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났다. 비일상적인 일이 일어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변한 건 없었다. 느낄 수 있게 달라지는 건 날씨뿐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올라간 기온은 평년보다 훨씬 웃돌았다. 보도에 따르면 올해 이상 기온 가능성을 전망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당장 내일부터 오를 기름 값을 더 걱정했다. 그건 지혜도 마찬가지였다. 지혜는 한 주 동안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시험기간이라는 좋은 핑계거리가 생긴 덕분에 주기적이고 필수적인 만남까지 피할 수 있었다. 다음에 만나자는 말에 그는 서운해 했던가, 아니면 아쉬워했던가. 사실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할 일을 쫓기듯이 하는 버릇 때문에 똑같은 상황의 다른 사람들보다 더 바빴던 탓이다. 그럼에도 저녁 무렵의 산책은 빼먹지 않았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길을 걸었지만 마음은 같지 않았다. 이상하게 고양되다가 불안하고 갑자기 짜증이 났다. 이게 다 ‘그 가로수’ 때문이었다. ‘그 가로수’를 마주치지 않기 위해서 항상 가는 길을 변경해야 했으니 말이다. 이건 여간 짜증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산책을 줄기차게 다니는 가장 큰 이유는, 경치를 보기 위함이었다. 특히 ‘그 가로수’가 있는 곳은 재개발이 한창인 동네에서 가장 맑고 탁 트인 장소였고, 지혜는 그 장소를 좋아했다.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그래서 너무 분했다. 불만족은 해소되지 못하고 나날이 쌓이게 됐다. 결국에는 이상한 꿈까지 꿨다.
“그 가로수 안 궁금해?”
꿈 속에서 선영이 물었다.
“궁금해.”
지혜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럼 왜 피해?”
“조금 무서워.”
“왜?”
“나무잖아.”
“나무가 왜?”
“사람 말을 하니까.”
“그럼 다른 가로수한테 말은 왜 걸었어?”
“음, 사실 무서운 게 아니라 모르겠어.”
“궁금한데 모르겠어? 아니면 몰라서 궁금해?”
“으음, 잘 모르겠어.”
선영은 옅게 미소를 지었다.
“그럼 한번 알아가 봐.”
지혜는 퍼뜩 꿈에서 깼다.
그날 아침에서야 비로소 좋아하는 곳을 찾을 수 있었다.
*
고마워요. 이렇게 찾아와주셔서 너무 고마워요.
가로수는 저 멀리에서 걸어오는 지혜를 보곤 아, 하고 탄성을 내지른 뒤 속사포로 말했다. 호들갑을 떠는 가로수 때문에 지혜는 한동안 할 말을 잃었다. 왜 인지 낯이 뜨거웠다.
- 저는 매일 지혜 씨가 언제 올까 기대하며 지냈어요. 지혜 씨한테 어떤 말을 할지도 생각하기도 하고……. 이런, 너무 제 이야기만 했네요. 지혜 씨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듣기로는 많이 바쁘게 지내신다고 하던데. 다음 주에 학교 시험이라면서요.
화들짝 놀란 지혜는 그걸 어떻게 알았냐고 물었다. 그러자 가로수는 별 일 아니라는 듯이 대답했다.
- 지혜 씨를 잘 아는 다른 식물에게 속삭였어요. 식물로 태어나는 모든 종들은 물질세계와는 다른 차원에서 정신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요. 인간에 비유해서 설명하자면, 인터넷의 네트워크 같다고 생각하면 돼요. 그리고 인간들이 SNS를 하는 것처럼 우리도 똑같은 활동을 해요. 언어와 생각을 속삭이죠. 그럼요. 나무들에게도 인간처럼 언어가 있고, 스스로 사유 할 수 있어요. 인간들이 전혀 듣지 못하는 형태로요. 식물뿐만이 아니에요.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은 자신의 종들과 각자만의 언어로 소통하고 있어요. 특히 식물들은 오감이 무척 발달해서 다른 생명체들의 다양한 언어를 배울 수 있어요. 저는 지혜 씨랑 대화를 하고 싶어서 한국말을 구사할 수 있는 나무에게 속삭였어요.
가로수가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지혜는 아까와 다른 의미로 놀라워했다.
- 나무들이 인간의 언어를 어떻게 배우냐고요? 으음, 이건 일급비밀인데 지혜 씨한테만 특별히 알려드릴게요. 식물은 오감이 상당히 민감해요. 뿌리가 뽑히고, 가공되어 다른 물질이 되더라도 오감만큼은 살아있어요. 그러니까 인간이 종이 위에 글자를 쓰거나 인쇄를 하면, 펜촉에 닿는 따가운 감촉이나 인쇄기에 찍히는 뜨거운 온도를 다 느낄 수 있거든요. 가끔 종이가 아파서 비명을 지르면 인간의 활동에 관심이 많은 나무들이 그걸 듣고 저희 차원에 속삭여요. 하하, 재밌죠?
가로수는 이후에도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설명했다. 인간에게 말할 수 있는 허용치를 미리 공부한 뒤여서 들어도 괜찮다나 뭐라나. 지혜는 가로수가 하는 말이 대부분 이해되지 않았지만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들었다. 듣다 보니 궁금한 점이 생겨 질문도 던졌다. 어떻게 인간의 목소리를 낼 수 있냐고 물어보자, 그건 지구상에 와있는 지적 외계 생명체 덕분이라고 했다. 지혜는 또 다른 의미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지적 외계 생명체, 그러니까 외계인이라니. 과연 외계인이 존재할까? 라는 물음에 대한 지혜의 대답은 항상 예스였지만 아무리 그래도 당장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 그들도 우리랑 되게 똑같아요. 자연법칙이 적용 되는 한 모든 생명체들은 본질적으로 똑같거든요. 각자가 가지고 있는 특이점 때문에 달라 보이지만 말이죠.
외계 생명체에게 조금이라도 친숙함을 느끼게 하려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듣고도 반감인 건 여전했다. 설마 지구를 정복하러 온 것은 아니겠지? 거기까지 사고가 뻗어가자 가로수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 지구는 이미 정복되고도 한참이나 지났어요. 자세하게 말할 수 없지만, 인류는 그들에게 많은 영향과 도움을 받고 있어요. 그들이 주장하기로는 자기들은 그저 하나의 우주 생명체를 연구할 뿐이라고 하는데, 저희가 보기에는 인간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것 같아요. 인간사와 조금이라도 관련되면 눈이 뒤집히거든요. 벌써 저만해도 지혜 씨랑 대화를 하고 싶다고 하니 아무런 대가 없이 도와주겠다고 달려들었어요.
잠자코 가로수의 말을 듣고 있으니 잠시나마 가졌던 부정적인 감정이 누그러졌다. 오히려 순식간에 호감으로 변해 궁금증이 일었다. 그들은 어쩌다가 지구에 오게 되었을까? 지구가 너무 아름다워서? 엄청나게 비싼 자원이 숨어 있어서? 연구 가치가 무궁무진해서?
- 아, 그건 그쪽의 높으신 분 하나가 저처럼 인간 여자 하나에게 빠져…….
가로수는 말을 잇다가 말았다. 그럴 일 없는데 도리질 치는 것 같았다.
- 흠흠. 이건 못 들은 걸로 해요. 그보다 혹시 또 궁금한 게 있나요?
지혜는 혼자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가로수는 눈치껏 입을 닫았다. 말을 하지 않으니 평범한 나무나 다름없었다. 평범과 비범 사이를 넘나드는 나무랑 한참 동안 서서 대화를 했더니 이미 해가 중천에 떠있었다. 볕이 따가웠다. 계절에 맞지 않게 여름 같은 날씨였다. 더위에 묻은 몸이 자연스레 가로수 그늘 아래로 들어갔다. 잠시 몸을 맡긴 곳은 땀이 마를 정도로 시원하고 아늑했다. 이름은 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단순히 식물, 나무, 가로수가 아니라 '지혜'와 같은 것 말이다.
- 당연히 있죠. 제 이름이 궁금해요?
가로수는 기쁜 듯이 웃었다.
- 저희 말은 인간이 발음하기 힘들어요. 그래서 표현하기 정말 쉽지 않은데, 다행히 한국말로는 어느 정도 구현 가능하더라고요. 나름 정확도를 살려서 알려드릴 테니까, 잘 들어봐요.
지혜는 고개를 끄덕이며 귀를 열었다.
- 뀛뙯붥이예요.
뀔? 뙬? 뭐? 생각지도 모르게 어려운 발음에 지혜가 당황하자 가로수는 아니, 뀔이 아니고 뀛이라며 발음을 정정했다. 뀔, 뎃, 붤? 뀍, 땝, 붝? 지혜는 정확하게 발음하려 최대한 용썼다. 하하하. 가로수가 웃음을 크게 터트렸다. 뭐가 어찌됐든 좋아 보여서 지혜도 그만 웃음에 말려버렸다.
- 오늘은 여기까지. 궁금한 게 있으면 내일 또 찾아와요.
지혜는 어깨를 으쓱했지만, 마침 산책이라는 좋은 핑계거리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