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생활: 혼자 살아가는 것 vs 혼자 죽는 것 누가 더 슬플까요?
노인들의 고독사가 한 번씩 뉴스를 타고 전해질 때마다 나도 그럴 수 있다는 두려움과 닫힌 사회의 야박함에 대해 서운해지곤 합니다. 나는 그러지 말아야겠다.라는 생각과 함께 그는 어떤 삶을 살았기에 고독사를 하였으며 홀로 죽을 때 얼마나 슬펐을까 질문을 하게 됩니다. 아래 글은 브라질의 작가 마리아가 어느 아침에 겪은 일과 그에 대한 생각을 나눈 글입니다. 오늘 하루 정도는 나의 죽음이 어떠했으면 좋겠는지에 대한 생각을 깊이 있게 해보고 싶어지는 글이네요.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죽음이 어떠하길 원하시나요?
이 글의 목차:
- 머물렀던 곳에 안녕을 고하기
- 홀로 죽는다는 것
머물렀던 곳에 안녕을 고하기
브라질의 작가 마리아 돌로레스가 어느 날 아침 막내아들을 학교에 데려가던 중 겪은 일을 들려주었습니다.
막내아들과 학교에 가던 중, 문 하나와 창문 두 개가 있는 작은 하얀 집 앞에서 경찰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볼 수 있었어요. 우리가 매일 걸어서 지나가는 길에서 말이지요. 시골에 살고 있는 우리는 낡은 흰색 울타리, 넓은 채소밭과 꽃이 핀 정원, 매물 표시가 있는 큰 벽돌로 지어진 집, 그리고 파란색 딱정벌레가 있는 집이 있는 길을 지나가게 되지요. 요즘 들어 차에 부쩍 관심이 많아진 아들은 그 앞을 지나며 차와 색깔 대한 끊임없는 즐거운 농담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직 그 광경을 보지 못한 아들의 주의를 분산시키기 위해 차의 좌석, 새 차, 그리고 다른 숙박 시설들을 가리키기 시작하였습니다. 같은 거리, 같은 광장, 같은 벤치, 같은 정원이 있던 그 평범한 공간을 오늘 달리 보이게 만든 그 한 가지는 바로 경찰차의 빨간불이었습니다.
아이를 학교에 맡기고 돌아오던 길에, 두 명의 경찰관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걸 보았습니다. 한 경찰관은 같은 학교에 다니는 다른 학생의 어머니였습니다. 그녀가 집의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하얀 창살이 달린 문 위로 뛰어오르고 있었습니다. 가까이 가니 안에서부터 강한 냄새가 났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나요?” 나는 경찰관들의 행동을 지켜보던 두 명의 여성에게 물었습니다. “이웃이 경찰에 신고했는데 도카 아저씨가 죽은 것 같아요.”
집 안에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고 점점 심한 냄새가 나기 시작해서 이웃 사람들이 문을 두드리고 손뼉을 쳐 소리를 내보기도 하고 전화를 해보기도 하였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도카 아저씨는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과 친구였어요.” 이웃들은 그렇게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홀로 죽는다는 것
나는 그 대답에 대해 감사를 표하고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도카 아저씨와 혼자 죽어가는 모든 사람들을 생각하며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애도하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죽음이 찾아왔을 때 다른 이 없이 그저 오롯이 자기 자신과 함께 있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요?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후회일까요? “안 됐네, 이렇게 혼자 죽게 되다니.” 그럴까요? 그 죽음의 순간의 복잡성에 대한 생각은 지금도 끝없는 물음을 던지며 계속되고 있습니다. 나는 나를 키워주셨던 두 외조부모님의 그 순간을 함께할 수 있었습니다. 한 분은 인생이 가져오는 불치병으로 인해 일찍 떠나셨고, 다른 한 분은 자연스러운 노화로 인하여 떠나셨지요. 두 번의 그들과의 작별 인사는 부드럽고 평화로웠습니다. 좋은 삶을 살았다는 기쁨과 손을 잡고 함께 나누는 이별의 슬픔, 그리고 남은 사람들에게 남겨진 많은 행복하고 기억에 남는 추억들을 공유하면서 말이죠.
하지만 혼자 그 순간을 맞이하게 되면 어떨까요? 애처롭고 슬프기만 할까요? 그 순간을 지켜보며 예 일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아닐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죽음에는 확실성이 필요하지는 않으니까요. 우리는 우리의 시간을 모르기 때문에 나의 외조부모님처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것인지 아니면 혼자 있을 것인지는 지금은 장담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커피를 만들고, 샤워하고, 차를 타고, 옷을 입고, 매일 바보 같은 TV 프로그램을 보고, 때로는 병상에 누워 있을 때에도 슬픔이 있을 수도 있어요. 어쩌면 두려움일까요.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로 뛰어드는 것은 언제나 조금 두렵고 무서운 일입니다. 그러나 아마도 마지막 최종적으로 느끼게 될 감정은 죽음의 순간에 대한 두려움보다 우리가 가졌던 삶이 어떠했느냐에 달려 있을 것 같습니다.
혼자 죽는 것은 혼자 사는 것만큼 슬프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오랫동안 사람들과의 관계를 쌓아가지 않고, 애정 없이,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지 않은 채 인생을 보낼 수도 있지만 살아가는 동안 누군가를 돌보고 아끼는 것, 또 그렇게 나를 돌보고 아껴주는 누군가가 있는 것은 중요합니다, 단 한 명의 친구든 단 한 명의 이웃이라도 말이죠. 사실 모든 사람이 가족으로 둘러싸여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오늘 알게 된 도카 아저씨는 살아계신 동안 주위 사람들을 많이 돌보려 하신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도 진심으로 그를 아끼고 걱정하였겠지요. 아마도 그의 이별은 슬프지 않았을 겁니다. 그렇게 믿어도 되겠지요?
원문출처: https://vidasimples.co/colunista/ele-morreu-sozinho/
이 글을 쓴 MARIA DOLORES는 Minas Gerais에 살고 있는 컬처 프로듀서이자 패션 크리에이터로 아내이자 세 자녀의 어머니입니다. 그녀는 브라질 전역에서 음악 축제를 열고 여가 시간에는 글을 씁니다. 그녀는 “Travessia – a vida de Milton Nascimento”(ed. Record), “Mãe de Dois”(ed. Civilização Brasileira), “A Lua no Terreiro”(ed. Penalux) 등의 저자입니다. 팬데믹으로 인해 그녀는 관계의 범위가 점점 더 제한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남편이 상파울루를 떠나 가족과 함께 시골에서 1년을 보내며 자녀와 자신과의 관계에 더 많은 애정을 통해 더 많은 교류와 더 많은 기회를 가지는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참고사항: 본 내용은 Vida Simples의 칼럼 내용을 번안한 것으로 한국인의 정서에 맞게 각색한 것임을 알립니다. 혹시 번역이 크게 잘못되었거나 자료가 잘못된 것은 언제든지 댓글이나 이메일로(email: vidasimples_kr@gmail.com) 남겨 주시면 정성껏 답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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