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 그림 1편
요한 조파니가 그린 <던다스 가족화>에서 단연코 눈길을 끄는 것은 던다스와 그의 손자 로렌스 뒤에 걸린 화려한 미술작품 컬렉션일 것입니다. 특히 가장 중앙을 장식하고 있는 그림은 얀 판 데 카펠의 <무풍>으로 18세기 중반 이후 일부 영국 상류층 사이에서 부흥된 17세기 네덜덜란드 회화에 대한 유행을 말해줍니다.
당시 영국 상류층 사이 네덜란드 회화에 대한 인기는 조지 3세 재임 중 수상을 엮임 했던 뷰트 경(John Stuart, 3rd Earl of Bute, 1713-1792)이라는 인물 덕분이라 볼 수 있는데요. 스코틀랜드 출신 귀족이었던 뷰트 경은 당시 왕실의 비호를 받는 정치 거물이자 네덜란드 미술 애호가였습니다. 이에 그의 취미생활은 곧 그를 따르던 초상의 주인공 로렌스 던다스나 동인도회사(East India Company)의 수장이었던 조지 콜브룩 경 (Sir George Colebrooke, 2nd Baronet, 1729-1809)과 같은 스코틀랜드계 주요 인사들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요한 조파니는 당시 뷰트 경이 후원하고 있던 화가였고 이에 던다스는 그 자신도 뷰트 경에 버금가는 상류층의 재력과 문화적 소양이 갖추어졌음을 과시하고자 조파니에게 초상을 의뢰하게 됩니다. 그의 초상화는 얀 판 데 카펠의 <무풍 A Calm> 이외에도 다수의 예술작품들을 완벽하게 전시하고 있는데 특히 벽난로 위의 조각들은 자코모 조폴리 (Giacomo Zoffoli, 1731–85)의 로마 공방에서 청동으로 제작된 고대조각상의 복제품으로 주로 그랜드 투어를 다녀온 이들을 통해 수집, 유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던다스가 직접 그랜드 투어를 통해 이 조각상들을 수집하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당대 지식인들이라면 쉽게 알아볼 만한 일종의 인기 아이템을 전시하여 세련된 지식층으로의 면모를 드러내고자 한 의도로 해석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17세기 네덜란드 해경화에 대한 영국에서의 인기는 내부적으로는 물론 뷰트경의 영향이었지만 대외적으로 해석해 본다면 18세기 후반 대영국의 해상세력 확장과 제국주의에 대한 갈망에서 비롯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바닷길을 통한 무역이 가져다주는 막대한 경제적 이익은 대영국인들에게는 초미의 관심사였고 이는 곧 제국주의로 향한 국가적 열망과 일맥상통했습니다. 당시 군수보급 사업에서 손을 뗀 던다스 역시 선박, 금융 사업 및 동인도 회사와 같은 해상사업에 눈을 돌리면서 1781년까지 여러 척의 동인도 회사 선박에 투자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같이 가열된 영국의 바다로 향한 열망은 그들보다 한 세기 앞서 해상무역 황금기를 지낸 네덜란드의 해경화에 대한 인기로 이어졌지요. 네덜란드는 오랜 해양무역 전통으로 얻은 해상상권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그들의 투사적 기질을 바탕으로 동서양 무역권을 장악하며 엄청난 번영을 누렸습니다. 그들의 황금기를 오마주한 듯한 17세기 네덜란드 해경화는 18세기 후반 이제 막 바닷길을 장악하기 시작한 영국인들의 가슴을 뜨겁게 했으며 던다스 역시 예외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던다스 가족화> 속 박제된 네덜란드 해경화 <무풍>은 당시의 국가적 열망과 초상을 의뢰한 던다스 그리고 초상을 제작한 화가 조파니 모두의 지향점이자, 18세기 후반 제국주의로 향하는 영국의 정체성을 표현한 상징적 장치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참고문헌
G. E. Bannerman, “The ‘Nabob of the North’: Sir Lawrence Dundas as Government Contractor,” Historical
Gervase Jackson-Stops, The Treasure Houses of Britain: Five Hundred Years of Private Patronage and Art Collecting (Washington, DC: National Gallery of Art, 1985)
Jean Sutton, Lords of the East: The East India Company and Its Ships (London: Conway Maritime, 1981), 8.
Linda Colley, Britons: Forging the Nation 1707–1837 (New Haven, CT: Yale University Press, 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