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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뚭씌 Oct 16. 2023

사운드 디자인_Sound Sculpture


당신은 현대음악을 들어봤는가? 그 음악을 들어봤다면, 일반적으로 알려진 선율을 타고 흘러 감상할 수 있는 음악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급작스럽게 쿵쿵 소리가 난다든지, 음악의 흐름을 따라가기 어렵다든지. 우리가 알고 있는 음악 감상과 비교했을 때 다소 난해하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흐름은 미술사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본고는 음악이 어떻게 미술사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미술계의 사운드는 무엇의 영향으로 인해 새로운 물결이 등장하게 되었는지에 관해 서술한 후, 그 흐름에 맞춰 등장한 작가, 자넷 카디프(Janet Cardiff, 1957-)에 관해 알아볼 것이다.


소리는 음악과 미술의 경계선상에서 영역의 확장을 이루며 발전해 온 복합적인 태생에 기인하기에, 소리 매체를 아우를 용어와 개념이 명확하게 합의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미술계 소리의 명칭은 사운드 아트, 사운드 스컵쳐, 사운드 인스톨레이션의 용어들이 혼용되어 사용된다.[1] 이 글에서는 이를 사운드 아트로 통칭하고자 한다. 소리는 시각예술에서 주목받는 매체로써 미디어 아트의 일환을 넘어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해 왔다. 사운드 아트는 청각적인 요소를 공간과 조합하는 예술로, 이들 간의 상호작용을 이끌어낸다. 동시에 예술에서의 새로운 표현 형식을 탐구하고, 서로 다른 미디어 사이를 횡단하여 예술적 가능성의 범위를 확장하려는 동시대의 경향을 표명한다.[2] 미술사조의 사운드 등장에 관하여 이 주제에 들어가기 전, 박수민의 「카디프와 밀러의 사운드 설치에 나타난 공간 체험 연구」 홍익대학교 석사학위논문을 인용하였음을 미리 밝힌다. 루이지 루솔로(Luigi Russolo, 1885-1947)는 1913년 3월에 ‘소음예술’을 통해 <미래주의 음악 선언>을 발표하며, 소음(noise)에 예술적 가치를 부여하였다. 이는 소음이 인간의 감각을 지배한다고 보았기 때문인데, 근대화가 이루어진 도시에서 순수한 음악적 선율은 기계 소리를 경험한 사람들에게 더 이상 어떠한 감정도 불러일으키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미래주의 창설 선언문>[3]이 발표되자, 루솔로는 이 미래주의 음악이 곧 다가올 음악을 위한 혁명의 전조라고 확신했다. 미래주의는 시각, 소리, 촉감과 같은 상이한 감각들이 하나의 작품에서 공감각적으로 공존하는 사조이다. 산업 사회의 발달로 등장한 움직임과 기계음과 같은 소음을 이탈리아 미래주의 작가들이 모더니티의 상징으로 간주하여 새로운 소재로 주목하였다. 비슷한 시기 다다(dada)의 소음 예술 역시 삶을 반영하여, 소음을 예술 행위로 도입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미래주의와 다다에는 은밀한 차이가 존재한다. 미래주의는 인위적으로 구현되어 계획된 연주방식이라면, 다다는 파편화되어 아무것도 뜻하지 않는 소리를 우연성을 추구하여 나열하고자 하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개념미술 등 현대미술의 시작을 연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은 ‘주파수 회화’의 개념을 창안하였으며, 환경이 구성되고 사람들이 훈련되면 시각적인 예술품을 청각적으로 ‘들을 수’ 있을 것을 주장하였다. 후에 뒤샹은 <오차 음악 Erratum Musical>(1913)에서 음표를 숫자로 바꾸어, 우연성과 즉흥성을 기반으로 음악이 완성되는 과정을 담아냈다. 인간의 규칙적인 개입이 배제되었을 때 발생하는 우연을 가시화하여, 소리 역시 레디메이드 작업으로 미술 매체의 오브제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해 냈다.


그리고 루솔로와 존 케이지를 비롯하여 플럭서스를 시도한 다양한 사운스 실험은 사운드가 독립적인 미술의 매체로 인정받는 계기를 마련한다. 존 케이지(John Cage, 1912-1992)는 우연성과 비결정성의 개념을 완성시켜 미술 영역에 다시 사운드 아트를 일으켰다. 1930년대 중엽 케이지는 ‘무조주의’와 ‘음렬주의’를 제시한 아놀드 쇤베르크(Arnold Schönberg, 1874~1951)로부터 혁신적인 작곡 기법을 시사 받아, 음의 인위성에 반대하며 일상에서 발생하는 소리 역시 음의 자격을 갖는다고 생각하였다. 일상의 삶과 예술이 융합되는 것을 지향하였다. 또한, <준비된 피아노(Prepared Piano)>(1938)는 피아노 현 사이에 고무, 금속, 나무 등의 이물질로 기존 음색이 파괴된 소음을 생성하도록 하여, 규정된 소리의 통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를 하였다. <피아노를 위한 변화의 음악(Music of Change for Piano)>은 음악의 요소들이 동전을 던진 결과에 따라 우연적으로 결정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 작품이 마르셀 뒤샹과 구분되는 점이 분명히 있다. 뒤샹이 자신의 잠재의식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데에 우연성을 사용하였다면, 케이지는 잠재의식을 배제하고 음향, 지속적인 시간, 박력, 빠르기 심지어는 침묵을 작곡하는 데에 우연성을 사용한 것이다. 가장 잘 알려진 1952년 케이지의 <4’33’’>은 음악적 관념을 넘어 소리의 범주를 침묵까지 확장시킨 작품이다. 세 개의 악장 사이 4분 33초의 타셋(tacet)[4]에서는 피아노 건반 덮개를 여닫는 행동을 보여줄 뿐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연주자가 침묵을 연주하는 동안, 관객들은 소리가 들려오기를 기다린다. 하지만 1악장은 피아노가 아닌 연주회장 뒤편에서 시작된다. 1악장에서는 숲속의 바람 소리가 들려오고, 2악장은 지붕 위를 두드리는 빗소리가 들린다. 3악장에서는 그것조차도 들리지 않고 침묵이 흐르다가, 이러한 침묵으로 당황한 관객들의 웅성거리는 소리로 매워진다. 존 케이지의 <4’33’’>은 작품의 주체를 제거하고 관객이 작품 속에서 능동적으로 청취하며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 존 케이지가 이러한 기반을 마련한 후에야 1960년대 플럭서스가 등장한다.


플럭서스(Fluxus)란 음악 밖의 영역에서 존재하는 소리를 음악의 영역에서 구현시키고자 한 것이며, 전통적인 미술과 미술가의 역할을 비판하고 와해하여 누구나 에술가가 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조지 브레히트(George Brecht, 1926~2008)는 일상의 모든 물건이 잠재적인 악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일상의 순간들을 소리로 만들고자 하였다. 라몬트 영(La Monte Young, 1935~)은 소리가 가지고 있는 물질적 영역에 관심을 가졌다. 1950년대 기술의 발전으로 소리의 일시적인 특성이 극복되어, 하나의 음이 길게 지속될 수 있었다. 이에 라몬트 영은 하나의 음을 오랜 시간 지속하는 작업을 선보였으며, 이는 단일한 소리에 대한 기존의 관념에서 탈피하는 의의를 가진다. 마지막으로 1968년 5월 27일 휘트니 미술관에서 <진자 음악(Pedulum Music)>(1968)은 사운드 아트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작품이다. 이 작품으로 사운드 매체는 물질성, 관계성, 사회적 상호교류 등 더 넓은 의미로 예술적 기능이 확장되었으며, 청각적 영역을 미술계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새롭게 탐구함으로써 사운드 아트 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리고 1960년대 후반 미술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퍼포먼스와 같은 매매되기 어려운 ‘탈물질화’, ‘비물질화’ 작업을 본격적으로 수용하기 시작하면서, 미술가들이 소리와 공간, 장소에 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실제 공간 안에서의 경험을 요구하였던 미니멀리즘과 더불어, 행위의 장소가 중요하게 작용하는 해프닝과 퍼포먼스의 출현으로부터 그 흐름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자 장소에서의 소리에 대한 연구로 활발했던 음향생태학과 더불어, 당시 미술에서 장소가 부각되면서 장소 특징적 미술이 등장하였다. 장소 특정성은 20세기의 모더니스트들이 시공간을 배제하고 독립적인 세계를 구축하고자 하였던 ‘이상화된 공간’ 비판하며 등장하였고, 그와 함께 작품의 제작과 감상에서 장소를 중요한 위치로 올려놓았다. 이로 인해 대지 미술, 포스트미니멀리즘 설치와 같은 ‘직접적인’ 체험이 부각되고 시각 외 감각들이 중요하게 여겨지기 시작했다. 이는 비물질적 매체를 통한 표현방식이 활발해지는 데에 기여하였고, 작품의 공간과 장소성이 중요하게 부각되며, 자연스럽게 소리를 통한 실천이 가능한 기반을 마련하는데 이르렀다. 1970년대에 들어서며 미적 미디어로써 사운드는 시각이 지배하던 전시 공간의 관계성을 사유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뉴욕 현대미술관은 1969년 12월 30일부터 1970년 3월 1일까지 전시 <공간(Spaces)>을 개최하였는데, 이 전시에서는 오늘날의 설치미술이라 불릴만한 작품들이 주로 출품되었고 사운드 스컵쳐라고 분류할 수 있는 작품도 몇 점 있었다. 마이클 애셔(Michael Asher; 1943∼2012)와 예술 테크놀로지 펄사(Pulsa)가 사운드 설치 작품을 선보였다. 애셔는 고요에 가까운 상황에서 에어컨 작동 소리와 같은 인위적인 노이즈만 들리도록 의도하였다. 이와 달리 펄사는 관객의 위치에 반응하여 정원의 사운드와 빛을 바꾸는 자동반응 환경을 구축하였다.(임산 174.)


이후 막스 뉴하우스(Max Neuhaus)를 비롯한 1세대 소리 미술가들은 공간 안에서 소리의 물리적인 특성을 탐구하거나, 바깥 환경에서의 소리에 대한 관심을 갖고 이를 채집하여 하나의 음원으로 사용하기도 하며, 소리가 갖는 공간성을 장소와 연결시켜 작업하였다. 굳이 장소를 주제로 하지 않더라도, 소리를 청취한다는 것이 공간과의 상호적 관계를 발생시키기에 장소와 밀접한 관련이 생기는 것은 필연적이다. 또한, 음향생태학자이자 작곡가인 머레이 쉐이퍼(R. Murray Schafer)는 소리와 풍경의 조합어인 ‘사운드 스케이프(soundscape)’라는 용어를 통해 19세기 말부터 이전까지 들을 수 없었던 ‘소음(noise)’의 등장과 사회적, 문화적 측면을 반영하는 장소 표현의 도구로써의 소리를 설명하였다. 쉐이퍼는 장소를 기록하고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방법으로 장소의 소리를 집중하며 걷는 ‘소리 걷기(Sound walk)’와 필드 레코딩(field recording)을 제시하였으며, 1960년대 이후 휴대용 녹음기의 보급으로 필드레코딩이 하나의 작곡 방식으로 채택될 수 있었다. 사운드스케이프의 중요한 특징은 레코딩 이후 소리를 편집하거나 덧붙이지 않는 것이며, 작곡이 도심 밖 자연의 소리에 주로 집중되는 한계를 가짐에도, 장소를 청각적으로 기록하는 방식이 표현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5]


이러한 배경에서 자넷 카디프(Janet Cardiff, 1957-)라는 작가가 등장하였다. 카디프는 사운드스케이프를 통해 장소를 경험하는 방식으로 쉐이퍼가 제안한 ‘소리 걷기’ 방식을 차용한다. 카디프는 소리를 통해 개인의 사적 기억과 역사, 무의식, 꿈과 같은 소재들을 즉각적∙감각적으로 전달하고, 소리와 공간과의 관계를 탐구하는 다양한 방식을 보여준다. 여기에 카디프가 선택한 재료는 목소리와 음악적 선율, 환경음, 소음과 같은 소리이다. 그의 대표적 작품은 <소리 걷기> 시리즈이다. <소리 걷기> 시리즈는 소리와 공간과의 상호적 관계 안에서 청각적으로 재현한 장소를 체험하는 관객 참여형 퍼포먼스이며, 오디오와 비디오, 그리고 MP3와 아이팟 등을 이용하여 1991년부터 현재까지 25개 시리즈로 진행되고 있다. <소리 걷기> 시리즈의 대표작 <사라진 목소리(The Missing Voice)>(1999)는 런던 화이트 채플 갤러리의 도서관으로부터 이스트 엔드 부근까지 이어지는 동선을 탐방하는 퍼포먼스로 진행되었다. 참여자들은 도서관 입구에서 CD 플레이어와 헤드폰을 받고 실제 장소와 유사하게 연출된 소리풍경과 함께 카디프의 안내 음성을 따라 걷는다.


연출된 환경음향을 통해 참여자들은 실제 시간 속의 공간과 카디프가 묘사하고 있는 연출된 공간 사이에 위치하며, 관객들은 카디프의 청각적인 풍경과 실제 상황을 혼동한다. 이는 소리를 들려줄 때 청자가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 사이를 오갈 수 있도록 헤드폰을 사용했기 때문인데, 헤드폰이 바깥 세계에서 들려오는 모든 소리를 최대한 차단시키기 때문에 참여자가 소리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된다.


또한 카디프는 참여자들의 퍼포먼스가 진행되는 동안 들리는 소리가 실제인 것처럼 느껴지도록 더미 헤드 스테레오 마이크를 사용한 바이노럴 입체음향 재생 기술을 사용하였다. 이 기술은 소리가 마치 바로 옆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처럼 들리게 만들어 소리의 공간감을 창출한다. 3차원의 공간감을 통해 카디프는 참여자들이 동선을 따라 그들이 실제 장소에서 발생하는 소리로 착각하도록 트릭을 연출하였다. 이는 시청각의 불일치로 참여자들에게 혼돈을 유발시킨다. 카디프의 작품은 장소의 소리를 새롭게 구성하는 것을 통해 우리의 인식 중 생각보다 많은 부분이 청각에 의지하고 있었음을 일깨운다.


카디프가 묘사하는 장소는 참여자들이 유사한 청각 풍경을 그려내기 때문에 실재와 허구 사이가 모호하다. 동시에 맥락과 관계없는 허구의 소설 속 내러티브를 삽입하는 것이 <소리 걷기> 시리즈의 모티프인데, 추리소설, 공상과학소설의 유명한 구절을 환기시키는 소리, 꿈과 무의식을 맥락과 관계없이 분절적으로 삽입하는 오디오 콜라주 기법을 자주 사용한다. 꿈과 영화의 허구적 내러티브 구성으로 추측과 상상력을 증대시켜 참여자는 카디프의 작업에 더욱 몰입할 수 있다. 사운드 콜라주는 오래된 역사, 사적 기억 혹은 허구의 이야기를 현존하는 시공간 안에 공존하게 하는 효과를 만든다. 카디프의 장소 역시 미술관, 숲, 공원, 도서관, 지하철, 기차역과 같은 생태적, 문화적, 역사적 가치들이 내재된 공공장소들로, 공적인 장소에서 마주하는 청각적인 풍경은 무수히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이를 통해 참여자들은 그들이 마주한 사운드스케이프를 통해 자신들의 경험과 기억에 비추어 무의식적으로 청각적 풍경을 지각하게 된다. 이는 기억과 경험을 통해 청각적 가상공간이 다양한 층위로 구축되고 경험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6]


이외에도 카디프와 밀러의 사운드 스컵쳐에 집중해 보고자 한다. <까마귀의 살해 The Murder of Crows>(2006)는 전시 공간을 에워싸는 듯한 98개의 스피커를 사용한 조각적 차원의 설치 작품이다. 관람자는 비어 있는 의자에 앉거나 서 있는 스피커 사이를 움직이며, 청각에 오롯이 의지하여 작품을 감상한다. 시각적 대상이 최소화되어 있는 상태에서 관람자는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거센 바람이 부는 소리에 의해 불안하고 공포스러운 분위기에 휩싸인다. 다층적 소음과 함께 울려 퍼지는 침울한 분위기의 오페라 음악은 98개의 입체 음향 기술로 녹음된 사운드 필드를 통해 실제와 같은 방향감을 연출하고, 마치 실제 공간에서 직접 연주되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파라다이스 인스티튜드(The Paradise Institute)>(2001)는 헤드셋을 착용하고 제한된 공간 안에서 대형스크린을 통해 감상하는 원리로, 관람자에게 공감각적 혼란을 야기한다. 스크린 속 영상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헤드셋을 통해 대화하는 소리, 누군가 기침하는 소리를 듣게 되고, 주변 좌석에 앉은 사람들이 직접 만들어 내는 크고 작은 노이즈와 섞이며 관람자는 현실과 가상의 공간에서 혼란을 느낀다. 스크린 역시, 투시도법으로 만들어 낸 속임수로, 눈 앞에 펼쳐진 좌석과 발코니가 있는 공간은 마치 멀리 떨어진 공간인 듯한 착시를 불러일으킨다. <속삭이는 방(Whispering Room)>(1991)은 어둡고 텅 빈 공간에 16개의 스피커가 연출된 작품이다. 16개의 스피커에서는 여성의 목소리가 각각 재생되는데, 과거와 현재 또는 미래의 시점에서 사건과 행동을 묘사하는 목소리가 42개의 결론 없는 이야기를 대화하듯 속삭이는 것이 특징이다. 참여자는 스피커와 스피커 사이의 공간을 이동하며 흩어진 이야기를 가상의 공간에서 연결시키는 역할을 하도록, 카디프는 관람자의 움직임을 유도한다. 카디프의 입체 음향 녹음 기술은 우두커니 서 있는 스피커가 기계가 아닌, 목소리를 내는 사람의 존재처럼 느끼게 하며, 이러한 혼동은 사건화된다.


카디프의 작품에서 가장 인상 깊게 남은 작품은 <40성부의 성가(The Forty Part Motet)>(2001)이다. <40성부의 성가>는 르네상스에 제작된 합창곡 <주님밖에 희망이 없네>를 디지털 작업으로 재구성하고 사운스 인스톨레이션한 작품이다. 40개의 스피커에는 살스버리 성당 합창단의 구성원 한 명 한 명의 목소리를 개별적으로 담아냈고, 입체 음향으로 녹음된 목소리는 마치 르네상스에서 합창단의 공연을 원곡으로 직접 감상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카디프의 탁월한 선택으로는, 단순하게 합창단의 목소리만 흘러나오는 플랫한 사운드가 아닌, 마치 공연을 준비하는 듯한 소곤거리는 잡음(noise)을 연출하여 사운드 속 공간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그 외에도 2009년 에치고츠마리 아트 트리엔날레에서 선보인 설치 작품 <폭풍의 방(Storm Room)>(2009)은 방 부에 감춰진 8개의 스피커와 2개의 서브우퍼(subwoofer)로 구성된 음향 기계를 통해 천둥이 몰아치고 비가 내리는 가상의 공간을 이루는 작품이다. 사운드에 맞춰 방 안의 조명은 꺼졌다 켜지는 것을 반복하고, 창문에는 비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의 그림자가 비춰져 관람자에게 불안함을 느끼게 한다. 재미있는 점은 누군가 움직이거나 옆방에서 기침하는 소리가 들리는 등 소음이 발생하면, 폭풍 소리는 잠시 사라졌다가 방 안이 고요해지면 다시 몰아친다. 또 다른 작품으로는, <사형기구(The Killing Machine)>(2007)가 있다. <사형기구>는 어두운 방 안에 치과 치료대와 거울이 붙은 디스코 볼, 메가폰이 매달려 있으며, 금속으로 된 로봇의 팔이 치료대 위에서 계속해서 움직인다. 이는 오스트리아 유대인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1883~1924)의 단편 소설 『유형지에서(In the Penal Colony)』(1914)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사형 집행관이 상관의 지시로 사형을 집행하는 것에 죄의식을 느끼고 사형대에서 자살하는 인간의 불안한 심리를 다룬 작품이다. 이 작품은 관람자가 주체가 되었던 기존 작품과는 다르게 작품 내부의 자동적인 작동으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하지만 고문 기구와 같은 모습을 띠는 이 작품을 보았을 때, 관람자는 누군가의 존재를 느끼며 고통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된다.(박수민 29-42.)


이 글을 통해 카디프라는 작가가 등장하기 이전, 어떠한 미술사 속 음향학적 흐름이 있었는지 살펴보았다. 이 글에 적지 못한 카디프의 수많은 사운드 인스톨레이션이 많다. 예술가라면, 카디프의 작품 활동에도 관심을 가지고 접근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아쉬웠던 점은 사운드 스컵쳐와 사운드 인스톨레이션에 대한 한국의 연구가 미비하다는 점이다. 이에 관해 다양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1] 임형준, 「소리의 시각화를 통한 조각제작연구 : 연구자의 작품을 중심으로」, 부산대학교 미술학박사 학위논문, 2015, 1-132쪽.

[2] 임산, 「사운드아트 큐레이팅 연구」, 문화기술의 융합 제8집5호, 국제문화기술진흥원, 2022, 171-176쪽.

[3] 미래주의 창설 선언문 : 미학적 가치의 전면 개정과 미래주의의 시작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선언문

[4] 타셋(tacet) : 연주 중간에 비교적 긴 휴식을 뜻하는 연주지시 용어

[5] 박수민, 「카디프와 밀러의 사운드 설치에 나타난 공간 체험 연구」, 홍익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16, 1-86.

[6] 최지혜, 「소리미술의 공간과 장소성에 대한 고찰」, 서양미술사학회논문집 제44집, 서양미술사학회, 2016, 235-2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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