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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udia Park Feb 24. 2024

실외가족화

아서 데이비스 2편


18세기 영국미술의 대표장르인 가족화(conversation piece)는 집안과 같은 실내에서 집주인 내외의 초상을 그리거나 혹은 집 밖의 풍경이나 사유지를 배경으로 그려지기도 했다. 이런 초상화들을 실외가족화(outdoor conversation piece)라 하는데 아서 데이비스 역시 다수의 실외가족화를 남겼다. 데이비스는 스승이었던 피터 틸레만스(Peter Tillemans, 1684-1734)의 수하에서 풍경화가로써의 수련을 받았지만 당시 런던에서 화가들의 성공이 보장된 장르는 초상화였기에 초상화가로 데뷔를 하게 된다. 가족화는 초상화의 성격은 고 있지만 전통적인 초상화보다는 인물의 얼굴이나 신체의 해부학적 묘사에 대한 부담이 비교적 적었을지라 초상화가로서의 수련이 부족했던 데이비스에게는 최적의 장르였다. 더불어 자신이 수련했던 풍경화적 요소들을 접목시켜 볼 수 있는 여지 또한 충분했다.

(좌) 틸레만스의 < Chirk Castle from the North> (1725). 출처: 위키피디아 (우) 데이비스의 <호튼 타워> (1735)

데이비스의 초기 실외가족화에서는 실제 지형적 특징을 살린 풍경묘사가 주로 인물의 배경이 되는데 이는 그의 스승인 피터 틸레만스의 영향으로 보인다. 데이비스의 초기 작품 중 하나인 <호튼 타워 Hoghton Tower from Duxon Hill, Lancashire>(1735)와 틸레만스의 그림을 비교해 보면 데이비스가 틸레만스의 지형풍경화법을 답습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두 작품 다 보는 이가 마치 그림 속 장소보다 높은 위치에서 내려다보는 것과 같은 시점을 구현하여 지형을 더욱 생생하고 명확하게 표현했다.

존 우턴 <Lady Mary Churchill at the Death of the Hare> (1748) Tate, London
제임스 세이모어 <A Kill at Ashdown Park> (1743) Tate, London

그의 스승이었던 틸레만스는 존 우턴 (John Wootton, 1682–1764)이나 제임스 세이모어(James Seymour, 1702-52)와 함께 영국 스포르팅화(sporting paintings)의 선구자로 개나 말등과 같은 동물들의 레이싱 장면을 주로 그렸으며 이런 스포르팅화의 소재들을 최초로 지형풍경화(topographical landscape)와 접목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데이비스 <로버트 그윌리 가족화> (1745-47) Yale Center for British Art
데이비스 <오크오버 저택에서의 단체초상> (1745-47) Yale Center for British Art

데이비스 역시 스승의 화법을 이어받아 그의 초기작품인 <오크오버 저택에서의 단체초상 Leak Okeover, Rev. John Allen and Captain Chester at Okeover Hall, Staffordshire> (1745–47)이나 <로버트 그윌리 가족화 Robert Gwillym of Atherton and His Family> (1745–47) 등에서 인물들을 그들의 저택이나 사유지를 배경으로 둔채 말이나 개와 같은 동물들과 함께 시간을 즐기는 모습을 그렸다. 이 작품들은 가족화의 형태를 고는 있지만 지형풍경화법과 같은 약간은 구시대적 배경묘사 때문에 당시의 유행과는 뒤쳐진 듯한 느낌이 강하다. 이 무렵 영국전반에는 벌써 클로드 로레인이나 살바도르 로사와 같은 고전주의적 이탈리아화가들의 풍경화가 유행중이였기 때문이다. 

데이비스 <조지경과 레이디 스트릭런드 초상> (1751) Ferens Art Gallery, City of Kingston upon Hull. Image Source: ArtUK
데이비스 <에드워드 고든 가족화> (1756) Leicester Museum and Art Galleries. Image source: ArtUK

이를 모를 리 없었던 데이비스는 곧  <조지경과 레이디 스트릭런드 초상 Sir George and Lady Strickland, of Boynton Hall, Bridlington, Yorkshire>(1751)이나 <에드워드 고든 가족화 Edward Gordon, His Sister Mrs Miles, and Her Husband in Their Garden at Bromley>(1756>와 같은 다음 작품에서 스승에게서 물려받은 지형풍경화적 요소를 완벽히 지우고 로레인풍의 풍경화법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이후 작품들에서 데이비스가 선보인 로레인풍의 풍경화법은 전작들에 비하면 엄청난 변화다. 전경에 인물과 나무 혹은 테라스 등의 고전적인 건축구조를 배치하고 중경에 강이나 하천 등의 물줄기를 그리고 후경에는 멀어져 보이는 언덕이나 산들로 구성하는 등의 로레인적  3단계 풍경화법을 완벽히 구현했다. 전후 작품만을 비교하고 본다면 같은 작가의 작품이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이다. 물론 이런 엄청난 기술변화가 하루아침에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틸레만스의 런던 스튜디오에서 데이비스가 작업한듯한  마르코 리치(Marco Ricci, 1676-1730), 피터르 반 브뢰멘(Pieter van Bloemen, 1657–1720) 그리고 조반니 파올로 파니니(Giovanni Paolo Panini , 1691–1765)와 같은 이탈리아 작가들의 풍경화 모작들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데이비스가 견습생 시절 이탈리아 풍경화법 역시 훈련했음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모작들은 실제로 이후 데이비스의 실내 가족화 속 항상 걸려있던 풍경화 액자 속의 그림으로 재사용되기도 했다.

데이비스 <스트레인샴 목사 부부 초상> (1743–44) Harris Museum & Art Gallery, Preston

데이비스는  <스트레인샴 목사 부부 초상 The Reverend Streynsham Master and his Wife, of Croston, Lancashire> (1743–44)을 제작할 당시 실제로 부부가 사는 크로스톤을 방문하여 작품에서 보이는 창문 밖 교회풍경을 그렸다고 한다. 데이비스가 주로 런던의 스튜디오 안에서 대부분의 초상화 제작을 했던 것에 미루어 본다면 이렇게 직접 풍경을 보고 스케치를 한 것은 작가의 이력에 있어서는 주목할만한 점이며 그가 풍경화 제작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데이비스 <듀엣>(1749) Victoria and Albert Museum, London

1749년 작인 <듀엣 The Duet> (1749) 역시 인물 뒤 창문 너머로 보이는 풍경 묘사가 그의 초기 실외가족화의 풍경화법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작품에서 보이는 베네치아식 창문 (Palladian window)은 양쪽에 겉창이 둘 달린 스타일로 당시 최신 유행이었고 이를 자세히 그려낸 것으로 미루어 이 작품 역시 작가가 직접 이곳을 방문해서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비록 실내가족화이기는 하지만 작품 속 오른쪽 벽면에 걸린 이탈리안 액자들 속 풍경을 마치 이어 그려놓은 듯한 창문너머의 실제 풍경은 데이비스가 로레인풍 기법을 완벽히 이해했으며  이를 그려낼 기술이 이 시점 이미 준비되었음을 말해준다.


데이비스는 이후에도 계속적으로 로레인풍으로 그린 자연배경에 영국의 얼굴들을 그려 넣었고 이런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 풍경화라는 소위 외래 미술장르가 마침내 영국화되는 효과를 가져다주었다(물론 데이비스를 비롯한 당시의 수많은 영국초상화가들의 노력을 통해서 말이다). 영국의 얼굴을 담은 데이비스의 초상화 속 자연의 모습은 더 이상 이탈리아를 상기시키지 않았고 타국의 미술로 치부되던  풍경화는 가족화라는 장르 안에서 서서히 영국의 것으로 재탄생했다. 18세기의 이런 과도기적 시도들은 한 세기 후인 19세기에 결실을 맺게 되어 윌리엄 터너나 존 컨스터블과 같은 영국풍경화의 거장들이 탄생하게 된다. 그리고 이들은 19세기 영국풍경화 (British landscape) 영국미술을 대표하는 장르로 뿌리내렸다. 마침내 영국만의 미술로 유럽미술에 명함을 내게 된 것이다.


참고문헌

Ellen D’Oench. “Arthur Devis (1712-1787): Master of the Georgian Conversation Piece” (PhD diss., Yale Univ., 1979)

Ellen D’Oench. The Conversation Piece: Arthur Devis & His Contemporaries (New Haven, CT: Yale Center for British Art, 1980)

Polite Society by Arthur Devis, 1712–1787: Portraits of the English Country Gentleman and His Family (Preston: Harris Museum and Art Gallery,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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