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에 갇혀 있을 때면 우진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생각하곤 했다. 어디서부터였을까? 설경구가 소리를 악! 지르고 기차가 출발했다. 대학교에 오면서 굳이 대학교에서 가까운 본가를 놔두고 자취방을 구했을 때부터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우진은 집에서 사는 게 싫었고, 할 수 있는 한 가장 빨리 집에서 나왔다. 대학에 합격하자마자 그는 학교 옆에 원룸을 구했다. 그 방은 원룸이라고 부르는 것도 적합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는데 그의 방문을 열면 2평 남짓한 공간에 놓인 침대와 침대 크기 정도되는 화장실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보증금 없이 한 달에 30만 원만 내면 살 수 있는 방 중에서는 특히 안 좋은 방은 아니었다. 그는 그 방에 있으면 안전하게 느꼈다. 적어도 그의 침대에 누워있을 때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는 사람은 없었다. 또, 그가 너무 늦게 집에 돌아온다고, 혹은 술을 너무 많이 마신다고 잔소리할 사람도 없었다.
그는 자기 하루에 대한 온전한 통제권을 갖게 되었는데 3달 전만 하더라도 자신에 대한 통제권이라곤 학원에서 돌아온 10시부터 11시 반 취침 전까지 밖에 없었던 것에 비하면 아주 풍족한 통제권이었다. 우진은 자기 마음대로 조작가능한 시간이 너무 많이 늘어나자 마치 뉴스에 나오는 로또 당첨된 졸부들처럼 흥청망청 하루를 써버렸는데, 그 결과로 매일 과방과 술집을 유랑하게 되었다. 그는 매 순간 가장 즐거울 수 있는 선택을 했지만, 어떤 순간에는 그 즐거움에 대한 대가를 내야 했고, 침대에 갇혀있는 지금 그 대가를 내는 것처럼 생각이 들었다.
우진의 생각은 다음으로 이어졌다. 그럼 왜 집을 나왔지? 우진은 부모님과 사이가 그닥 매끄럽지 않았다. 그는 어머니가 특히 무서웠다. 그의 어머니는 평소에는 농담을 잘하다가도 한순간 돌변할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한 번은 우진과 그의 어머니가 둘이 TV를 보고 있던 중이었다. 뉴스에서는 사소한 말다툼 끝에 부모를 패 죽인 아들의 이야기가 나왔다. 어머니는 그에게 “야… 세상에 저런 일도 있네. 나도 아들 조심해야겠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우진도 그 농담을 받아주기 위해 “허허… 조심하셔야겠는데요.”라고 했는데, 그 말을 듣자마자 어머니는 그의 뺨을 후려갈겼다. 굳은 표정으로 양쪽 뺨을 수 차례 때린 후 어머니는 “넌 왜 그 따위 말을 해?”라고 했다. 우진은 어머니가 언제 그를 해코지할지 몰라 무서웠다. 방에 누워서 혼자 핸드폰을 보고 있을 때도 갑자기 어머니가 들어와 그의 뺨을 칠 것 같다는 상상이 자꾸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꿈에서는 그가 어머니에게 복수할 수 있는 기회가 가끔 주어졌다. 상황은 항상 비슷했다. 그의 어머니가 그를 공개적인 장소에서 아주 부당한 이유(마트에 왜 바지를 입고 왔냐는 이유 등)로 모욕(머리채를 잡고 질질 끌고 다니기 등)했고 꿈속의 우진은 그녀를 후려칠 동기와 용기를 가지게 됐다. 그래서 그는 그 꿈이 끝날 때까지 그의 어머니를 있는 힘껏 때렸는데 좋은 일인지 안 좋은 일인지 그가 아무리 열심히 때려도 전혀 힘들지 않았고, 그의 어머니도 나가떨어지지 않았다. 아무리 열심히 어머니 얼굴에 주먹을 날려도 아파하기만 할 뿐 상처하나 남지 않았다.
열심히? 그는 곧바로 다음 생각으로 이어갔다. 다른 대학교 동기들은 방금 대학교에 입학했는데도 불구하고, 벌써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취업 준비를 이르게 시작한 것일 수도 있겠고, 그들 각자의 어떤 학업적 목표를 위해서 발판을 닦아 놓고 있는 중인 것 같기도 했다. 그것도 아니라면 그냥 몸에 배인대로 습관처럼 당면한 과제들을 열심히 수행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진은 열심히 하는 습관이 없었다. 그는 매사에 열심히 하는 법이 별로 없었는데, 그가 열심히 하지 않더라도 그가 바라는 바는 대부분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될 수 있었던 이유 중의 작은 부분은 그의 다재다능함이었고 더 큰 부분은 그가 애초에 대단한 것을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공부를 많이 하지 않아도 그가 원하는 정도의 시험 성적을 받을 수 있었는데, 그는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이 잘 이해됐고, 들은 내용이 잘 외워졌기 때문이었다. 또, 그는 무슨 점수를 받든 그 점수가 그가 원하는 점수였다. 대학교도 가고 싶은 대학은 없었고, 수능 점수가 지시하는 대학에 왔다. 애인도 사귀고 싶은 대로 사귈 수 있었는데, 그는 잘생기고 농담을 잘했기 때문에 남자든 여자든 누군가와는 사귈 수 있었고, 사귀고 있는 사람에 대체로 만족했다. 이런 식이었기 때문에 그는 뭔가를 열심히 할 필요도 없었고 하지도 않았다. 그냥 눈앞에 주어진 상황을 잘 받아들이는 편이었고, 편한 길이 있다면 언제나 그 길을 택했다. 술 마시기는 즐거워질 수 있는 매우 편한 방법이었고, 언제나 그 길을 택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뭔가 열심히 했던 것 같은데...
왜 시작했는지 기억하지 못한 채 지리멸렬하게 생각은 죽죽 이어졌다. 그렇게 생각은 그의 방을 한가득 채웠고, 그의 콧구멍까지 가득 채우면 질식하듯이 우진은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