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형미술관을 좋아한다. 큰 미술관에 가면 비록 낯선 다른 이들과 같은 전시공간에 있을지언정 혼자의 시간과 여유로운 공간적 자유를 비교적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메트로폴리탄이나 이곳 브루클린 미술관 오는 것을 즐겨한다. 특히 3층의 보자르 코트(Beaux-Arts Court)에서는 공간적 여유로움이 가미된 혼자만의 시간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어 복잡한 도시로부터의 탈출이 필요한 날이면 찾곤 한다.
보자르 코트에 전시된 작품들
‘보자르’는 프랑스 파리의 예술학교인 에콜 데 보자르(École des Beaux-Arts)를 중심으로 19세기와 20세기 초반에 발전한 건축 및 디자인 양식을 일컫는 용어로 그리스. 로마 신전을 떠올리게 하는 고전적 건축스타일과 정교한 장식을 그 특징으로 한다. 프랑스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고 덕분에 뉴욕에서도 보자르 스타일로 지어진 구조물이나 건축물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브루클린 미술관의 보자르 코트 역시 이런 건축구조물 중 하나로 비례. 대칭. 정교. 균형. 웅장 정도의 용어로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좌) 비어슈타트의 <로키산의 폭풍> (우) 처치의 <열대풍경> 브루클린 미술관
웅장한 느낌의 보자르 코트에서 오늘의 미술관 방문을 시작한 김에 웅장한 아름다움으로 입을 떡 벌어지게 하는 풍경화 한 점을 소개해보려 한다. 독일계 미국인 화가 앨버트 비어슈타트(Albert Bierstadt, American, born Germany 1830-1902)의 <로키산의 폭풍 A Strom in the Rocky Mountains, Mt. Rosalie> (1866)이라는 그림이다. 가로가 무려 3.5미터이고 세로도 2미터가 넘는 작품의 엄청난 스케일은 관람객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마치 영화 속 실제 장면을 보는 듯한 풍경묘사는 이들의 시선을 이 그림에 한참 머물게 한다.
Albert Bierstadt, A Storm in the Rocky Mountains, Mt. Rosalie, 1866. Brooklyn Museum
비어슈타트는 19세기 중반 미국풍경화 열풍을 몰고 온 허드슨 화파(Hudson River School)의 2세대 작가로 로키 산맥이나 요세미티 계곡과 같은 미국 서부의 풍경을 거대한 화폭에 낭만주의적 화풍으로 담아내었다. <로키산의 폭풍>은 산맥 자락에 드리운 은은하면서도 고요한 빛과 그 주변으로 퍼지는 투명한 대기, 붓의 터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거울과 같은 세밀한 묘사등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이런 화법을 루미니즘(luminism)이라 하는데 비어슈타르를 비롯해서 프레더릭 에드윈 처치(Frederic Edwin Church, American, 1826-1900), 샌포드 로빈슨 기퍼드 (Sanford Robinson Gifford, 1823–1880)와 같은 허드슨 화파 2세대 작가들에게서 주로 보이는 특징이다.
Frederic Edwin Church <열대풍경 Tropical Scenery>, 1873. Brooklyn Museum
Sanford Robinson Gifford, A Gorge in the Mountains (Kauterskill Clove), 1862. The MET
샌포드 로빈슨 기퍼드 (Sanford Robinson Gifford, 1823–1880)의 <협곡(커터스킬 골짜기) A Gorge in the Mountains (Kauterskill Clove)>은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그림이다. 이 작품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처음 보았을 때 정말 충격적이었다. 인적이라고는 없는 완벽한 자연(wilderness) 그대로를 캔버스에 옮겨놓은 듯 한 작가의 세밀한 묘사 덕분에 협곡의 중심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그림 왼쪽 아래에 바위산을 오르는 사냥꾼과 그를 따르는 강아지 한 마리가 보인다. 아주 자세히 봐야만 한다.
토마스 콜의 <피크닉 파티> 브루클린미술관
비어슈타트, 처치 그리고 기퍼드를 소개하면서 허드슨 화파의 창시자인 토마스 콜(Thomas Cole, 1801-1848)을 빼놓을 수 없으니 이쯤에서 콜의 풍경화 이야기를 조금 해보겠다. 더 거슬러 올라갈 수 있지만 일단 17세기 이탈리아정도에서 시작해 보겠다.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클로드 로레인(Claude Lorrain, 1604/05-1682)이라는 프랑스 태생 화가의 풍경화가 인기를 끌고 있었다. 로레인은 일생 대부분을 이탈리아에서 보내면서 이탈리아 풍경에 고대문학을 접목시키는 고전주의적 풍경화를 제작하여 동시대인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그의 풍경화는 이후 18세기 영국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이를 계기로 풍경화라는 장르가 영국미술에 안착하게 된다. 그리고 약간의 과도기를 거친 이후 19세기에 이르러 윌리엄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1775 – 1851)나 존 컨스터블(John Constable, 1776–1837)과 같은 굴지의 풍경화가들이 영국에서도탄생하게 되었다.
Claude Lorrain, The Judgment of Paris, 1645/1646. The National Gallery, Washington D. C.
(좌) 터너 <카르타고를 건설하는 디도> 1815. 런던네셔날갤러리 (우) 존 컨스터블 <주교의 경내에서 바라본 솔즈베리 대성당> 1825. The MET
영국 태생인 토마스 콜은 당연히 이들의영향을 받았을 것이며 작가 개인적으로는 특히 로레인의 풍경화를 좋아했다고 한다. 뉴욕으로 거처를 옮긴 이후 허드슨 강 계곡등을그리기 시작하면서 주목을 끌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허드슨 화파의 시작이었다. 콜의 풍경화는 로레인, 터너 등의 계보를 이어 낭만주의적이면서 고전적이다. 덕분에 그의 작품 중 많은 풍경화는 파괴되는 자연에 대한 회환 어린 시선을 지님과 동시에 이상향을 꿈꾼다. 브루클린 미술관에 전시 중인 <피크닉 파티 A Pic-Nic Party> (1846)와 같이 말이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피크닉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자연과 문명의 조화로운 공존을 꿈꾸지만 이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아쉬움을 오른쪽 쓰러진 나무와 그 아래 놓인 도끼로 이야기하고 있다.
Thomas Cole, A Pic-Nic Party, 1846, Oil on canvas, 121.6 × 184.2 cm. Brooklyn Museum
Cole, A View of the Two Lakes and Mountain House, Catskill Mountains, Morning, 1844. Brooklyn Museum
이렇게 토마스 콜로 시작된 미국풍경화는 앞서 소개한 2세대 작가들로 이어지면서 19세기 미국미술을 대표하는 장르이자 미국미술이라 명확하게 구분 지을 수 있는 최초의 미술로 미국미술의 역사에 남게 되었다. 이 전의 미국미술은 식민지적 성격을 지니고 있어서 본국(대표적으로 영국)의 미술이라고 할지 아니면 미국의 미술이라고 할지의 그 경계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