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우데자네이루 2
리우데자네이루에는 거대 예수상이 있다. 한때는 세계 최대의 예수상이었고 그 압도적 크기 때문에 진즉에 리우데자네이루의 상징이 되었다.
예수상을 보기 위해서는 코르코바두 산 아래에서 전용열차를 타야 한다. 기찻길은 산등성이를 따라 나 있는데 좌우로 키 큰 나무들이 시야를 채운다. 이 지역 특유의 줄기가 가늘고 하늘을 찌를 듯 위로만 뻗는 나무들이다. 가는 나무들이 여럿 모여 이토록 초록 가득한 수풀을 만든 모습도 특이하다. 기차는 천천히 달려 주변 경관을 보기 좋다. 수풀 사이로 멀리 언듯언듯 마을이 보이기도 한다. 20여분을 올라간 후 열차에서 내려 또다시 계단과 에스컬레이터를 오른다.
드디어 예수상의 뒷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얼마간 예상하고 있었음에도 가까이 갈수록 거대한 크기가 놀랍다. 높직한 검은 기단 위에는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 구름 가득한 하늘을 배경으로 두 팔을 벌리고 선 거대한 예수상이 대서양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예수상 아래 기단 주변에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그 앞으로 쭉 뻗은 발코니형 전망대에도 대서양과 도시를 내려다보는 사람들이 난간에 몰려있고 가운데에는 예수상이 들어간 셀카를 찍으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인간들은 언제부터 거대한 크기에 대한 경외를 가지게 되었을까? 종교적 조형물의 거대함이 종교적 신앙의 크기에 비례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혹은 신앙의 대상에 대한 상대적 겸손함의 표현이거나 그저 거대한 존재에 마음의 위안을 얻으려는 본능적 믿음일 수도 있다. 원시적 종교의식이 큰 나무나 거대한 바위 등을 대상으로 한 것처럼.
그러나 2025년의 코르코바두 산 정상에는 예수상의 거대함에 걸맞은 종교적 경외감이나 인간의 겸손 따위는 없었다. 경탄할 만한 크기의 유적이 남아있는 여느 관광지나 다름없이 웃고 떠들고 이런저런 포즈로 사진 찍으며 놀라운 장면을 공유하려는 수많은 구경꾼들로 넘쳐날 뿐이다.
전망대 아래를 내려다보니 도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저 아래에서 이곳을 올려다보는 사람들의 마음은 좀 다를까? 만약 이들이 산 정상의 거대한 예수상을 보기 위해 산 아래부터 한걸음 한걸음 걸어 올라 이곳에 도착했다면 좀 더 고요한 마음으로, 겸손한 자세로 예수상의 크기에 종교적 경탄을 하지 않았을까? 숨 가쁜 등반 길의 여정을 통해 예수의 삶을 체험적으로 느끼고 예수상의 손바닥에 새겨진 상흔을 마음 깊이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기차라는 편리한 수단으로 이곳에 도착한 사람들은, 과정을 삭제한 채 마지막 결과만 음미하는 요약본 영화 한 편을 보는 가벼운 마음으로 이곳을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코르코바 언덕을 내려오면 남미 여행의 일정이 모두 끝난다.
인천에서 태평양을 건너온 후 남미 대륙을 한 바퀴 도는데 약 한 달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이제 대서양을 건너고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질러 인천으로 향해 가니 말 그대로 지구 한 바퀴를 온전히 돌아서 제자리로 돌아가는 셈이다.
돌아가는 길은 일행과 떨어져 가게 되어 조금 긴장되기도 하지만 홀가분해서 좋다.
리우데자네이루 공항에서 상파울루 공항으로 간 후 그곳에서 대서양을 건너는 프랑크푸르트행 밤비행기를 탔다. 기내에서 잠이 들어 8~9시간을 자고 일어났으니 신체리듬은 아침이라 말하는데 프랑크푸르트에 내리니 오후 3시다. 늘 명확했던 시간개념도 그 경계가 희미해졌다.
남미의 후끈한 열기가 사라지고 프랑크푸르트의 서늘한 기운을 만나자 한 달간의 여행이 멀게만 느껴져 지나온 여정을 돌이켜본다.
잉카의 흔적을 만났고, 고요 속에 침잠한 우유니 소금사막을 지나, 태초의 지구 모습을 간직한 알티플라노 고원을 통과했다. 이틀에 걸쳐 통과한 알티플라노 고원이라는 거대한 장벽은 나를 과거에서 현재로 데려왔다. 여행의 후반부에 만난 이구아수 폭포도 감동적이었다. 살아서 꿈틀거리는 역동적인 모습은 지구가 얼마나 아름답고 멋진 곳인지를 보여주었다. 남미 사람들은 탱고의 열정적인 선율을 즐기고 있었으나 다른 한편에는 가시밭 길의 민주주의 역사를 보여주는 상징들도 곳곳에 두고 있으니 가슴 한켠에 숨겨둔 이야기 같다.
공항 라운지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노라니 꿈처럼 멀게 느껴지는 이 여행 속에 더 머물고 싶은지 이제 그만 돌아가고 싶은지 나도 모르겠다. 귀소본능과 방랑벽이 부딪히는 지점에 서서 그저 예약된 비행기표와 정해진 스케줄이 있으니 길게 고민할 필요가 없어 다행이다.
프랑크푸르트에서 탄 비행기는 우리나라 국적기라 반쯤은 집에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다.
비행기는 남미의 열기를 뒤로하고 서울의 꽃샘추위를 향해 날아가고 있다. 며칠 후에는 익숙함에 젖어 집안을 거닐고 냉장고를 열어 입에 익은 음식들을 기꺼운 마음으로 먹을 것이다. 한동안은 그것이 행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