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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udia Park Jan 14. 2024

모건 도서관 & 미술관

중세의 심장, 성십자가

미국이 독립을 선언한 1776년을 기점으로 본다면 미국의 역사는 고작 300년 남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그리고 특히 뉴욕은 20세기 이후 세계 정치, 경제 그리고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고 비교적 젊은 나라라고 할 수 있는 이 나라의 미술은 여전히 진화하고 있다. 세계 미술인들은 뉴욕 근현대 미술의 성지인 모마( Museum of Modern Art)의 전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첼시 갤러리에서의 전시경력은 여전히 세계 미술시장으로의 등용문이 된다.


하지만 나는 사실 근현대미술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고리타분하다고 해도 할 수 없지만 역사로 그림을 읽어나가는 전통적인 미술사 방법론을 무척 좋아하는 나로서는 작가의 관점이 작품 해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현대미술은 조금 불편하다. 작품이 너무 개인적으로 해석되기 때문인 것 같다. 적어도 나의 관점에서는 말이다. 그래서 중세미술이 좋았다. 역사 플러스 성서에 입각하여 작품의 의미를 해석하고 숨은 의미를 발굴해 나가는 과정은 나에게 희열을 주곤 했다. 라틴어가 쓰인 벽화를 읽으려 라틴어 사전앱을 돌려 한 문장 한 문장을 번역해 나가던 그 느린 과정에 행복해하기도 했다. 그래서 중세미술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나 클로이스터(메트의 중세미술 갤러리) 그리고 이곳 모건 도서관&미술관(Morgan Library and Museum)에 오는 것을 좋아한다. 이곳에 오면 오래된 역사의 쾌쾌한 냄새를 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좌) 모건 도서관 & 미술관 입구 (우) 모건 도서관 모형


모건은 메트의 중세미술 갤러리와는 조금 성격이 다르다. 도서관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필사본(Manuscripts)을 주요 컬렉션으로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1000년의 중세시대를 세분화해 보면 비잔티움(Byzantium, 콘스탄티노플, 지금의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5,6세기부터 12세기까지 번영하였던 비잔틴 미술, 중세 유럽 전역을 중심으로 11, 12세기까지 유행한 로마네스크 미술, 그리고 12세기 중엽부터 14세기에 이르는 고딕미술로 나누어진다. 각기 특징이 다르지만 일단 중세 하면 공통적으로 성당 건축물과 필사본이 떠오른다. 필사본은 손으로 글을 써서 만든 서적으로 인쇄술 발명 이전의 출판 형태라 보면 된다. 중세시대에는 특히나 이런 필사본이 성경이나 기도서의 용도로 제작되었고 본문의 아름다운 문체 이외에도 장식 삽화나 표지의 장정은 회화나 공예작품으로 독립되어 취급되기도 한다. 이런 필사본을 다량 보유하고 있는 미술관이 모건 미술관이다.


필사본

우리에게 체이스 은행(JPMorgan Chase Bank)으로 잘 알려진 모건 가문의 존 피어폰트 모건(John Pierpont Morgan ,1837 – 1913)은 1890년대부터 희귀 도서와 각종 필사본(중세-르네상스 문학, 역사, 음악 필사본), 프린트, 드로잉, 조각 그리고 회화작품등을 수집했고 그의 개인 컬렉션을 수장하고자 1906년 모건 라이브러리(The Morgan Library, formerly the Pierpont Morgan Library)가 설립되었다. 그리고 1924년부터는 대중에게 개방되어 현재의 모습에 이르게 되었다. 이 공간은 그리 크지 않지만 부호의 서재를 엿보는 쾌감을 준다. 화려하게 장식된 모건의 개인 서재공간과 수많은 고서들로 가득 찬 라이브러리, 그리고 성십자가(True Cross) 조각을 모시고 있는 유물함인 스타벨롯 삼단화(Stavelot Triptych)까지 비록 규모는 작지만 꽤 심도 있는 관람을 할 수 있다.


모건의 서재

붉은색의 카펫과 벽지가 휘향 찬란한 모건의 서재는 들어서는 순간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고민이 된다. 고풍스러운 가구와 고서들이 가득한 책장, 그리고 각 코너와 벽을 장식하고 있는 그림과 조각상들까지.. 모건의 서재는 흔한 말로 럭셔리 그 자체다. 일반적인 전시공간과는 달리 개인의 서재를 구경하는 느낌이라 약간은 모델하우스에 온 듯한 느낌도 들어 발길을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망설여진다. 일단 벽난로 위로 이 방의 주인인 모건의 초상화가 가장 눈에 띈다. 영국 화가인 프랭크 홀(frank Holl, 1845-1888)이 모건이 52세가 되던 1888년도에 제작한 작품이다. 이 초상화는 모건이 특히 좋아하여 사진으로 제작해서 그의 지인들에게 나누어 주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주사비(딸기코, Rhinophyma: 코에 염증이 생겨 붉어지는 피부질환)때문에 붉은 그의 코를 화가가 덜 두드러지게 표현하여서라고 한다. 아무리 부호라도 콤플렉스 앞에는 한없이 작아지는 인간임은 같은가 보다.

Frank Holl, Portrait of Pierpont Morgan, 1888, oil on canvas, 1248mm x 997mm
모건의 서재

다음으로 눈에 띄는 작품은 르네상스 베네치아 화파 화가인 지오반니 바티스타 치마 다 코넬리아노(Giovanni Battista Cima da Conegliano, 1459-1517/1518)의 <성모와 아기 예수, 성 캐서린과 세례자 요한>이었다. 베네치아파 특유의 화려하지만 따뜻한 색감 그리고 서정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치마는 시골에서 온 혹은 소박한 벨리니(Giovanni Bellini, 베네치아파의 창시자)라고 불릴 정도로 벨리니의 화풍과 유사한 화풍을 구상했으며 성모자 도상이나 제단화를 많이 제작했다. 이 작품 역시 중앙에는 성모자상, 왼쪽으로는 세례자 요한이 그리고 오른쪽으로는 캐서린 성녀가 그려졌다. 아기 예수는 세례자 요한의 십자가를 가지고 놀고 있는 모습이며 성모는 캐서린 성녀에게 금으로 된 반지를 전달해 주고 있는데 이는 성녀와 그리스도의 영적인 결혼을 상징한다고 한다. 캐서린 성녀는 그녀가 18살 정도 되던 해인 305년 순교하여 성인의 반열에 올랐는데 여러 회유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라 주장하며 그리스도교를 배반하지 않았다고 한다.

Giovanni Battista Cima da Conegliano, Virgin and Child with SS. Catherine and John Baptist


(좌 Kneeling Female Donor with St. Anne (우) Kneeling Male Donor with St. William

치마의 작품 양 옆으로는 15세기 플랑드르 회화의 대가인 한스 멤링(Hans Memling, 1430-1494)의 그림 두 점이 걸려있다. 이 두 작품은 지역수도회의 원장이었던 얀 크라베(Jan Crabbe)가 주문한 삼단 제단화의 양 날개에 그려졌던 그림들로 후원자였던 크라베 수도원장의 가족들이 성인 성녀와 함께 그려졌다. 왼쪽 작품에는 무릎을 꿇고 있는 그의 어머니(Anna Willemzoon)와 앤 성녀(St. Anne) 그리고 오른쪽 작품에는 역시 무릎을 꿇은 모습의 그의 남동생(Willem de Winter)과 윌리엄 성인(St. William of Maleval, 12세기 프랑스의 성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제단화의 중앙에는 예수 수난상(Crucifixion)이 그려졌었는데 현제는 이탈리아 비첸차(Vicenza)에 위치한 시립미술관(Museo Civico)에 보관되고 있고 양 날개의 두 점은 이곳 모건 미술관에 전시 중이다. 한스 멤링은 초상화에 풍경을 그려 넣은 최초의 플랑드르 화가로 유명한데 그 명성에 걸맞게 이 두 작품 뒤로 펼쳐진 풍경은 화려하면서도 사실적이고 정교하게 표현되어 보는 이를 매료시킨다.



라이브러리 벽화와 천장화 일부

모건의 서재를 둘러본 후 나의 발걸음은 그의 라이브러리로 향했다. 영화 해리포터에 등장하는 호그와트의 도서관이 떠오르는 이곳은 사방이 고서들로 가득하며 천장 또한 아름다운 벽화로 장식되어 신비로우면서도 고전적인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이곳에서 인물사진 찍으면 배경으로는 최고겠는데?’ 하는 생각이 채 끝나기도 전에 몇몇 관람객이 온갖 포즈를 취하며 책장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대는 모습이 보였다. 마침 이분들이 사진을 찍던 스팟이 내가 모건 미술관에 온 큰 이유 중에 하나인 스타벨롯 삼단화(Stavelot Triptych)가 전시되고 있던 곳이라 한참을 기다려서 삼단화의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라이브러리 공간과 스타베롯 삼단화


Stavelot Triptych, 1156-58

이 작품은 세 폭으로 된 제단화로 12세기 중반 지금의 벨기에에 위치한 베네딕트 수도회의 수도원장(Wibald, 1098-1158)에 의해서 제작의뢰되었다. 예수님이 실제로 못 박히신 십자가인 성십자가(True Cross)의 조각을 제단화 중앙 유물함에 모시고 있다. 삼단화의 중앙에 보이는 두 개의 또 다른 작은 삼단화 중 조금 더 큰 아래쪽의 삼단화에 성십자가의 파편으로 만든 십자가가 모셔져 있다. 모두 금과 에나멜로 제작되었으며 양쪽 날개에 있는 6개의 메달리온(Medallion)은 성십자가의 전설을 이야기한다.


스타벨롯 삼단화 양날개의 메달리온

왼쪽 가장 아래의 메달리온부터 이야기가 전개된다. 로마의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Constantinus, 274-337:  로마의 국교를 그리스도교로 공인함)가 밀비아 다리에서 막센티우스(Marcus Aurelius Valerius Maxentius, 288-312: 306-312년까지의 로마의 황제, 밀비우스 전투에서 전사함)와 전투를 벌이기 전날 밤 꿈을 꾸게 된다. 꿈에 천사가 나타나 성십자가를 가리키며 그에게 이 표증이 있는 곳 아래에서 승리하게 되리라고 예언한다. 두 번째 메달리온에서는 천사가 예언한 대로 십자가 아래에서 승리하는 콘스탄티누스의 모습이 보이고, 마지막 가장 위쪽의 메달리온은 콘스탄티누스가 죽기 전 세례를 받는 모습이다.


오른쪽 세 개의 메달리온은 성녀 헬레나(Saint Helena,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가 예루살렘에서 성십자가를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역시 아래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헬레나 성녀가 유대인들에게 성십자가의 위치를 묻고 있는 장면이다. 장소를 알게 된 성녀는 하인들을 시켜 골고다 언덕에서 성십자가를 파낸다. 이때 예수님과 함께 처형된 두 강도의 십자가도 함께 발견된다. 이 세 개의 십자가가 병자를 치료하는 힘이 있는지를 시험하는 성녀의 모습이 이갸기의 마지막이다.


1층에 위치한 미술관 레스토랑

뉴욕에서 무려 성십자가를 영접할 수 있다니 의미가 남다르게 느껴졌다. 모건 미술관은 이 엄청난 유물 외에도 렘브란트의 드로잉, 중세부터 르네상스 시대를 아우르는 아름다운 기도서들 등 곳곳에 진귀한 작품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어 값진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약간의 아쉬움이라면 전시된 작품들의 깊이와 양에 비해서 미술관 공간 자체는 조금 협소한 편이라 다음 방문 때는 관람객이 몰리지 않는 주중 오전시간대에 와야겠다는 생각이 든 정도다. 다음번에는 꼭 한적할 때 와서 1층의 카페에서 브런치를 할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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