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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udia Park Feb 03. 2024

실내가족화

아서 데이비스 1편

실내가족화(indoor conversation piece)

아서 데이비스(Arthur Devis, 1712–1787)는 새로운 변화의 물결이 사회 전반을 순회하는 18세기 영국, 런던에서 초상화가로 본격적인 커리어를 시작하면서 주로 영국 중산층을 그의 가족화(conversation piece)에 담았다. 가족화는 18세기 영국에서 가장 발전한 미술장르로 초상화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전통적인 초상화와는 달리 비교적 자연스러우면서도 격식적이지 않은 초상화이다. 초상의 주인공은 주로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들과 함께 일상 속 여가를 즐기는 모습으로 그려지기에 가족초상 혹은 가족화라 번역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데이비스의 <로저 헤스케스 가족화> (1742-43)와 <실내공간 속 아동초상> (1743). 해밀턴의 <토마스 웬트워스 가족화> (1732)

가족화는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는 응접실과 같은 실내를 배경으로 인물들이 그려진 실내가족화(indoor conversation piece)이며 두 번째는 인물들이 그들의 저택이나 사유지등의 풍경을 배경으로 그려진 실외가족화(outdoor conversation piece)이다. 먼저 데이비스의 초기작인 <로저 헤스케스 가족화 Roger Hesketh and his Family> (1742–43)나 <실내공간 속 아동초상 Figure Children in an Interior> (1743)과 같은 실내가족화를 살펴보면 이 그림들이 영국 가족화의 1세대 작가로 분류되는 가웬 해밀턴(Gawen Hamilton, 1698-1737)의 작품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물들 뒤로 겹겹이 그려진 건축요소들로 인한 공간적 입체감이라든지 캔버스 한켠 드리운 화려한 커튼으로 연출된 극적인 효과 같은 요소들이 바로 그런 것들인데 이는 바로크적 양식을 따른 특징들로 데이비스가 전시대의 유행에 충실하여 이 작품들을 제작한 것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데이비스 <스트레인샴 목사 부부 초상> (1743-44).Harris Museum & Art Gallery, Preston
데이비스 <윌리엄 에서턴 부부 초상> (1742-44). Walker Art Gallery, Liverpool

하지만 이는 당시 런던에서 소위 말해 한물 간 스타일로 여겨졌고 시대의 트렌드에 민감했던 데이비스는 그의 다음 작품인 <스트레인샴 목사 부부 초상 The Reverend Streynsham Master and his Wife, of Croston, Lancashire> (1743–44)이나 <윌리엄  에서턴  부부 초상 William Atherton and his Wife, Lucy, of Preston, Lancashire> (1742–44)에서 이런 구시대적 요소들을 최소화하고 좀 더 친밀하게 인물과 배경을 그리기 시작했다. 전작들에서 보인 복잡한 건축 요소는 캔버스에 입체감을 주기는 했지만 인물들이 열린 공간을 배경으로 배치되어 시선이 뒤쪽으로 분산되는 효과가 있었다. 이에 데이비스는 복도나 계단등과 같은 건축 요소를 캔버스 한쪽 끝으로 옮기거나 아예 없애면서 벽, 기둥등과 같은 평면적 구조를 통해 만들어진 닫힌 공간에 인물들을 배치했다. 덕분에 인물 바로 옆이나 뒤쪽으로 여벽이 생기게 되고 이곳에  당시 유행했던 이탈리아풍의 풍경화 액자가 걸리기 시작했다.


 데이비스의 실내가족화에서 한 가지 인상적인 점은 주로 아이들 없이 부부 두 사람만을 그린 작품이 많다는 것이다.  이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한데 첫째는 의뢰인들이 주로 중산층이었음을 고려하여 그들이 가용할 수 있는 초상화 제작 비용이 다소 제한적이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그려지는 인물이나 오브제의 개수당 가격이 측정되었기에 왕족이나 귀족에 비해 경제적 능력이 떨어지는 중산층이 부부 두 사람만을 그리기를  원했을 가능성이 있다.

Giorgione, The Holy Family, probably c. 1500, The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또 다른 해석은 가족단위와 대인관계에 대한 당시의 새로운 견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유럽 회화에서 가족 그림은 대부분 성가족(Holy Family)의 전통을 따라 삼각형 구도속에 가족 구성원 모두를 함께 배치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반면 데이비스의  실내가족화에서는 인물들이나 오브제들이 수평적으로 배치된 것을 볼 수 있다. 이상하리만큼 산발적으로 위치된 오브제와 인물들은 같은 공간에 있지만 각각이 분리되어 독립적인 개체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다시 말해 18세기 영국 초상화 속 가족의 개념은 전통적인 의미의 하나라기보다는 독립된 개인과 개인이 조합된 친밀한 개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 해석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흡사 인물의 크기와 대등한 풍경화 액자 역시 공간적으로 독립성을 확보하면서 초상 속 부부의 사회적 지위와 문화에 대한 식견을 대변하는 시각장치로 자리했다.

(좌) <리차드 불 부부 초상> (1747) (우) <로버트 대시우드 부부 초상> (1750)

데이비스는 당대를 주름잡으며 굵직한 변화들을 이끌어 낸 유명화가는 아니었지만 초상화라는 제한된 장르내에서 끊임없는 도전을 하며 당시의 사회상을 담아내는 데 성공한 작가이다. 물론 얼핏 보면 데이비스의 가족화는 특이할 것 없이 다 비슷비슷하다. 인물의 성격이나 취미 혹은 부나 지위를 드러내기 위해 삽입되었던 전통초상화 속의 지극히 개인적인 오브제들과는 달리 데이비스 초상화들 속 오브제는 대부분 일반적인 소품에 지나지 않는다. 인물의 묘사방식도 비슷하여 누가 누구인지 헷갈리기까지 한다. 런던의 스튜디오 안에서 많은 양의 초상화를 제작했던 작가의 환경을 미루어보면 초상화 제작의 편의성과 비용 절감등을 위한 현실적인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다시금 18세기 시대상에 비추어 생각해 보면 그들이 원한 것은 개인의 초상이라기보다는 당시사회가 원하는 관념적인 미덕(abstract virtues)의 프레임 속에 그려진 이상적인 영국인의 초상이었기에 다소 비슷한 설정의 이와 같은 초상화는 18세기 영국인들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Polite Society by Arthur Devis, 1712–1787: Portraits of the English Country Gentleman and His Family (Preston: Harris Museum and Art Gallery, 1983)

Ronald Paulson, Emblem and Expression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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