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학. 나는 음악과 거리가 먼 학과를 선택했다. 취업하기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을 뿐 경영학이 무엇인지 전혀 몰랐다. 10대의 전부를 외국에서 지냈던 나는 한국 문화에 익숙하지 않았고 낯선 환경에서 원하지 않던 전공을 공부하려니 더 적응하기 힘들었다. 당시 한국의 대학문화가 대체로 그랬지만 학과 모임을 빙자한 빈번한 술자리와 선배들의 추태는 내가 상상했던 대학 생활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도 용케 2학년까지 다녔는데, 말 그대로 학교를 들락날락했을 뿐이었다. 흥미가 없으니 성적이 좋지 못했고 선배나 동기들은 영어 과제를 도와달라고 할 때를 제외하고는 외국에서 온 나와 거리를 두는 느낌이었다. 동아리 활동이라도 해보고 싶은 마음에 여기저기 기웃거려봤으나 흥미를 끄는 곳은 없었다. 한국에서 혼자 이곳저곳을 전전하다시피 살던 나는 그 어디에서도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했다. 나는 2학년 2학기를 마치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조용히 자퇴서를 제출했다.
바로 입영 통지서가 날아왔다. 할 일도 없는데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영어 능력을 인정받아 그나마 몸이 편한 부대에서 통역병으로 2년을 보낼 수 있었다. 입소할 때 입었던 사복을 친한 친구 집으로 보낼 만큼 한국에 가족도 마음 둘 곳도 없던 나는 그저 내가 소속된 곳이 있다는 것에 조금 안도했던 것 같다. 나는 군대에서 지내는 동안 책을 읽으며 자신을 돌아봤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뭘까? 다른 학교 다른 학과로 편입하자니 학점이 형편없었고 딱히 흥미를 끄는 전공도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자퇴한 학교로 다시 돌아가기는 끔찍했다. 남은 것은 여전히 내 마음을 뛰게 하는 음악뿐이었다.
입대 후 주변인의 영향을 받지 않는 환경, 그러니까 완전히 혼자인 상태가 되고 나서야 나는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제대로 마주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걸 알았다고 해도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영향받을 수 있었는데 군대에 있던 시간이 오히려 음악을 향한 나의 의지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줬던 것 같다. 나는 참 팔랑귀였다. 부모님의 말 한마디, 주위 어른들의 말 한마디, 처음 만난 전공생의 말 한마디, 그게 뭐라고.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 사람들도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