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역사협회(New-York Historical Society)라는 이름만 놓고 본다면 뉴욕역사에 관한 사뭇 진지하거나 혹은 자칫 지루한 전시를 하는 곳이 아닐까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이런 편견 아닌 편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이곳 뉴욕역사협회는 거대한 자연사박물관(American Museum of Natural History)에서 한 블록 떨어진 77 스트릿에 위치한다. 마치 진공청소기처럼 관람객을 빨아들이는 자연사박물관 옆에 위치한 덕에 그 존재감이 미비하지만 센트럴 파크를 끼고 있는 어퍼 웨스트(Upper West) 뉴욕 5번가의 프라임 지역에 속해있다.
뉴욕역사협회는 뉴욕 최초의 박물관이자 도서관을 운영하는 역사 보존 단체로 박물관에서는 미국의 다양한 예술품을 전시하며, 도서관에서는 역사적 문헌들을 보관하고 있다. 특히 도서관은 뉴욕과 미국의 역사에 관련된 도서, 신문, 지도, 필사본, 알카이브, 프린트, 사진 등을 비롯하여 16세기 이후 뉴욕과 미국의 역사에 관한 방대한 자료를 수집, 보존하고 있다. 수년 전만 해도 예약 없이 열람실에 갈 수 있어서 특별한 도서관에 가고 싶은 날이면 이곳으로 향했는데 코로나 이후부터인지 도서관 개방이 수, 목, 금요일에만 국한되어 있고 방문 또한 이메일 (libraryappts@nyhistory.org) 예약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일주일에 3일만 개방하기 때문에 예약이 많이 밀려있으니 방문 1-2달 전에 연락하는 것이 안전하다.
토마스 콜의 풍경화 다섯점
박물관은 월요일을 제외한 모든 요일에 개장하며 매주 금요일 저녁 6시에서 8시 사이는 무료이니 입장료(어른 기준 $24)가 부담된다면 이 시간을 이용하시길 추천드린다. 뉴욕역사협회 박물관은 크게 3가지의 볼거리가 있다. 그 첫째는 단연코 토마스 콜의 풍경화이다. 토마스 콜(Thomas Cole,1801–1848)은 허드슨 리버 화파(Hudson River School)의 창시자로 19세기 미국의 대표적인 풍경화가이다. 진정한 미국미술은 이들 허드슨 리버 화파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당시 유명세를 누렸으며 화파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주로 허드슨강 계곡을 그린 작품으로 유명하다. 19세기 이전의 미국미술, 다시 말해 전근대 미국미술(Pre-modern American Art)은 여전히 유럽미술에 뿌리를 두고 있었고 특히 18세기 영국미술에 큰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19세기에 이르러 영국풍경화(English Landscape)가 대세가 되면서 도시확장에 여념이 없던 미국 또한 아메리카 대륙의 광활한 땅과 자연 그리고 풍경에 눈을 돌리게 되었고 그들의 땅을 모티브로 그린 19세기 미국풍경화가 짧은 미국의 역사 속에 각인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토마스 콜의 풍경화는 미술적 가치보다는 역사적 보존가치에 그 의미를 좀 더 둘 수 있다. 19세기 뉴욕의 땅의 역사이자 전근대미국미술의 시작이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티파니 램프 갤러리와 클라라 레스토랑
두 번째 볼거리는 티파니 램프 갤러리(Gallery of Tiffany Lamps)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주얼리 브랜드 티파니 앤 코(Tiffany & Co.)의 그 티파니 가문이 맞다. 티파니 앤 코는 보석상 찰스 루이스 티파니(Charles Lewis Tiffany, 1812 –1902)가 1837년 창립한 이래 그의 아들인 루이스 컴포트 티파니(Louis Comfort Tiffany, 1848 –1933)의 진두지휘로 20세기 초 유명세를 떨치게 된다. 루이스는 뉴욕출생 예술가이자 디자이너로 스테인드 글라스(stained glass)로 만든 장식예술품인 티파니 램프로 대중들에게 익히 알려져 있다. 램프의 이름조차 티파니인지라 루이스가 이 램프들을 디자인했다고 오랫동안 알려져 있었지만 최근 밝혀진 바로는 그의 티파티 공방 수석 디자이너인 클라라 드리스콜(Clara Driscoll, 1861-1944)과 그녀와 함께 일했던 여공들의 손에 의해서 제작된 작품들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티파니의 그늘 아래 이루어진 이 작품들은 여전히 티파니 램프 혹은 티파니 스타일 램프로 불리고 있다. 박물관 1층에 ‘Clara’라는 레스토랑이 있는데 알려지지 않았던 클라라 드리스콜과 그녀의 동료들을 기리는 의미로 이름 지었다 한다.
뉴욕역사협회의 티파니 램프갤러리는 100여 점의 티파니 램프 컬렉션을 비롯하여 스테인드 글라스 벽화등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갤러리 공간을 선사한다. 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스테인드 글라스 램프들의 향연은 마치 얼음왕국에 일곱 빛깔의 무지개가 뜬 것과 같은 특별한 기분을 자아낸다.
Meet the Presidents and the Oval Office
마지막으로 내가 꼽는 뉴욕역사협회 박물관의 볼거리는 뉴욕 속 작은 워싱턴이다. ‘Meet the Presidents and the Oval Office’라는 갤러리에는 역대 미국대통령들의 초상화를 비롯하여 위싱턴 백안관의 대통령 집무실(Oval Office)을 재현한 공간이 있다. 미국 대통령의 책상에 앉아 사진도 찍을 수 있으니 뉴욕에서 경험할 수 있는 작은 위싱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그리고 건물 입구에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의 조각상이 있는데 이곳 역시 관람객들에게 인기 있는 포토존이다.
Objects Tell Stories
뉴욕역사협회는 이 외에도 넘쳐나는 볼거리로 의외의 놀라움을 선사한다. ‘Objects Tell Stories’라는 전시관은 제목 그대로 여러 뉴욕의 역사적 사건들을 상기시키는 오브제로 가득하다. 또한 내가 방문했을 때에는 겨울시즌이라 크리스마스 특급열차(Holiday Express) 전시물도 있었다. 박물관 일층 스토어는 티파니 램프 문양의 여러 가지 기념품과 굿즈들로 가득해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시간 가는 줄 몰랐다.
Holiday Express
관람객으로 늘 붐비는 대형 미술관과는 달리 비교적 한적하면서도 쾌적한 공간에서 수준 있는 전시를 즐길 수 있는 이곳 뉴욕역사협회회는 반짝반짝 빛나는 티파니 램프처럼 뉴욕 속 숨겨진 보물 같은 곳이니 기회가 되신다면 꼭 방문해 보시길 권해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