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를 달리다
별밤의 장막에
빛의 가루를 흩뿌리며
새벽이 밝아오고
간밤의 공상들은
추억되어 마음속에 침잠한다
왕과 기사, 우주인, 모험가..
이야기 속 주인공으로,
울고 웃으며 그리워했던
추억을 품고
은하수를 달려 날아올랐던
은빛의 날개를 접어
다시 땅으로 내려선다
풀벌레 소리 그치고
새소리 들린다
여름밤 은하수를 보며 나래를 펼쳤던 상상들은 새벽이 밝아 오면서 현실과 만나 빛가루와 함께 흩어진다. 하지만 그 기억들은 마음속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언제든 다시 그다음 이야기를 이어 가기를 기다린다.
호접지몽(胡蝶之夢)의 고사에서, 나비가 되어 즐겁게 날아다니는 꿈을 꾼 장자는 ‘내가 꿈에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인 내가 장자가 된 것인지 알 수 없구나’라며, 잊고 싶지 않은 그 꿈의 끝자락에서 회한에 잠긴다. 낭만 가득한 멋진 어르신이다.
날이 밝아오면 간밤의 꿈이 현실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지만 가끔은 그 꿈속의 세상이 현실이기를 바라며 한동안 그 꿈의 끝자락을 끌고 함께 현실로 들어설 때도 있다.
일장춘몽과 같은 덧없는 인생에서 현실도 꿈도 상상도 결국은 지금 이 순간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가는 조각들이 아닐까?
현실의 날실 위에 꿈과 상상의 씨실이 통과하면서 인생의 비단을 더 단단하고 아름답게 만들어 낼 것이다.
현실의 무게를 좀 더 가볍게 해 줄 좋은 상상들로 이 땅에서의 아름다운 추억들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가자. 결국 이 모든 현실과 상상의 기억들이 함께 추억으로 쌓이면서 인생 소풍의 그림을 완성해 갈 것이다.
'귀천'이라는 아름다운 시를 지은 천상병 시인은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심한 고문을 받고 후유증으로 남은 인생도 불편한 몸으로 외롭게 살다 가셨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희망과 동심이 깊이 자리 잡아, 이 땅에서의 힘겨운 삶도 아름다운 '소풍'이라 표현할 수 있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천상병, 귀천(歸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