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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udia Park Jan 21. 2024

브루클린 미술관 1편

평화로운 왕국

브루클린 미술관은 이름 그대로 브루클린에 있어서 맨해튼 죽순이인 나로서는 항상 방문이 꺼려지는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곳을 자주 찾는다. 방문 전의 망설임이 미술관 도착 즉시 사라질 것을 알기 때문이다. 뉴욕시 5개의 지역구(맨해튼, 퀸즈, 브롱스, 롱아일랜드, 브루클린) 중에서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다음으로 가장 큰 규모의 미술관으로 고대 이집트 미술부터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이슬람, 아메리카 원주민(Native American) 미술 등 다양한 세계미술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다. 이 외에도 인기 있는 현대미술 작가전을 자주 개최하여 관람객층은 비교적 젊은 편이다. 게다가 매달 첫 번째 주 토요일에는 오후 5시부터 밤 11시까지 개장하여 미술관 내의 레스토랑과 카페는 젊은 뉴요커들의 핫플레이스가 된다. 덕분에 미술관의 분위기는 격식적이지 않으며 자유롭고 편하다.                                       

미술관 1층 로비 일부

이번에 브루클린 미술관에 대한 글을 써야지 하고는 마음을 먹고 미술관 웹사이트를 살피다가 미술관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흥미롭고 놀라운 글을 발견했다.   


‘The Brooklyn Museum stands on land that is part of the unceded, ancestral homeland of the Lenape (Delaware) people. As a sign of respect, we recognize and honor the Lenape (Delaware) Nations, their elders past and present, and future generations. We are committed to addressing exclusions and erasures of Indigenous peoples, and confronting the ongoing legacies of settler colonialism in the Museum’s work.  브루클린 미술관은 레나페(북미인디언 부족(族) 중 하나로 델라웨어족이라고도 함) 조상들이 자치했던 땅의 일부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우리는 레나페 나라(nations)와 그들 조상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세대들을 기억하고 기리고자 합니다. 지워지고 소외되었던 인디언들에 대한 이야기를 충실히 하면서 미술관에 팽배한 식민주의적 유산에 맞설 것입니다.’

 

식민주의가 산출한 문화유산에 대한 논의와 비판은 몇십 년 전만 해도 미술사연구의 단골주제였다. 하지만 세계의 수많은 대형 박물관들은 이에 관련된 논문이나 의견들을 적극 수용하지 않는다. 그러니 당연히 식민주의적 성격을 지닌 그들의 컬렉션은 계속적으로 전시되고 있고 그 결과 편향된 시선을 생산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그 시선이 어떤 형태이든지 말이다. 그래서 ‘confronting the ongoing legacies of settler colonialism in the Museum’s work 미술관에 팽배한 식민주의적 유산에 맞설 것입니다.’라는 미술관의 공식적 입장은 사뭇 신선했다. 브루클린 미술관이 언제부터 이런 태도를 취하기 시작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적극적인 변화의 일부임은 틀림이 없는 듯하다.


이와 관련해서 생각나는 것이 있는데 2020년 미국에서 코로나가 터지면서 사회경제적으로 취약계층이었던 많은 사람들이 전염병이 창궐했음에도 불구하고 생계를 놓지 못했을뿐더러 제대로 된 의료혜택조차 받지 못한 사실이 드러났다. 어떻게? 비극적이게도 그들의 사망률로 말이다. 인종의 도가니인 미국은 여러 인종이 함께 살아가고 있지만 코로나로 인한 사망률은 몇몇 특정 인종에 집중되었고 이는 미국의 어두운 밑낯이 만천하에 드러난 것과 같았다. 게다가 이 무렵 흑인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가 경찰에게 진압되던 중 죽임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 사건은 흑인인권운동(Black Lives Matter)의 도화선이 되었고 때마침 코로나로 인해 집중적으로 희생된 미국의 다른 소수인종에 대한 인권적인 문제 또한 결부되면서 다각도로 확산되었다.


Jacques Guillaume Lucien Amans (1801–1888), Bélizaire and the Frey Children, 1837. The MET

이에 대해서 미술계도 반응했고 소극적이지만 변화를 향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내가 접하게 된 이와 관련된 가장 최근 소식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매입한 한 미국미술 작품에 관한 것이다. <벨리자르와 프레이가 자녀들 Bélizaire and the Frey Children>(1837)이라는 초상화인데 벨리자르라는 한 흑인 노예아이가 그의 주인인 프레이 가문의 자녀들과 함께 그려져 있는 모습을 담고 있다. 통상적으로 흑인 노예가 주인과 함께 그려지면 그의 이름은 그림의 제목에 언급되지 않던가 아니면 주인이름 다음에 ‘and a Servant(그리고 하인)’ 정도를 붙이는 것에 지나지 않았던 최근까지의 관례에 비해 이 그림에는 하인 아이의 이름이 먼저 나온다.


Bartholomew Dandridge, A Young Girl with an Enslaved Servant and a Dog, Yale Center for British Art

대조적으로 예일 브리시티 아트 센터의 <노예하인과 어린 소녀 그리고 강아지 A Young Girl with an Enslaved Servant and a Dog>(1725)라는 그림과 비교해 보면 이해가 쉽다. 전통적인 유럽 초상화에서 하인이 주인과 함께 그려질 경우 하인은 주인에 가려 몸의 일부만 보인다거나 백인 주인과는 상대적으로 아주 작게 묘사된다. 식민주의로 취한 물질과 부에 대한 증거정도로 흑인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이런 그림에서 흑인의 인권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이런 흑인 하인의 이름이 작품의 제목이 되기까지는 엄청난 시간이 흘러야만 했다. 물론 하인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여서겠지만 동시에 식민주의적 시선이 변화하기란 쉽지 않다는 것에 대한 단편적인 예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어쨌건 메트의 이 초상화는 시대적 흐름을 잘 타고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그리고 그림 속 벨리자르 역시 하인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캐주얼하면서도 독립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어 전통적인 유럽초상화 속 흑인의 모습과는 비교된다. 비록 완벽하게 그의 전신이 그려진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리고 이 그림은 메트의 미국미술관(The American Wing)에 전시되는 미국 작품이라는 것에 그 의미가 남다르다.


브루클린 미술관 미국미술 전시관 일부

이런 분위기의 일환으로 브루클린 미술관이 지향하는 바 역시 이해해 볼 수 있을 것이며 더불어 미국의 초기미술에 대한 관심과 새로운 해석 또한 기대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브루클린 미술관의 미국미술 컬렉션을 한번 소개해보겠다. 2024년 1월 기준 미술관 5층에는 미국미술 전시가 진행 중이다. 대부분이 소장작품이라 언제 방문하시더라도 전시 성격의 변화는 크게 없을 것이다. 전시관의 입구를 장식하고 있는 작품은 미국작가 에드워드 힉스(Edward Hicks, American, 1780-1849)의 <평화로운 왕국 The Peaceable Kingdom> (1833-1834)이다.


Edward Hicks (American, 1780-1849). The Peaceable Kingdom, ca. 1833-1834. Brooklyn Museum

이 그림은 이사야서에 기술된 에덴동산에 관한 말씀에 영감을 받아 작가가 구현한 가상의 장면이다. 그림의 중앙에는 주님의 창조물인 동물들과 아이들이 한데 어우러져 있고 왼쪽 뒷배경으로는 영국의 종교인이자 퀘이커교(the Quaker)의 개척자인 윌리엄 펜(William Penn, 1644 –1718)이 레나페 부족과 평화롭게 조약을 맺는 모습을 작가가 상상하여 그렸다. 하지만 불행히도 레나페 부족은 펜의 아들들이 저지른 부당한 토지거래로 인해서 이후 펜실베니아 땅에서 쫓겨나게 된다. 


영국에서 많은 지지를 받지 못했던 퀘이커 교도들은 아메리카 대륙을 그들의 피난처로 여겼고 이들 중 한 명이었던 윌리엄 펜은 신대륙 도래 후 영국왕으로부터 실베니아 땅의 개척을 위임받게 된다. 그리고 그곳을 그의 이름을 붙여 펜실베니아라 부르며 퀘이커교도들을 거느리고 시를 건설하게 된 것이 지금의 미국 필라델피아주 펜실베니아다. 우리에게도 비교적 친숙한 미국의 대표적인 오트밀 회사인 The Quaker Oats Company의 로고가 윌리엄 펜을 이미지화한 것이라 한다.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화가인 힉스 역시 퀘이커교도로 평화로운 왕국을 주제로 한 이 같은 그림을 총 62점 그렸다. 작품에 등장하는 동물들과 아이들의 조화로운 모습은 그가 이사야서에 입각해 구현한 이미지로 그리스도에 순종하며 소박하게 살아가는 퀘이커교도의 이상적인 삶의 모습을 은유한 것이라고 한다. 힉스의 작품들은 브루클린 미술관뿐만 아니라 워싱턴 네셔날 갤러리, 필라델피아의 펜실바니아 미술관 그리고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등 대형 미술관에 여럿 소장되고 있으며 미국의 제37대 대통령 리처드 닉슨(Richard Milhous Nixon, 1913 ~1994)도 퀘이커 교도였다고 한다.


Edward Hicks, The Peaceable Kingdom, 1826, Philadelphia Museum of Art
Edward Hicks, Peaceable Kingdom, 1830–32,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Edward Hicks, Peaceable Kingdom,1834,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 C

 

이사야서 11장 6-8절: 그때에는, 이리가 어린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새끼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풀을 뜯고, 어린아이가 그것들을 이끌고 다닌다. 암소와 곰이 서로 벗이 되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눕고,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는다.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 곁에서 장난하고, 젖 뗀 아이가 살무사의 굴에 손을 넣는다.

이사야서 65장 25절: 이리와 어린양이 함께 풀을 먹으며,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으며, 뱀이 흙을 먹이로 삼을 것이다. 나의 거룩한 산에서는 서로 해치거나 상하게 하는 일이 전혀 없을 것이다.



‘나의 거룩한 산에서는 서로 해치거나 상하게 하는 일이 전혀 없을 것이다’라는 이사야서 65장 25절의 말씀이 구현된 힉스의 그림처럼 평화로운 세상이 더욱더 간절해지는 요즘이다.
 

Francis Guy (American, 1760-1820), Winter Scene in Brooklyn, ca. 1819-1820. Brooklyn Museum

이 글을 쓰는 1월의 어느 날 뉴욕은 드디어 눈이 쌓일 만큼 왔다. 지난 2년 동안 뉴욕시에는 눈이 쌓인 적이 없던 차라 비록 다른 주의 폭설로 인한 피해 소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내심 오는 눈이 반가웠다. 그리고 글을 마무리할 완벽한 작품이 떠올랐다. 눈이 소복이 쌓인 브루클린의 한 마을(지금의 덤보, Dumbo)을 그린 미국화가 프란시스 가이(Francis Guy,1760-1820)의 <브루클린의 겨울풍경 Winter Scene in Brooklyn>(1819-20)이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 역시 5층 미국미술관에 전시 중이다. 프란시스 가이는 미국 식민시대의 화가로 영국 태생이다. 그가 35살 되던 해인 1795년 런던에서 미국 볼티모어로 이주하였고 독학을 통해 지역 풍경화가로 활동하다 1817년 브루클린으로 오게 되었다. 브루클린의 풍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그의 그림들은 당시 대부분의 풍경화가들이 미국풍경을 이상적으로 묘사한 것과 차이점을 보여 19세기 미국 풍경화의 초기 작품으로 구분 지어 분류된다.  

 

멀리서 이 작품을 보면 참 평화로워 보인다. 힉스가 꿈꾸던 평화로운 마을처럼 말이다. 그리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그림 속에는 놀랍도록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서로 다른 일들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닭들에 모이를 주는 사람, 대화를 나누는 사람, 양수기에서 물을 펌프질 하는 사람, 삽질을 하거나 장작을 패는 사람 등 다양하다. 그리고 이들의 반 이상이 흑인인 점으로 미루어 200년 전 브루클린 덤보의 인구밀도 또한 짐작해 볼 수 있다. 정말 미국적인 풍경화가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며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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