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헤라부터 산토도밍고까지
9일차부터는 보까디요(바게트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만든다고 하기에는 너무 심플하지만 바르에서 판매하는 보까디요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에로스키에서 구입한 재료는 다음과 같다 :
바게트 1€ 이하(크기에 따라 다름)
라이트 치즈 90g €1.50
저염 칠면조햄 200g €2
빵을 좀 큰 걸로 사면 3번에 걸쳐 먹는데 사 먹는 것보다 내용물이 푸짐하면서 훨씬 저렴하다. 하몽은 짜고 내 취향이 아니라 주로 칠면조나 닭가슴살햄을 이용했다. 이런 식단에 순례길 정도의 활동량이라면 매일 세끼 빵을 먹어도 빠진다.
스페인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횡단하는 프랑스길이라 뒤를 돌아봐야 일출이 보인다. 어둠 속을 걷다가 등 뒤에서부터 서서히 환해진다. 아침에 뜨는 해, 그리고 걸어온 길을 보면 성취감이 가득 차오른다.
Cortado? Where are you from?
바르에서 꼬르따도를 주문하니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신다. 한국인들은 대부분 에스프레소나 카페 콘 레체(카페라떼)를 주문한다고. 꼬르따도는 플랫화이트랑 비슷하게 라떼보다는 우유가 적게 들어간다. 더 정확히 말하면, 꼬르따도는 에스프레소:우유 비율이 1:1 정도다.
제주도에서도 보지 못한 유채꽃을 4월 순례길에서 실컷 보고 있다. 유채꽃의 꽃말은 '명량, 희망, 쾌활'이라고 한다. 끝없이 펼쳐지는 노란 물결이 지친 순례자들에게 힘을 북돋아준다.
스페인에서도 인정한 마킹왕 루카. 오늘도 순례길 구석구석 열심히 흔적을 남긴다. 물을 많이 마셔서 그런가 평소보다 자주 마킹을 하는 느낌이 든다. 마킹을 핑계 삼아 멈춰서 쉬는 건 아니겠지.
순례사 사무소 공식 홈페이지(oficinadelperegrino.com)에는 각종 통계가 나오는데 비수기(11월~3월)를 제외하면 4월이 비교적 한산하다. 사진에서 순례자가 1~2명 밖에 안 보이는 이유다. 요즘에는 AI로 불필요한 요소를 쉽게 지울 수 있지만 전부 찍은 그대로 올리고 있다.
May I take a photo? Don't wake him.
왼쪽은 앤디라는 호주에서 온 순례자의 뒷모습이다. 루카가 쉬고 있는데 혹시 방해가 될까 봐 조심스럽게 다가와 사진을 찍으셨다. 1~2주 후 다시 만났을 때는 이 날 찍어간 루카 사진이 딸아이의 'favorite photo'라며 좋아하셨다.
산토도밍고에 위치한 RoomConcept Hostel은 특이하게 방 안에 세면대가 있다. 같은 날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단체가 밤새 떠들어 잠을 설쳤다. 소음 문제만 빼면 가격도 합리적이고 돌체구스토 커피머신, 자판기 등이 있어서 마음에 들었던 곳이다.
RoomConcept Hostel
주소 : C. Alberto Etchegoyen, 2, 26250 Santo Domingo de la Calzada, La Rioja
사이트 : https://www.booking.com/Share-BgKLbL2
비용(24년4월) : 싱글룸 €35, 반려견 추가 €0
알베르게와 다르게 공용 샤워실 안에는 샴푸와 샤워젤이 마련되어 있다. 세탁기와 건조기는 각 €4로 일반적 물가였다. 손빨래를 한다면 빨래를 널 수 있는 테라스 공간도 있다.
1층 라운지에는 돌체구스토 머신이 있고 캡슐은 €1에 구입할 수 있다. 자판기 커피도 보통 €1라 카페인이 땡기고 나가기 귀찮을 때 이용하면 편하겠다. 숙소 위치상 주변에 카페가 많아 나갈 여력이 된다면 옵션이 다양하게 있긴 하다.
자판기에는 물, 음료, 과자, 초콜릿 등이 있다. 이렇게 숙소 투어를 하고 돌아오니 루카는 침대 절반을 차지해 쿨쿨 자고 있었다. 침대를 완전히 양보하진 못해도 순례견을 위해 자리는 내어줘야지. 오늘은 딱 붙어서 오붓하게 굿나잇.
더 생생한 기록은 아래 영상에서 4K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