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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진 Nov 01. 2023

한량, 놈팽이, 백수건달? 나는 작곡가입니다

    나는 집에서 일한다. 자다 말고 일어나 부스스한 몰골로 바로 건반 앞에 앉아 일하기도 하고 새벽까지 편곡과 씨름하다 말고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 가기도 한다. 나는 일상과 일을 구분하지 않고 생활하기 때문에 편하기도 하지만 나태해지기도 쉽다. 가끔은 귀가 후 외출복을 갈아입지 않고 그대로 작업실 의자에 앉기도 한다. 그럴 때 생기는 약간의 긴장감이 집중력을 더해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녹음이나 회의 등의 일정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 나는 일하는 시간을 자유롭게 정할 수 있다. 주로 늦은 밤에 작업하는 것을 선호하는데 그 시간은 일반적으로 업무시간이 아니기 때문에 내 집중력을 흐트러뜨리는 문자나 전화가 오지 않아서 집중하기 좋다. 낮에는 운동을 하러 가거나 자유 시간을 보내는데 사람들이 직장에 있는 평일 낮 시간에 외출해 한산함을 즐기고 복잡한 주말이나 휴일엔 오히려 집에서 조용히 보낸다.


    그런데 웬 젊은 남자가 평일 한낮에 편한 복장으로 거의 매일 같이 동네 카페나 식당을 다니니 단골 가게에서는 내가 뭘 하는 사람인지 궁금해하기도 한다. 평일 낮의 카페나 백화점 식당가를 떠올려 보라. 삼삼오오 만나는 여성 모임이거나 남성을 동반했다면 대부분 중년이거나 노년층이다. 한동안 운동 동호회에 들어간 적이 있는데 오전에 참여하다 보니 열의 아홉은 여성, 엄밀히 말해 거의 가정주부였다. 동호회에 간 지 두어 달쯤 지났을까? 한 회원이 조용히 다가와서는 “태진씨가 뭐 하는 사람인지 저 언니가 궁금하대”라고 슬쩍 물어보는 게 아닌가? 또 한번은 정년퇴임을 했다는 한 노신사가 나를 유심히 보더니 “젊은 사람이 어떻게 매일 나랑 같은 시간에 운동을 나와? 일을 쉬고 있나?”라고 묻기도 했다.


    나는 작곡가가 된 지 5년쯤 지나서야 다른 사람 앞에서 내 직업을 작곡가라고 당당하게 소개할 수 있었다. 시간이 그 정도 지나고 나서야 얘기할 만한 커리어가 쌓이기도 했지만 사실 나는 아직도 나를 작곡가라고 소개하기가 쑥스럽다. 작곡가라는 직업이 부끄러운 게 아니라 그 단어가 주는 무게감이 부담스러워서이다. 세상에는 훌륭한 작곡가가 차고 넘치는데 아직 부족한 내가 그들과 같은 직업을 가졌기 때문에 나를 조금은 특별한 시선으로 보는 게 여전히 부담스럽다. 그래서 처음 만나는 사람 앞에서는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는 때가 많았다. 예전보다 익숙해졌지만 지금도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저 “문화 예술 분야에서 일한다.”라고 에둘러 표현하는 편인데 한국인의 특성상(?) 대부분은 ‘문화 예술 분야?’라는 물음표를 떠올리면서도 웬만하면 더는 묻지 않는다.


    그러다가 간혹 스무고개 하듯이 캐묻는 사람에게 나를 작곡가라고 소개하면 흠칫 놀란다. 아무리 봐도 평범한 직장인처럼 생긴 사람이 음악인이라는 사실에 놀라고 혹시라도 유명한 사람은 아닌지 내 얼굴을 확인하듯 다시 바라보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차라리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아는 정말 유명한 작곡가라면 어떨까 하고 생각한다.


    내가 대중가요 작곡가라면 대표곡 하나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영상 음악 작곡가’라고 얘기하는 순간 부연 설명이 필요해진다. 음악과 영상을 즐기는 일이 일상이 된 요즘은 몇 마디 말로 내가 하는 일을 이해하는 사람이 많아졌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이런저런 말을 덧붙이게 되는데 추가적인 설명에도 잘 이해하지 못하면 서로 난감해진다. 특히나 부모 세대는 더 그렇다. 내 어머니는 아직도 아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잘 모르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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