도, 폭풍도 아닌 고요히 흐르는 세이렌의 노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