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구아수 폭포 1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떠나 푸에르토 이구아수를 향했다.
버스는 신새벽을 가르며 공항을 향해 달린다. 창 밖을 내다보니 사방은 어둡고 도로는 텅 비어 있다. 흐릿한 빛에 잠긴 거리를 신호등이 멀뚱히 지키고 서있다. 불 꺼진 아파트와 낡은 사무실 건물들이 거대한 벽처럼 서있는 모습은 서울 변두리의 어느 거리와 닮았다.
모눈종이처럼 촘촘한 아파트 창들은 깊은 어둠에 잠겨 있고 두어 집에만 불이 켜져 있다. 칸칸이 간직하고 있는 서로 다른 삶의 모습들. 각각의 칸마다 먹고, 일상을 살고, 잠드는 사람들이 각기 다른 생각을 품고 다른 세상을 보면서 살아간다. 이 거리를 지나는 이방인인 나 또한 나의 시야로 이곳을 보고 느끼며 이 거리를 지나고 이 나라를 체험한다. 그리고 그 각각의 서로 다른 생각들은 뭉치기도 하고 부딪히기도 하면서 갈등을 일으키고 이념을 만들고 가치관을 형성한다.
태평양을 건너는 두 대륙의 거리만큼, 서로에 대한 이질감, 거리감, 호기심은 낯선 경험이지만 다행히도 오늘날 대부분의 인류는 그것을 즐길 줄 알게 된 것 같다. 이 대륙에서 낯선 종족을 무자비하게 공격하고 멸절시킨 과거를 생각해 보면 오늘날의 인류는 진일보했음이 분명하다. 인간 역사의 큰 흐름은 이성적 사고의 시대로 접어든 것 같다.
이구아수 폭포를 보러 가는 길은 소풍길이다. 찦차도 타고 놀이공원 열차처럼 생긴 것도 탄다. 달리는 열차 양쪽으로 숲이 우거져 초록 터널을 달리는 느낌이다. 스쳐 지나가는 숲 속에서 커다란 나비가 무리 지어 날아다니는 광경도 보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새도 만났다. '코아티'는 처음 보는 동물이라 신기하다 생각했으나 이곳에서는 흔하고 말썽꾸러기라 조심하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폭포까지 걸어가는 길에는 데크가 길게 설치되어 있는데 가다 보면 발아래 강이 흐르고 있으니 다리가 되기도 하는 셈이다. 평온하게 흐르는 강을 몇 개 건너 한동안 걷다 보면 시야가 탁 트이면서 강폭이 넓어진다. 여러 줄기로 흐르던 강물이 합쳐져 해협에서나 볼 수 있을 정도의 드넓은 강폭을 만들며 유유히 흘러가고 있다.
폭포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호수처럼 잔잔하게 흐르던 강물이 여울지기 시작한다. 강물 속에 작은 바위 계곡이 있어서 흐르던 강물이 그리로 쏟아지는데 낙차가 크지 않으나 세 방향에서 많은 물이 몰려 내려오니 녹색의 물무더기가 되어 용솟음치며 물보라를 일으킨다. 그곳에 모인 물은 거대한 물뭉텅이가 되어 아래로 덩어리째 굴러 떨어진다. 그 물뭉텅이가 떨어지는 곳은 '악마의 목구멍'이다.
물이 떨어지는 폭포 앞쪽을 보면 바위벽이 U자 모양으로 우묵하게 들어가 삼면에서 물이 쏟아지는 형상이다. 그러니 쏟아져내리는 물의 량이 엄청나다.
올려다보면 푸른 하늘과 수풀이 고요히 흔들리고 있는데 바로 아래 이곳은 거대한 물뭉텅이가 굉음을 울리며 쏟아져내린다. 떨어지는 물은 뒤쪽 암벽에 부딪히는지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까마득한 아래로 떨어진다. 물이 떨어지는 곳은 짙은 안개밭이다. 물안개는 '악마의 목구멍'을 가득 채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엄청난 량의 녹색 물뭉텅이들이 곤두박질치듯 떨어져 내리는 장면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장엄한 광경이다. 인간이 감히 설명할 수 없는 자연의 장대함과 거역할 수 없는 힘을 만나는 순간이다.
폭포 전망대 난간에 서 있으면 얼굴과 몸에 닿은 미세한 물방울과 천지를 가득 채운 듯한 단조로우면서도 웅장한 소리, 눈앞에 보이는 어마어마한 량의 물에 압도되어 버린다. 주변의 모든 존재들이 사라지고 오직 거대한 폭포만이 온천지를 채우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물안개를 맞으며 폭포와 교감하듯 오래 서 있었다. 그렇게 서있으니 폭포는 나의 시각, 청각, 촉각을 장악해 내가 자연의 웅장함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서 있나 느끼게 해 준다.
사실 나와 위대한 자연과의 교감은 오래 유지할 수 없었다. 줄지어 밀려드는 다른 관광객들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곳을 조금 벗어나 시야를 돌리니 '악마의 목구멍'의 최면에서 풀려난 듯 주변 다른 폭포들이 눈에 들어온다.
'악마의 목구멍' 옆에는 직각으로 깎아지른 절벽 위에 수십 개의 폭포들이 나란히 줄지어 있다. 시원스레 일자로 떨어지는 크고 작은 폭포들은 순간순간 부서지는 물방울을 보석처럼 흩뿌려 장식하며 낙하한다. 폭포의 아래쪽을 보면 투명한 물빛이 사라지고 밀가루 포대를 마구 흔들어대는 듯 뽀얀 입자들이 구름 같은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있다.
더 멀리 계곡을 내려다보면 폭포의 물은 합류하여 강물이 된다. 강으로 흘러드는 물은, 언제 그랬냐는 듯 거대한 낙하와 부서짐과 소용돌이를 겪은 적 없는 것처럼 평온하게 흘러간다. 부드럽고 고요하던 강물은 거대한 폭포가 되어 천지를 뒤흔드는 장관을 연출한 다음 다시 아무 일 없다는 듯 고요한 자신의 본래 모습으로 돌아간 것이다.
이 일대에서는 고개를 돌리는 곳마다 아름다운 폭포들이 눈에 띈다. 밀림 속 여기저기 하얀 레이스를 늘어뜨린 듯 수백 개의 폭포가 걸려있다. 저 멀리 아련하게 전설 속 풍경 같은 폭포도 있고 은은한 무지개를 품고 있는 폭포도 있다. 이곳은 자연이 연출한 압도적 아름다움의 현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