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1)

by 장우성

성민은 코가 꽉 막힌 상태에서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몸을 일으킨 그는 침대 옆 서랍장 위에 올려둔 30개들이 알레르기약 통에서 한 알을 꺼내 입에 넣고 물을 마셨다. 그러곤 찐득하게 굳어버린 콧물을 코에서 빼내기 위해 화장실로 들어가 옷을 다 벗고 샤워기를 틀었다. 펄펄 끓는 뜨거운 물이 나올 때까지 잠시 기다렸다가 샤워기를 머리 위로 들어 올렸고, 증기가 코 속으로 들어가 코 안의 점액질을 조금은 더 부드러운 액체로 바꿔 줄 때까지 기다렸다. 그러곤 있는 힘껏 코를 풀었고, 피로 얼룩진 초록색 덩어리가 왈칵 쏟아져 나왔다. 화장실의 배수구는 침만 뱉어도 막혀 물이 내려가지 않았기에 그는 그 초록색 덩어리를 손에 받아 변기에 던져 넣었다. 그러곤 대충 몸을 닦아 내고 화장실에서 나왔다. 책상 겸 식탁 겸 화장대 위에 놓아져 있는 머리카락이 잔뜩 붙어있는 드라이기를 들고 한숨을 깊게 쉬었다.


성민에겐 큰 문제가 생겼는데, 남자친구인 우진의 형인 우현과 사귀고 싶어 졌다는 것이었다.


성민과 우진은 2017년, 서로가 대학교 1학년이던 시절 처음 만났다. 우진은 술이 취한 채로 1/3, 술이 취하지 않은 채로 1/3, 어딘가 몸의 아픈 구석을 붙잡고 쓰러져 있으면서 나머지 1/3의 시간을 보냈다. 그는 술이 취했을 때에도 취하지 않은 때에도 항상 시시콜콜한 농담을 했다. 그는 과방에 앉아 유쾌한 헛소리를 지껄이는 것을 자신의 낮 일과로 삼았다. 그의 학교 시간표에 따르면 일주일에 18시간의 수업을 듣는 것으로 되어 있었지만, 그가 학교에 있는 시간에서 과방에 있는 시간을 빼면 10시간이 채 넘지 않았다. 그는 과방에 출입하는 거의 모든 종류의 사람들과 모든 종류의 주제로 이야기를 할 줄 알았다. 전날 새벽 영국 북서부에서 열린 축구 경기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했고, 지난 금요일 드라마에서 유인나가 입고 나온 원피스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했다. 어떤 사람에게는 테슬라의 전기차 시장 개척에 대한 낙관적 이야기를 쏟아냈고, 그다음 사람에게는 학교 지방캠퍼스 건설 반대 투쟁 이후 정체된 학생운동 리더십에 대해 비판했다. 대화의 분위기는 항상 좋았는데, 그의 거칠지만 유쾌한 농담들은 대부분 성공적이었기 때문이다.


학교 수업이 대부분 끝나는 오후 5시 반이 되면 우진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술을 마시며 저녁을 보낼 사람을 찾았다. 대학교 과방이라는 곳이 그렇듯 언제나 그는 적절한 상대방을 찾을 수 있었다. 우진은 그의 몸이 허락하는 한(물론 우진은 그의 몸의 신호를 매우 관대하게 해석했다.) 매일 술을 마셨기 때문에 저녁 식사에 할애할만한 예산은 없었다. 보통 그는 그가 좋아하는 호프집으로 곧장 가는 걸 좋아했고, 만약 그의 앞에서 술을 같이 마셔줄 사람이 식당에서 밥을 먹고 싶다고 한다면 따라가서 가장 싼 메뉴를 시켜 배만 대충 채우고는 얼른 호프집으로 가자고 말하곤 했다. 호프집에서도 그는 끊임없이 농담을 뱉으면서 이야기를 했는데, 대체로 그가 낮에 과방에서 지껄이던 이야기들과 비슷했다. 다만 더 큰 목소리로 이야기했고, 그의 농담은 좀 더 거칠고 선정적이었으며, 의견도 더 과격해졌다.


그는 술자리에서는 페미니즘과 맑시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걸 좋아했다. 우진이 페미니스트인 건 아니었으나, 그 자리에 반페미니스트가 있다면 그는 기꺼이 페미니스트가 되었다. 맑시즘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페미니스트나 맑시스트로 자주 변신하는 이유는 술병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사람이 주로 반페미니스트나 반맑시스트였기 때문이었고, 만약 맑시스트가 그 자리에 앉아 있다면 우진은 즐겁게 시장주의자로 변신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농담을 잊지 않았고, 치열한 논쟁들도 결국 농담거리를 만들어내고는 버려졌다.


그러다가 소주나 맥주를 만족스러울 만큼 마시면 그는 담배를 피우러 갔다. 물론 우진은 술에 대해 쉽게 만족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그는 하루에 피우는 담배의 개수를 제한했는데, 담배를 너무 자주 피우면 담배가 주는 핑 도는 느낌을 즐길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는 담배 불을 붙일 때 성냥을 쓰는 걸 좋아했다. 술자리가 술집의 영업시간보다 길어지면 그는 술친구들을 데리고 모텔에 가서 밤새 마셨는데, 그 모텔에서 나올 때는 항상 모텔에 있는 작은 성냥갑을 들고 나왔다. 술을 마시러 모텔을 꽤 자주 갔고, 담배를 가끔 폈기 때문에 그 정도 성냥 수급만으로도 그는 대부분 성냥을 사용해서 담배에 불을 붙일 수 있었다.


수전증이 있어서 덜덜 떨리는 엄지와 검지로 입술을 꼬집듯 손가락을 입술에 딱 붙여 담배를 짧게 잡았다. 그리고 볼이 움푹 들어가게 세게 담배를 빨았다. 니코틴이 머리를 한 바퀴 돌면 턱도 손가락처럼 미세하게 덜덜 떨렸다. 네댓 번 정도 빨면 담배가 다 탔고, 그는 마치 다시 담배를 필 기회가 없는 것처럼 언제나 필터가 탈 때까지 담배를 다 태웠다. 그러나 그가 두 번째 담배를 꺼내는 일은 거의 없었다.

금요일 연재