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겐하임 미술관은 맨해튼 어퍼 이스트의 랜드마크 중 하나로 나선형의 건축물로 잘 알려져 있다. 20세기 저명 미국인 건축가였던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 1867-1959)가 설계한 건축물로 건축 당시에도 그 외관 덕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한다. 총 6개의 층이지만 6개의 층이 구분되어 있다기보다는 나선형의 굴곡을 따라 전층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구조이다. 1층 로비를 제외하고 2층부터 6층까지의 연결된 벽면에는 보통 근, 현대 작가들의 특별전이 시즌별로 열리고, 2층 안쪽에서는 탄하우저 컬렉션이 상설전시 중이다. 탄하우저 컬렉션은 컬렉터이자 딜러였던 저스틴 K. 탄하우저(Justin K. Thannhauser, 1892–1976)가 구겐하임 미술관에 기증한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 모더니즘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드가(Edgar Degas), 마네(Édouard Manet), 반고흐(Vincent van Gogh), 그리고 피카소(Pablo Picasso) 등과 같은 인상파와 후기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꽤 자주 이곳 구겐하임을 방문했지만 항상 특별전을 구경하느라 탄하우저의 보석 같은 작품들을 제대로 살펴보지 못한 것 같아서 이번 구겐하임 글에서는 탄하우저 컬렉션의 하이라이트 작품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소개할 작가는 인상주의의 창시자로도 여겨지는 프랑스 화가 카미유 피사로이다. 피사로는 서인도제도의 세인트토머스섬 출생으로 에콜 데 보자르와 스위스 아카데미에서 카미유 코로(Jean-Baptiste-Camille Corot), 귀스타브 쿠르베, 샤를 프랑수아 도비니 등의 스승밑에서 미술 교육을 받았다. 코로의 풍경화에 감명을 받아 풍경화에 전념하게 되었고 인상파그룹전에 전원풍경을 가지고 매회 참여하기도 했다.
스승이었던 코로는 니콜라스 푸생이나 클로드 로랭으로 대표되는 17세기 신고전주의 풍경화를 답습했다. 신고전주의 풍경화는 ‘역사적’ 풍경화라고도 불리는데 이전까지 역사화의 범주에서 다루던 고전문학적 소재를 풍경화라는 장르에 도입하여 풍경화를 역사화의 수준으로 견인했으며 서사적이면서도 목가적인 특징을 지닌다. 선대작가들과 코로의 풍경화가 가지는 차이점은 코로의 작품에서는 더 이상 문학, 종교, 역사의 서사적 내러티브가 없다는 것이다. 오로지 자연을 마주한 화가의 감정을 전달하는데 집중했고, 덕분에 시간과 계절에 따른 빛의 효과를 중심으로 한 사실적 묘사가 두드러지게 된다. 또한 화려한 색채보다는 전반적으로 은회색의 팔레트를 이용하여 몽환적이면서도 서정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Jean-Baptiste-Camille Corot, Souvenir de Mortefontaine , 1864. Louvre, Paris 출처:위키피디아
코로는 바르비종파(the Barbizon school)의 일원이기도 했는데 그의 풍경화 속 풍기는 다소 시적이며 서정적인 분위기는 그를 다른 바르비종파의 일원들과 구분 짓는다. 바르비종파는 19세기 중엽의 프랑스 파리 근교의 마을 바르비종(Barbizon)에서 작업한 풍경화가 그룹을 일컫는 용어로 코로를 비롯하여 밀레(Jean-François Millet,1814-75), 루소(Henri Julien Félix Rousseau, 1844 –1910), 도비니(Charles-François Daubigny, 1817 –1878), 뒤프레(Jules Dupré, 1811–1889)등이 있다.
컨스터블, The Hay Wain, 1821. The National Gallery, London.
바르비종파의 출발은 아이러니하게도 영국풍경화가 존 컨스터블(John Constable, 1776 – 1837)의 작품이 1824년 파리 살롱에 전시되면서부터였다. 컨스터블의 풍경화는 당시 젊은 프랑스 화가들에게 귀감이 되었고 서서히 이들은 아카데믹한 형식주의와 낭만주의 화풍에서 탈피하여 사실적으로 자연의 모습을 그리기 시작했다. 코로 역시 1829년 바르비종을 방문하여 풍경화를 제작하였고 <퐁텐블로 숲 Forest of Fontainebleau>(1834)이라는 작품을 남겼다. 이 작품은 현재 워싱턴 네셔날 갤러리에 소장 중이다.
코로, Forest of Fontainebleau, 1834.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 C.
유럽미술에서 풍경화의 역사를 살펴보면 재미있는 점이 있는데 바로 이 바르비종파가 영국풍경화가 컨스터블에서 출발했다는 것이다. 영국풍경화는 풍경화라는 장르자체만 두고 보면 클로드 로레인으로 대표되는 17세기 이탈리아 풍경화에 그 출발점을 둔다. 로레인은 프랑스 출신이기는 하지만 이탈리아 베네치아 화풍을 이어받아 고전적이면서도 목가적인 이탈리아 풍경화를 계승한다고 볼 수 있다. 반면 동시대 프랑스 화가인 니콜라스 푸생은 낭만주의적 풍경화를 주로 제작했다. 이 두 갈래의 비슷하지만 다른 풍경화법은 복합적으로 영국풍경화의 도래에 영향을 주었고 이를 기반으로 존 컨스터블이나 윌리엄 터너와 같은 19세기 영국풍경화가들이 종래에 탄생했다고 해석해 볼 수 있다. 그런데 다시금 컨스터블의 풍경화가 프랑스 바르비종파를 유래하게끔 했다는 점에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서양미술 속 풍경화의 발전상이 흥미롭게 느껴지는 것이다.
뒤프레 The Old Oak, c. 1870.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 C.
다음 주자인 피사로도 그의 스승인 코로와 마찬가지로 크게는 프랑스의 풍경화 전통을 이어간다. 하지만 피사로 역시 아카데믹한 신고전주의적 풍경화가 아닌 빛의 효과를 통한 풍경의 사실적 묘사에 집중하였고 서사가 없는 있는 그대로의 전원적인 풍경화를 그렸다. 심지어 그는 코로의 풍경화에 남아있던 서정성 마저 걷어내고 사실적 풍경묘사에만 집중했는데 이는 그의 화법이 바르비종파나 쿠르베(Gustave Courbet)의 리얼리즘 (Realism: 사실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구겐하임의 <퐁투아즈의 외딴집 The Hermitage at Pontoise>(1867)이 바로 그 예가 될 수 있다.
쿠르베, The Stone Breakers, 1849. Gemäldegalerie Alte Meister, Dresden 출처: 위키피디아
뒤프레, Landscape with Cattle at Limousin, 1837.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피사로 <퐁투아즈의 외딴집> (1867) 구겐하임 미술관, 탄하우져 컬렉션
피사로는 이후 사실주의 화법에서 탈피하여 점진적으로 인상주의 화파로서의 면모를 드러낸다. 짧은 붓자국이 특징적인 인상파 화가들은 빛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순간의 '인상'을 포착하고, 빛에 따른 색의 아주 작은 변화까지 고려한 살아 있는 그림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피사로는 1860년대 후반부터 신진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조언을 주면서 이들 사이에서 중요한 인물이 되었고 세잔과 고갱이 스승이라 부를 정도로 큰 영향을 미쳤기에 일각에서는 그를 인상주의의 창시자로 여기기도 한다.
피사로, The Bather, 1895.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 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