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아프기 시작하면 여행은 엉망이 된다. 낯선 음식에 대한 거부감을 보이던 내 위장이 파업하기로 작정한 건지 식사량을 줄여도 소화시킬 생각을 않는다. 끼니마다 소화제를 먹어도 별 효과가 없고 편두통까지 겹쳤다. 몸의 불편함이 여행의 분위기를 바꾼 탓인지 여행 중 보는 것들이 탐탁지 않게 보이고 툴툴대는 마음이 된다.
오늘 오전 일정은 '세상 끝으로 가는 철도여행' 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좁은 협궤열차는 장난감처럼 귀엽게 생겼으나 타기는 몹시 불편하다. 세 사람이 앉으면 꽉 차는 폭인 데다 맞은편에도 끼어 앉은 세 사람의 무릎이 내 무릎에 닿는다. 어린이용 장난감 차에 몸을 구겨 넣은 것 같다. 지나가는 풍경은 여유롭고 한가하나 열차 안은 비좁고 이어폰에서는 알아듣지 못할 언어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다. 이어폰을 빼서 집어던졌으나 열차 내 스피커에서도 같은 소음이 나를 괴롭힌다.
이 답답한 공간에서 나를 분리해 보려 멀리 눈길을 보낸다. 시원하게 열린 공간 저 멀리에는 완만한 곡선을 그리는 산과 푸른 하늘 가득한 흰구름이, 가까이에는 초록 숲의 산과 차분히 흐르는 개울이 있다. 얼핏 우리나라 시골 같기도 하나 전혀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는 사방을 둘러봐도 사람이 사는 흔적, 마을이 없기 때문이다. 열차로 한참을 달려도 눈 닿는 모든 곳이 자연으로만 가득 찬 풍경은, 남미 여행을 하는 동안 많이 보았으나 여전히 나에게는 생경하다. 그 공간이 허허롭게 넓어서인가보다.
여기도 가을이 와서 나무들은 어렴풋 물들어가고 있다. 이곳 산들은 지금까지 보아온 산들에 비해 나무가 많은 편이다. 춥고 외진 지역이라 울창한 침엽수림대를 예상했으나 대부분의 나무는 줄기나 가지가 굵지 않고 잎사귀는 작고 빳빳하다. 그래서인지 부드러운 색조로 단풍 들어가는 우리나라의 가을 풍경과는 다른 모습이다. 나무가 촘촘히 들어선 지역에는 가끔 큰 나무도 보이는데 기껏해야 둘레 직경이 30cm 이내이고 아름드리나무는 찾아보기 어렵다. 사람의 손길이 별로 닿지 않았을 외진 지역 치고는 원시림이 형성되지 않은 게 의아하다.
열차는 한동안 빽빽한 숲 속을 달리더니 다시 시야가 트이며 샛강이 유연한 곡선을 그리며 느리게 흐르는 평야지대를 지나간다. 국립공원인데 말 몇 마리가 수풀 속에서 풀을 뜯고 있다. 기차의 소음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걸 보니 관광객들의 소란에 익숙해진 듯하다.
말은 유럽인들이 이 대륙으로 오면서 데려온 가축이다. 한때는 전쟁의 도구로 사용되며 원주민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동물이었으나 지금은 서로에게 잘 적응하며 평화롭게 공생하고 있다. 푸에르토 나탈레스 거리에서 본 벽화의 내용으로 볼 때 파타고니아의 원주민들이 잉카인들보다 말에 대해 우호적이었던 것 같다. 잉카제국에서처럼 말이 대규모 살육에 동원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중간 기착지 마카레나역에 내려 잠시 맑은 바람도 쐬고 산책로를 걸었다. 폭포가 있다는 말에 부지런히 올라가 보았으나 기대에 비해 규모가 작아 실망스럽다. 그러나 산에서 내려오는 서늘한 바람과 초록 숲의 도움으로 협궤열차의 답답함을 잠시라도 풀어주니 그런대로 봐줄 만한 풍경이다.
서쪽으로 열차를 달려 도착한 '세상 끝 우체국'은 비글해협의 해변가에 있었다. 트레일러를 개조한 듯한 가건물이 바람 부는 바닷가에 외롭게 서있다. 그러나 바깥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실내의 분위기는 정반대다. 좁고 후끈한 공간에 관광객이 빼곡히 들어차 있어 들어가기 위해서나 기념품을 볼 때, 돌아 나올 때도 사람들과 부딪히며 뚫고 나와야 할 정도다. 그 혼란 속에서 주인 할아버지는 익숙한 일상인 듯 기념품과 스티커를 팔고 스탬프를 찍어주며 돈을 받는다. 그 북새통 속에 나 또한 그들 중 하나가 되어 '세상 끝'의 외로움과 고독함이 어지러이 널려있는 관광상품들처럼 가볍고 경박하게 사라져 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벽에 걸려있는 기념품과 사진들을 보다가 체게바라를 발견했다. '남미'라는 명칭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체게바라였는데 여행 중 어디에서도 그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가 목숨을 바친 볼리비아에서 조차 그와 관련된 기념물이나 사진을 본 적이 없었는데 대륙의 끝에 와서야 처음 대면하게 된 것이다. 중남미 곳곳에서 혁명을 주도했던 그를 기억하는 곳은 결국 고향인 아르헨티나인가 싶다. '세상 끝'까지 밀려나긴 했지만...
세상 끝이라고 주장하는 우체국의 안에도 들어가 보았으니 혼잡함으로부터 탈출하여 바깥바람을 쐬러 나온다. 생각대로 엄청난 바람이 몰아친다. 바닷가를 거닐며 세상 끝의 고요함에 젖어본다. 바다는 호수처럼 잔잔하다. 이곳은 긴 비글해협의 안쪽에 자리 잡고 있으니 파도가 치지 않는다. 멀리서 들리는 사람들의 소리도 바람에 쓸려 사라지고 드디어 세상 끝의 고요함을 한눈에 담으며 짧은 행복을 누린다.
'세상 끝 우체국'에서 서쪽으로 더 가면 티에라 델 푸에고 국립공원 서쪽 끝 라파타이아만이 있다. 산책로를 걸어 만까지 가는 동안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좁은 차 안에서 시달렸던 스트레스가 바람에 날아가고 시야는 탁 트여 몸과 마음이 자유롭다.
라파타이아 만은 거센 바람과 강한 햇살이 모든 공간을 채우고 있는 것 같다. 투명한 공기를 뚫고 쏟아지는 강한 햇살에 푸른 하늘과 마주한 푸른 바다의 잔물결이 반짝이고, 거센 바람은 사방을 휘젓고 다니며 여린 풀들을 이리저리 휘날린다. 햇살과 바람과 구름은 라파타이아 만의 거침없는 자기표현이다. 과거의 청정함과 원시성을 지닌 채 가릴 것도 숨길 것도 없다는 듯 밝은 햇살 아래 제 몸짓을 맘껏 하고 있었다.
이토록 자연 그대로인 채 남아 있는 이곳에도 한때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이 보인다. 공원 내 데크 주변에는 과거 이곳 원주민들의 삶을 설명한 몇 개의 안내문이 있다. 몹시도 추운 이곳에서 그들은 거의 벌거벗은 모습이다. 심지어 눈 밭에서도 나체로 돌아다닌다. 안내문 중 헐벗은 상태로 원시적인 낚시를 하는 원주민 그림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다.
'카누는 해안지역 원주민들의 생활방식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고 물품을 운반하는 교통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서양사회와 접촉할 무렵 이들은 보통 길이가 3m~6m인 커다란 나무껍질로 만든 카누를 사용했다. 온 가족이 카누를 타고 이동했고 심지어 불씨를 나르는데 이는 유럽인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 그림과 설명이 유럽인들 사이에서 전해진 정보를 토대로 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제대로 된 연대기조차 없이 단편적으로 그려놓은 그림을 보면서 과연 얼마나 사실과 가까울까 생각해 본다.
주변을 둘러보면 저 멀리 보이는 설산도, 가까이 있는 바위산도 기운차게 뻗어 있고 위엄이 있으니 이 정도면 이곳의 삶을 든든히 지켜줬을 법하나, 그 영험한 산들은 제구실을 제대로 못한 걸까? 이곳에 살던 사람들의 생활모습은 초라하기 그지없이 묘사되어 있었고 심지어 자신들의 보금자리에서 쫓겨나 자취를 찾을 수도 없다.
유럽인들이 남미 대륙에 상륙했을 때, 원주민들에 대한 시각은 적대적이고 부정적이었다. 침략하려는 자들은 공격대상의 원시성과 미개함을 강조하여 자신들의 침략성을 감추고 야만성을 미화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카리브해 주민들을 '식인 풍습을 가진 부족'이라고 묘사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남미대륙으로 향한 침략의 손길은 대륙 중심부 페루에서부터 남쪽 끝 우수아이아까지 뻗어내려 와 그들의 시각이 반영된 이 그림을 만들게 된 건 아닐까? 혹은 이곳이 먼저였을 수도 있겠다. 유럽대륙에서 페루지역으로 가기 위한 항로가 이곳을 지나가야 했으니.
이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오래도록 삶을 이어간 이곳의 원주민들, 아이를 낳고 키우며 자연 속에서의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했던 그들의 삶이 몇 조각의 그림으로 왜곡되고 평가 절하당한 듯하니 삼자의 입장에서 조차 서글픔이 느껴진다. 약자의 삶에 대한 연민이 솟아오르며 찬바람 부는 남쪽 끝에서 벌거벗은 그림으로 남아있는 그들의 모습이 안타깝다.
우수아이아 시내에서
점심은 우수아이아 시내로 돌아와 닭고기 야채볶음 비슷한 걸 먹었으나 나는 속이 편치 않아 감자 몇 개만 집어 먹고 소화제로 마무리했다.
잠시 쉴만한 카페를 찾아 큰길을 따라 걷고 있는데 깃발을 든 한 무리의 사람들이 거리 시위를 준비하고 있다. 50여 명쯤 되어 보이는데 연령층이 다양해서 어린아이들부터 청소년, 중 장년층, 노인들까지 섞여있다. 비가 부슬부슬 오는데도 개의치 않는 듯 웃고 잡담하며 여유롭다.
잠시 후 대오를 갖추고 자동차 도로로 몰려나오더니 행진을 시작한다. 젊은이 몇 명은 형광봉을 들고 도로에 서서 교통통제를 하고, 앞장선 시위대는 크고 작은북을 치고, 뒤따르는 무리는 손뼉 치고 노래하며 즐거운 분위기다. 저지하는 사람도 없고 길가에 서서 구경해 주는 사람도 없다. 오가던 관광객 몇 명이 잠시 바라보거나 사진을 찍는다. 그 소수의 사람 중 하나는 나였다.
어쩌면 우수아이아 주민 중 시간 되는 사람은 모두 이 시위에 참석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길가에 서서 응원의 박수를 쳐줄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수아이아에는 하릴없이 거리를 어슬렁 거리는 사람이 없다. 내가 우수아이아 시내를 돌아다니는 동안 가게나 박물관을 지키는 사람이 아닌 일반주민을 길에서 거의 본 적이 없을 정도다. 돌아다니는 사람은 관광객들 뿐이다. 여하튼 시위치고는 좀 싱거운 시위였다. 주먹을 쥐고 흔드는 사람도, 강력한 요구를 하는 외침도 없는 평화로운 행진이었다.
나의 오후는 컨디션 난조와 체력고갈로 휴식을 위해 카페에서 라테를 마시며 느긋하게 보냈다. 디카프리오가 자주 오던 카페라는 소문 때문인지 사람이 몹시 많다. 손바닥 만한 2인용 탁자를 혼자 차지하는 것조차 눈치 보이긴 했으나 라테 한잔을 갖다 준 다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따듯한 실내의 어두침침한 조명, 수근 거리는 소음이 들리는 오래된 카페에서 오늘 하루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