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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udia Park Mar 03. 2024

로렌스 던다스, 스코틀랜드 출신 야망가

<던다스 가족화>

18세기 중반에 들어 서면서부터 영국은 해상세력의 확장으로 인해 많은 식민지와 신민들을 단시간에 얻게 됩니다. 더불어 한 가지 고민이 시작되었는데요. 바로 국외의 광활한 식민영토와 신민들을 어떻게 관리, 유지해야 하는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7년 전쟁 (Seven Years' War, 1756–1763)의 여파로 바닥난 국고와 급작스런 식민제국의 팽창은 이즈음 영국인들로 하여금 스코틀랜드인들에 대한 인식을 달리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제각기 다른 국가의 국민이자 적이었다면 새롭게 탄생한 대영국(Great Britain)에서 스코틀랜드인들은 비교적 충성스러우면서도 유용한 노동력이었기에 그들과의 협력은 대영국의 제국주의 건설을 가속화했습니다.


요한 조파니 < Sir Lawrence Dundas with His Grandson> (1769–70) 출처: 위키아


이런 분위기를 기회로 본 스코틀랜드 출신 야망가들은 런던으로 내려왔고 부와 지위를 획득해 나갔습니다. 이 그림의 주인공인 로렌스 던다스(Sir Lawrence Dundas of Kerse, 1st Bt., 1712-1781) 역시 이들 중 한 명이었습니다. 던다스는 1745년 재커바이트 봉기와 7년 전쟁동안 군수물자를 보급하면서 막대한 경제적 이득과 지위를 얻은 대표적인 스코틀랜드 출신 인사였습니다. 요한 조파니(Johan Zoffany, 1733–1810)가 그린 <로렌스 던다스경과 그의 손자 Sir Lawrence Dundas with His Grandson> (1769–70)에서 던다스는 스코틀랜드인으로의 과거를 지운채 통합된 대영국의 상류층으로 분한 모습입니다.


다시 말해 이 작품은 당시 이상적인 런던 상류층의 이미지를 완벽히 캡처한 초상화로 던다스와 같은 외부 인사들이 런던 사교계에서 어떻게 보이고자 했는지 혹은 보여야만 했는지를 말해줍니다. 던다스는 재커바이트 봉기 이후인 1748년부터는 군수물자 보급에 관한 협정권을 따내지 못했고 이에 1751년부터 런던에 살면서 사교계에 진출하는 등 소위 인맥 쌓기에 집중했습니다. 덕분에 조지 로스(George Ross)와 같이 영향력 있는 군수중개상과 관계를 맺으며 새로운 계약건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고 그 결과 7년 전쟁 동안 하노버 왕가와 독일연합군 등에 군수물자를 공급하면서 엄청난 부를 쌓을 수 있었지요. 당시 런던 사교계에서 어떤 모습으로 보이고 누구와 인맥을 맺느냐는 개인적 교류를 넘어 경제적 기회와 직결되어 있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던다스는 1760년대 초 전쟁이 끝나자 군수물품 보급 사업을 그만두게 됩니다. 이 무렵 <던다스 가족화>의 배경이 되는 런던 알링턴가(Arlington Street)에 위치한 저택을 구입하면서 그의 부와 사회적 파워를 전시하는데 더욱 집중했고 이듬해인 1764년에는 그의 아들 토마스 던다스(Thomas Dundas, 1741–1820)가 로킹엄 후작의 조카인 샬롯 핏츠윌리엄(Lady Charlotte Fitzwilliam, 1746–1833)과 결혼함으로써 마침내 던다스 가문은  영국 귀족층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던다스의 초상화에 그의 아들이나 부인이 아닌 손자 로렌스와 그려졌다는 것인데요. 그의 혈통이지만 귀족의 피를 이어받은 어린 로렌스와 초상을 남기는 선택을 통해 던다스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귀족명문의 뿌리를 이어받은 그의 손자야 말로 던다스라는 이름과 부를 이어받을 적통이라는 것을 명시하고자 함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19세기경 그린파크와 알링턴가 주변 지도. 출처: 위키피디아


알링턴 저택은 던다스가 성취한 부를 전시하는 동시에 그의 정치, 사회적 야망을 드러내는 일종의 쇼하우스와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스코틀랜드 출신 건축가 로버트 아담(Robert Adam, 1728-1892)을 고용하여 저택 내부 장식을 총괄 감독케 하였고 당대 최고의 가구공들이 제작한 가구가 집안 곳곳 비치되었습니다. 초상화의 배경이 되는 방은 런던 중심부에 위치한 그린파크(The Green Park)가 내다 보이는 던다스의 드레싱룸입니다. 그린파크는 런던의 3대 공원 중 하나로 16세기 초 헨리 8세 때는 왕실의 사냥터로 이용되었고 이후 17세기 중반 찰스 2세에 의해 시민들의 휴식장소로 개방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지금의 버킹엄 궁전 또한 한쪽으로 끼고 있다고 하니 이 공원 주변에 저택을 소유하고 있었다는 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우) 얀 판 데 카펠(Jan Van de Cappelle, 1624-79) <무풍A Calm> (1654) 출처: National Museum Wales


이 초상화는 알링턴 저택의 화려한 실내분위기를 잘 표현했을 뿐 아니라 벽난로 위의 고대 조각상들과 벽면에 걸린 11점의 네덜란드 회화작품 그리고 한쪽 캐비넷 위에 놓인 바커스 신(Bacchus: 로마 신화에 나오는 포도나무와 포도주의 신) 조각상까지 비교적 정확하게 던다스의 실제 컬렉션을 재현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여러 그림들 중 단연코 시선을 끄는 작품은 던다스와 그의 손자  바로 뒤에 걸려 있는 네덜란드 해경화가 아닐까 싶은데요. 실제로 이 작품은 다른 방에 걸려있던 그림이었다고 하네요. 다른 방에 있던 그림을 굳이 이 초상속에 남기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림 속 그림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다음 글에서 계속됩니다



참고문헌

Caddy Wilmot-Sitwell, “The Inventory of 19 Arlington Street, 12 May 1768,” Furniture History 45 (2009)

G. E. Bannerman, “The ‘Nabob of the North’: Sir Lawrence Dundas as Government Contractor,” HistoricalResearch -Oxford- 83, no. 219 (2010)

Gervase Jackson-Stops, The Treasure Houses of Britain: Five Hundred Years of Private Patronage and Art Collecting (Washington, DC: National Gallery of Art, 1985), 355.  

Helen Clifford, “‘Conquests from North to South’: The Dundas Property Empire. New Wealth, Constructing Status and the Role of ‘India’ Goods in the British Country House,” in The Country House: Material Culture and Consumption (Swindon: Historic England, 2016)

Linda Colley, Britons: Forging the Nation 1707–1837 (New Haven, CT: Yale University Press,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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