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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udia Park Dec 17. 2023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재개장한 유럽회화 갤러리 그리고 영국미술 2편

Photographed by Claudia Park


2023년 11월 새롭게 개장한 메트의 유럽회화관은 천장의 채광창을 교체한 덕분에 갤러리 전체가 밝아지고 생기가 돈다는 점뿐만 아니라 세부 갤러리들의 큐레이팅 전략도 굉장히 다이내믹해졌다. 그중에서 역시나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곳은 영국회화가 모여있는 또 다른 갤러리였다. 전편에서 호가스의 가족화를 소개하면서 메트의 신선한 큐레이팅을 언급했었는데 이번 갤러리에서도 비슷한 점이 보였다.   


‘브리티시 애틀랜틱 월드 The British Atlantic World’ (Gallery 528)라고 명명된 이 갤러리는 이제 본격적으로 애틀랜틱 월드의 중심이었던 18세기 영국의 미술을 조명한다. 거창한 이 이름이 뜻하는 바는 제국주의로의 길목에서 막강한 부와 군사력을 지니게 된 18세기 영국이 배출한 그들의 미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 시점 영국이 더 이상 잉글랜드(England)가 아닌 그레이트 브리튼(Great Britain)이라는 점도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다. 18세기 초  웨스트민스터 의회에서 연합법(Act of Union)이 통과되면서 영국 본토에 해당하는 그레이트브리튼 섬에 있는 3개국 지역인 웨일스(Wales), 스코틀랜드(Scotland) 그리고 영국(England)이 유나이티드 킹덤 어브 그레이트 브리튼(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으로 통합되어 명명되었다. 우리말로는 ‘대영제국’, 말 그대로 제국주의 영국을 의미한다. 물론 ‘잉글리시(English)’와 혼재해서 사용하기도 하지만 통상적으로 이 시점 즈음부터 영국에 관한 것들을 가리킬 때는 앞에 ‘브리티시(British)’를 사용한다.  그리고 이때 발전한 영국 미술은  ‘브리티시 아트(British art)’로 분류된다. 호가스로 소개한 가족화가 ‘브리티시 컨버세이션 피스(British conversation piece)’가 아닌 ‘잉글리시 컨버세이션 피스(English conversation piece)’로 기록되는 것이 바로 이 이유에서이다.


그럼 본격적으로 메트에서 소개하는 브리티시 미술을 한번 살펴보겠다. 역시나 초상화가 대부분이다. 당시 영국화가들의 주된 수입원은 초상화였고 이에 대부분의 화가들이 초상화가로 데뷔를 하였다. 하지만 1768년 영국왕립미술원이 창립되면서 영국을 대표하는 미술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던 차, 유럽미술전통에서 하위장르로 치부되는 초상화로는 부족했다. 이에 영국왕립미술원 창립자이자 초대회장인 조슈아 레이놀즈(Joshua Reynolds, 1723–1792 London)나 영국 초상화가의 대가 토마스 게인즈버러와 같은 화가들은 그들의 초상화에 당시 유행하던 이탈리아풍의 풍경이나 혹은 고전미술적 요소들을 가미하기 시작했다. 절충(折衷) 주의(eclecticism)적 미술양식을 시도한 것이다. 절충주의란 신학이나 철학에서 한 가지 주의를 만을 따르지 않고 여러 가지 설 중에서 좋은 것을 뽑아 절충한 주의 사상을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는데 18세기 영국미술이 이러한 특징을 보인다.


(좌) 토마스 게인즈버러의 초상화 (우) 조슈아 레이놀즈의 초상화

(좌) Thomas Gainsborough, Mrs. Grace Dalrymple Elliott (1754?–1823), 1778

(우) Reynolds, The Honorable Henry Fane (1739–1802) with Inigo Jones and Charles Blair, 1761–66

(좌) 조수아 레이놀즈의 초상화 (우) 토마스 게인즈버러의 초상화

(좌) Joshua Reynolds, Captain George K. H. Coussmaker (1759–1801), 1782  

(우) Thomas Gainsborough (British, Sudbury 1727–1788 London), Cottage Children (The Wood Gatherers), 1787


갤러리를 둘러보니 아니나 다를까 레이놀즈와 게인즈버러의 초상화 작품이 가득하다. 그들의 초상화는 단순히 초상을 위한 초상화라기보다는 초상화라는 장르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시대적 도전이라고 보아도 될 것이다. 그런데 갤러리를 쭉 둘러보던 중 깜짝 놀랄만한 작품이 보였다. ‘아니 이 작품이 왜 여기에 와있지? 전시기획자는 어떤 의도로 이 작품을 여기 걸어둔 걸까?’ 이런 의문의 배경은 다름 아닌 미국화가 존 트럼불(John Trumbull, 1756–1843)의 <지브롤터 방위군 출격 The Sortie Made by the Garrison of Gibraltar>이 이곳 영국미술관에 걸려있었기 때문이다. 유럽회화관이 재개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이 그림은 미국미술 컬렉션을 전시하던 아메리칸 윙(American Wing)  갤러리의 주요 작품 중 하나로 미국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의 초상화와 함께 미국미술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전시되었다. 그랬던 미국화가의 그림이 이제 영국 화가들의 초상화 작품이 가득한 이 공간에 걸려있다는 것이 획기적으로 느껴졌다.


(좌) 트럼불 <지브롤터 방위군 출격> 1789 (우) 트럼불 <조지 워싱턴과 윌리엄 리> 1780


트럼불의 <지브롤터 방위군 출격>은 미국독립전쟁(War of American Independence, 1775-83)이 한참이던 1781년, 지브롤터(Gibraltar:스페인 남단에 있는 영국의 식민지)에 주둔하고 있던 영국군을 스페인군이 급습했던 역사적 전투를 배경으로 한다. 그림의 중앙에는 부상을 당한 스페인 장교 바르보자(José de Barboza)가 영국군의 도움을 거부한 채 장렬히 죽어가는 모습을 담고 있는데 마치 순교자와 같은 포즈를 취하고 있다. 동시대에 일어난 유명한 사건을 고전미술의 틀을 빌려 그린 이런 성격의 회화를 동시대적 역사화(contemporary history painting)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미술양식은 특히 18세기 영미화가, 즉 북아메리카 영국식민지(독립 후 미국)의 영토에서 태어났지만 일정기간 본국(영국)에서 미술교육을 받고 이후 영국이나 혹은 독립된 미국에서 미술활동을 한 화가들을 통해 주로 발전되었다. 대표적인 화가로 트럼블이나 벤자민 웨스트(Benjamin West, 1738 – 1820)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영미화가들은 국가적 정체성이 모호한 시기에 활동했고 당연히 영미미술의 경계 또한 쉽게 구분 지을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에 트럼블의 <지브롤터 방위군 출격> 역시 영국의 역사적 사건을 주제로 하지만 작가의 국적은 지금 우리의 시선에서는 미국이라는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이런 이유로 이전의 메트는 비교적 전통적이면서도 보수적으로 이 작품을 미국미술관에 전시했다.  게다가 트럼블은 1784년 영국에서 미국으로 돌아온 이후 미국미술 아카데미(American Academy of the Fine Arts)의 교장으로 재직하면서 화가이자 교육자로 미국 전근대 미술의 발전에 이바지하였기에 이런 그의 작품이 미국미술관에 전시되는 것은 당연해 보였다. 그런데 확 바뀐 메트는 다른 선택을 했다. 비록 미국작가인 트럼블이 그렸지만 그림의 내용은 ‘브리티시 애틀랜틱 월드’라는 이 전시관의 주제에 부합하는 이 작품을 과감히 아메리칸 윙 갤러리에서 떼내어 유럽회화관의 중심에 배치한 것이다. 아메리칸 윙 갤러리 입장에서는 주요 작품을 내어주어야 하니 어쩌면 탐탁지 않아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결정 덕분에 메트의 새로운 유럽회화관은 더욱 흥미진진하다.



지난 글에서 유럽회화관이 호가스의 가족화를 다른 유럽회화작품들과 함께 전시하여 18세기 영국미술을 유럽미술의 계보에 편승하게끔 했다고 평가한 것에 이어 이번 글은 메트의 유럽회화관이 트럼블의 <지브롤터 방위군 출격>을 통해 미국전근대미술을 18세기 영국미술의 선상에 올려다 놓는 흥미로운 시선을 만들어내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미국 경제지인 파이낸셜 타임즈(Financial Times)가 새롭게 단장한 메트의 유럽회화관을 트라이엄프(Triumph:대성공)라 극찬한 12월 5일 자 기사 ‘The Metropolitan Museum’s rehung European galleries are a triumph’가 티끌만큼도 무색하지 않은 엄청난 전시다. 유럽회화관의 고작 두 공간만을 뜯어보아도 이 정도로 할 말이 많은데 이번 주말에 다시 메트로 향해야겠다.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설레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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