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나고야에서 먹은 것들

맛보다 오래 남는 것들

by 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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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야의 유명한 음식 (미소카츠, 미소니코미우동, 마제소바, 텐무스, 히츠마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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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야역 어디가의 소바집의 치쿠와 텐소바



나고야에 있는 동안
점심 한 끼 정도는 ‘관광객 모드’로
현지 음식을 먹어보려고 했습니다.


이 도시에서 유명하다는 음식들을 찾아보고,
어디를 가야 할지 미리 정해두었습니다.

여행을 왔으니, 이왕이면 잘 알려진 것들은
한 번쯤 경험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히츠마부시, 미소카츠, 미소니코미 우동, 테바사키, 텐무스.
이름만 들어도 나고야가 떠오르는 음식들이었습니다.


점심 먹을 곳을 미리 정해두고
그날의 일정을 짜기도 했습니다.


어떤 날은 줄을 꽤 오래 서야 했고,
어떤 날은 생각보다 금방 자리에 앉을 수 있었습니다.
히츠마부시로 유명한 '아츠타 호라이켄'은
세 번이나 도전한 끝에 겨우 맛볼 수 있었습니다.


한국인들 사이에서 특히 유명한 곳들이어서인지,
웨이팅 줄에 서 있으면 한국말이 간간이 들렸고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고르는 메뉴도
대체로 비슷했습니다.


음식이 나오기 전 사진부터 찍는 사람들.
그리고 그 안에 저도 자연스럽게 섞여 있었습니다.


맛은 분명 좋았습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지 이해가 될 만큼이었습니다.


그런데 관광객 모드로 여기저기 다니면서
이상하게도 이런 생각이 자주 들었습니다.

‘이 장면, 어디서 본 적 있는 것 같은데…’


신사동에서 회사를 다니던 시절,
'김북순 큰남비집'을
책을 들고 찾아오던 일본인 관광객들이 떠올랐습니다.

들어오자마자 김치찌개와 계란말이를 주문하고,

음식이 나오면 사진부터 찍던 모습.


그때는 그 풍경을 조금 떨어져서 바라보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 안에 제가 서 있었습니다.


이게 바로 관광객이구나, 싶었습니다.


여행지에서 무언가를 느끼기보다
짧은 시간 안에 더 많은 것을 경험하려는 모습.

어쩌면 그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릅니다.

시간이 한정되어 있다면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선택이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저는 시간이 충분했는데도,
그저 ‘유명하다’는 이유로 줄을 서고 있는 제 모습이
어딘가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렇게 긴 웨이팅 끝에 먹었던 음식들의 맛은
지금은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사진은 남아 있는데,
그때의 공기나 감정은
조금 흐릿하게 느껴집니다.


오히려 더 또렷하게 남아 있는 건
나고야역 안에서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갔던 식당입니다.


넓고 복잡한 공간 어딘가였는데,
정확한 위치도, 가게 이름도 지금은 잘 모릅니다.


그날은 그냥 배가 고팠고,
특별히 찾아본 곳도 아니었습니다.

메뉴판을 오래 보지 않고
치쿠와 텐 소바 하나를 주문했습니다.

특별할 것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먹었던 그 소바가
이번 여행에서 가장 또렷하게 남아 있습니다.


맛도 좋았지만,

그것보다 더 기억에 남는 건
그때의 분위기였습니다.


메뉴를 다 올리기엔 조금 좁은 테이블,
바깥의 분주함과는 달리 조용하게 흐르던 식당 안,
현지인들 사이에 섞여 앉아
한국말을 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편안함.


그날의 저는
많이 걸은 뒤 찾아온 휴식 속에서,
그 자리에 앉아 현지인들과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소바가 더 맛있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돌아와 생각해 보니

그날 좋았던 건 소바의 맛만은 아니었습니다.


그곳에서 현지인들과 같은 공간에 앉아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느낌이
더 크게 남아 있었습니다.


유명한 음식들도 분명 좋았지만,
이름 없이 지나간 한 끼가
더 또렷하게 기억에 남은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 것입니다.


어쩌면 여행에서의 식사는
무엇을 먹었는지보다
어떤 시간 속에서, 누구와 함께했는지가
더 깊게 기억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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